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마저도 만나기가 두려워졌다. 심해서 협심증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림의 아래쪽 묘는 적지만 그나마라도 맥을 타긴 했다. 이러한 증세가 덜했다. 그림의 경우는 새 길이 나면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기는커녕 오히려 묘 양편을 갈라놓고 있다.
이러한 묘터는 후손 중에 자살한 사람이나 자살할 사람이 나오기 쉽다. 세찬 바람이 새 길을 따라 양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이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묘를 옮기고 나니 그 전 앓았던 협심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싹 사라졌다고 한다.
오히려 길이 나기 전보다도 마음이 편해지면서 친구들을 자주 만나며 더 활달해졌다며 주위에서 놀란다고 한다.
개발이라 하여 여기저기 산야들을 무자비하게 파헤치고 있다. 편의에 의해 굽은 길을 똑바로 펴는 일을 자주 보지만 이런 개발로 인해 자연이 그 생기(기운)를 잃고 끊기게 되는 경우도 개발의 빈도와 같이 늘어나고 있다.
외국의 경우, 특히 선진국의 경우 길을 낼 때도 자연(경관까지도)을 가능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자연 그대로를 최대한 살리면서 길을 내려는 섬세한 주의를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 자연은 그 뒷전이다.
이러다보니 땅의 기운이 약해지고 그 흐름을 방해함으로써 점점 산의 생기는 미약해진다. 일제강점기 때 산에 손가락 굵기의 쇠말뚝만 박아도 그 산의 정기가 사라진다 했거늘 하물며 8차선 도로니 4차선 터널이니 하며 자연을 훼손하고 있으니 그 폐해는 얼마나 크겠는가를 상상해 보자.
인구가 줄어들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을 사회학자들은 젊은이들의 이기적 의식의 변화라고 하지만 이 의식의 변화도 자연의 훼손에 의한 결과라고 본다. 선진국의 젊은이 역시 이기적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왜 우리가 더 심한가?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가 늘어나면서 전에 없던 대형 사고들이 늘어나고 있는 사실도 사실은 이러한 피폐화되는 자연이 늘어나면서 생긴 결과라 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인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인걸은 지령’이라고 한다. 땅의 영기가 사람을 낳고 기른다는 말이다. 이렇듯 사람의 생명은 분명히 산에서 온다. 이장으로 그 피해를 비껴가보지만 그에도 한계가 있다.
(문의: http://cafe.daum.net/mirpoongsu, 031-785-3773)
저작권자 © 시사오늘(시사O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