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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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 타임'
  • 유재호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4.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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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호의 영어이야기
요즘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필요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강남권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뿐만 아니라 저학년들까지도 학원 대 여섯 개를 다니는 실정이니 말이다. 사실 초등학생들이 밖에서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많이 한정 돼 있다. 여가 시간에도 뛰어 놀기보다는 PC 방이나 집에서 컴퓨터 오락을 학생들을 많이 봤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면서 추억을 쌓았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어린 학생들은 흙에서 뒹굴어야한다는 생각에 필자는 영어 교실을 하나의 놀이터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여기저기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오는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풀면서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특히 6학년 학생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항상 지쳐서 오는 6학년 학생들에게 왜 그렇게 피곤해하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오늘은 수학학원 갔다가 왔고 내일은 시험이에요."

이런 종류의 대답을 달고 사는 6학년들은 숙제도 할 시간도 모자랐으며 수업시간에도 과한 스케줄로 인해 지쳐서 에너지 넘치는 수업을 할 여력이 없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대적인 개혁에 들어갔다. 수업시간은 40분씩 3타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수업시간 앞에 교사들 저녁시간 겸 쉬는 시간이 15분가량 있었고 학생들은 차량이 일찍 도착하는 탓에 항상 일찍 와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 15분을 적극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저녁 시간을 조금 희생해서 수업 시작시간 10분 전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있는 게임을 없애 버리고 그렇게 번 20분가량의 소중한 시간을 이용해서 '피구 타임'을 만들었다. 당장 마트에 가서 스펀지로 된 공을 구입했고 교실을 피구 할 수 있도록 꾸몄다. 

피구를 교실 안에서 한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광분했으며 얼굴에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또한 이 피구를 동기 부여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피구 게이지'를 만들었다. 잘하던 못하던 에너지 넘치게 모든 학생이 듣고 따라 하기에 참여하면 게이지가 점점 상승해서 게이지가 끝까지 차야지만 피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학생들이 잠에서 깨어나서 게이지를 채우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개미만한 목소리들은 온데간데없었고 학원전체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고학년 학생들에게 수업 중에 피구를 시키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즐거운 수업이야 말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별로 걱정 하지 않았다. 조용하기로 유명했던 고학년 여학생들을 열정적인 모습으로 바꾼 것도 바로 이처럼 흥미를 유발하는 수업이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얼마나 피구를 좋아하면 숙제를 한 번도 안 해온 학생도 숙제를 한명이라도 안 해오면 피구를 못한다는 말에 너도나도 숙제를 해왔고 다른 애들의 숙제 체크까지 하는 모습까지 봤을 정도였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각종 전략들이 생겨났다. 머리를 맞추면 무효처리가 되므로 경계선인 책상위로 얼굴만 내미는 'Flower 작전' (얼굴만 내민 모습이 흡사 꽃을 닮았다고 붙인 작전명)이 성행했고, 'House'라고 불리는 교실 구석의 작은 공간은 여학생들한테 몸을 숨기는 명소가 되어버렸다. 어느새 부터 고학년들 사이에서 교실에서 피구를 하는 선생님으로 유명해졌다. 지금 현재는 전체 학년 학생들이 업그레이드 버전 피구를 즐기고 있다.
 
이처럼 즐기면서 수업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즐기면서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들의 사소한 아이디어가 굉장히 중요하다. 평균적으로 학생들은 영화 듣고 따라 하기보다 영어책 큰소리로 읽기를 지루해하고 힘들어한다. 그래서 책 읽기 시간에도 게임에 의존하지 않으면 지루한 수업을 하기 쉬워진다. 고백 하자면 필자도 처음에는 책 큰소리로 읽기 수업을 싫어했다. 선생님이 지루해하니 당연히 아이들도 책읽기 수업에 흥미를 느끼기 힘들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재미있는 수업의 첫째조건은 교사가 진심으로 그 수업을 즐겨야 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워크북에 써넣은 뒤 한사람씩 번갈아가며 등장인물을 선택해 등장인물의 대사를 읽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는 보통 아이들이 무미건조하게 대사를 읽어 내려가기 일쑤였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재밌게 바꿔볼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이 활동은 예전 연극과에 있을 때 많이 했던 대본 리딩이랑 굉장히 흡사했던 것이다.

다음날 학원에 가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영화나 드라마 좋아하지? 내가 영화 주인공으로 너희를 지금 캐스팅 할 거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책을 영화로 만들 건데 한 명씩 역할을 맡아서 영화를 만들어 보자꾸나. 연기를 하기 전에는 대본 리딩이란 것을 반드시 하는데 이게 무엇이냐면 대본을 보면서 감정을 넣고 인물의 목소리로 대사를 읽는 거야. 여기 할머니 역할을 맡은 Kevin은 할머니 목소리를 내야겠지?"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할머니 역할의 남학생은 할머니 목소리로 대사를 읽어나갔고 모든 학생들이 즐거워했다. 다른 학생들도 각자 맡은 인물에 책임을 갖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사실상 요구한 것은 많이 없었으나 사실적인 상황 그 자체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많은 효과를 보았다.

실제 상황 설정은 많은 방면에서 효과를 본 교육법이다. 미니 연극 시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시간 역시 취지와는 다르게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엄연한 미니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대본을 읽기만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연출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제 대본 리딩을 했으니 직접 연기를 해야겠지.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에서 그 인물이 되어보려고 노력해봐. 그 인물들이 이런 상황에서 왜 이런 대사를 하는지도 생각해보고. 또한 대사를 혼자얘기 하는 게 아니고 상대방에게 대사를 주는 것임을 잊지 말도록."

이렇게 말해준 뒤 진짜 캠코더를 들고 왔다. 카메라맨을 섭외하고 Plate 비슷한 것을 구해서 "Action!" "Cut!"이라 외치며 진짜 연출가인양 상황을 연출하니, 학생들이 마치 배우가 된 것처럼 대사를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에 아이들이 배우처럼 연기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들이 스스로 만든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준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연극뿐만 아니고 모든 상황을 진짜처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다. 
선거 연설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선거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았다. 그 점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연설문을 쓰고 직접 선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이 분주해졌다. 아이들은 본인의 연설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고 당을 만들자는 제안에 각자 당을 만드느라 신나했다.
  어떤 여학생을 본인이 좋아하는 Arashi 라는 일본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따서 'Arashi Party'를 만들었으며 허경영 Party 등 흥미로운 당들이 탄생했다. 선거 연설을 하기 위해 카메라맨이 대동됐으며 기자단도 참석했다. 필자는 몸에 휴지를 둘러 휘장처럼 만들고 선거 후보들을 응원했다. 본인만의 구호를 영어로 만들고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교육이 바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스스로 참여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교육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어하는 것을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은 지식들은 금방 날아가지만 즐거운 기억은 머릿속에서 평생 지워지질 않는다.

그러기에 항상 유쾌한 '영어 놀이'가 학생들에게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이 PC 방에 가는 대신에 영화 주인공을 흉내 내며 '영어 놀이'를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유재호 (서초 Toss English 영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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