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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박정희 회담①] 김영삼-박정희 만남, 숨겨진 밀약은?
<정치列傳, 오늘(1)> 이택돈, 생전 육성 통해 색다른 진술
2015년 06월 15일 (월) 정세운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정치는 강물처럼 흐른다. 지금의 정치는 과거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그 안에서 역사적 전환점이 돼왔던 수많은 터닝 포인트가 존재한다. 그 모습은 어땠을까. 우리가 알지만 잘 알지 못하는 정치현장의 역사적 진실. <시사오늘>이 역사적 전환점이 돼왔던 그곳을 추적해봤다.<편집자 주>

YS, 74년 총재 선출 후 개헌투쟁 등 대여투쟁 강화
박정희 긴급조치 9호 선포, 국제상황 등 野에 불리
영수회담 전격합의…회담내용 비밀, 의구심 증폭

1975년 5월 21일은 당시 제1야당 김영삼(YS) 신민당 총재와 박정희 대통령 간의 영수회담이 열린 날이다. 이날 열린 회담은 지금까지도 갖은 추측과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정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서 당시 정치상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74년 8월 정보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최연소 총재로 선출된 YS는 선명야당 구축을 통한 대여투쟁을 선언했다. 그 일환으로 민주회복을 위한 개헌투쟁을 선언했으며, 부정부패 색출규탄운동을 전개하며 대여 투쟁을 강화해 나갔다.

YS의 대여투쟁은 해가 바뀌어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1975년 2월 조윤형 최형우 김상현 등 8대 국회의원 13명은 1972년 유신 직후 정보부 등에 끌려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어 YS를 중심으로 ‘고문정치의 종식을 위한 선언’을 발표하며 박정희 정권을 압박해 들어갔다.

박정희 정권도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며 맞섰다. 하지만 당시 국제상황이 야당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1975년 4월, 크메르 정부군과 월남이 공산군에 함락되면서 한반도에도 긴장감이 고조됐다.

국제상황이 여의치 않자 4월 말 YS는 박정희와의 회담을 제의했다. 한 달 후인 5월 21일 영수회담이 열렸다. 이날 청와대에서 오전 10시 30분부터 배석자 없이 이뤄진 YS-박정희 간 회동.

두 시간 가량 회담 후 집무실을 나온 두 사람. 표정이 무척 밝았다. YS는 현관까지 나온 박정희의 배웅을 받기도 했다.

두 사람 간에는 어떤 얘기들이 오고갔을까? YS는 회담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박정희와 약속했다는 이유를 들어 함구했다.

청와대 김성진 대변인도 “난국 극복을 위해 여야가 힘을 모으기로 의견을 같이했다”는 정도의 내용만을 발표해, 의구심은 증폭됐다.

회동 후 YS의 대여투쟁 강도가 약해졌다. 때문에 두 사람간의 밀약설이 돌기도 했다. 또한 당 내에서는 비주류들의 반발이 거셌다. 고흥문의 그랜드계, 신도환의 신우회, 정일형의 화요회, 이철승계, 김대중계 등이 비주류 연대 움직임을 가시화하며 YS를 압박했다. 결국 YS는 1976년 당권을 이철승에게 넘겨줬다.

상황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음에도, YS는 박정희 서거 전에는 회담내용을 일체 알리지 않았다.

YS가 박정희 서거 후 밝힌, 회담 내용은 이랬다. YS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에서 소상히 밝히고 있다.

“박정희는 창밖의 새를 가리키며 ‘김 총재, 내 신세가 저 새 같습니다’라고 하고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정희에게 ‘민주주의 하자, 대통령 직선제 하자’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박정희는 ‘김 총재, 나 욕심 없습니다. 집 사람은 공산당 총 맞아 죽고 이런 절간 같은데서 오래할 생각 없습니다. 민주주의 하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정희는 ‘김 총재, 이 이야기는 절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합시다. 내가 정권을 내려놓는다고 하면 대통령으로 일하는 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일단 진심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1975년 5월 이뤄진 YS-박정희 간 영수회담. 두 사람 사이엔 어떤 얘기들이 오갔을까.ⓒ김영삼 자서전

박권흠, “YS, '민주주의 하겠다’는 박정희 얘기 믿는 눈치”

그렇다면 두 사람 간의 밀약은 없었을까. 회담 때 YS를 수행했던 정치인은 이택돈 대변인과 박권흠 비서실장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사뭇 다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 대변인은 당시 상황을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진행하는 현대한국구술자료관을 통해 육성으로 남겨 놨다. 이를 들어보자.

“내가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YS는 ‘요는 말이야 이거야. 여당은 지(박정희)가 하고 말이야. 야당은 내가 하라 이 얘기야’라고 답했다. 그래서 내가(이택돈) ‘DJ는 어떻게 하고요?’그랬더니, ‘갔어’이러는 거야. 그러면서 YS는 박정희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내가(박정희) 누가 있느냐. 다음은 네(YS) 차례다.’”

이택돈 의원은 생전 육성을 통해 YS-박정희 간 밀약이 있었다는 증언을 내놨다.

박권흠 비서실장은 최근 <시사오늘>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YS는 박정희의 인간적 호소에 상당히 감명을 받은 것 같았어요.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박정희 얘기를 그대로 믿는 눈치였어요. YS는 ‘민주주의 될거요’만 되풀이했지, 그 외는 일절 다른 말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박정희로부터 비밀약속을 받은 게 있다고 귀띔해 줬어요. <동아일보> 광고탄압을 중지하고 구속 중인 정치인 석방을 약속했다는 것이었어요.”

두 사람의 증언, 누구의 말이 신빙성이 높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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