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Mo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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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Monster!
  • 유재호 자유기고가
  • 승인 2008.12.03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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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호의 영어이야기
“Hey, Monster!"
"으르렁“
“꺅~~”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도망간다. 나는 Monster다.
내가 Monster가 된 계기는 흥미롭다. 처음 학원에서 어린 학생들을 만났을 때 내 큰 키와 몸집은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어떤 여학생한테 최홍만 닮았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리 큰 몸집이 아니었으나 아이들 사이에서는 꽤나 우락부락 하게 보였나보다. 최홍만 소리에 충격을 받았으나 이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이 나를 최홍만 닮았다고 하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었고 그런 내 캐릭터를 상품화시키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이들한테 가서 말했다.

“이제부터 나를 Monster라고 불러라.”
아이들은 순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흥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게임을 할 때도 지루해지는 순간마다 Monster가 나타나서 아이들과 게임대결을 했다. 나는 내 스스로를 아이들의 수준으로 낮춰서 바닥을 뒹구르며 아이들과 하나가 됐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Monster 팀에 포함시켜 주어 사기를 증진시켜 주었으며 모두 Monster팀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Monster가 등장하는 순간에 괴성을 지르며 나타나는 Monster를 따라하며 광분하는 열성팬? 들 까지 등장했다.

애초에 최홍만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 나쁜 채로 있었다면 이런 놀라운 결과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거나 말을 안 들을 때 화가 나기 쉽다. 아이들이 무례한 말을 내뱉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경우 생각을 아이들의 시야에 맞게 바꾸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가 있다. 여러 말썽꾸러기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런 점을 느꼈다. 10개월 동안 울고 웃었던 Harry (이제희, 11)의 얘기를 해보겠다.

Harry는 4차원 소년이다. 첫인상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끼가 워낙 넘치는 학생으로서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학생이었다. 숙제를 해온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수업태도가 산만하고 말썽을 많이 피워 자칫 문제아로 불릴 수도 있는 학생이었다.

나도 처음에 이 학생을 맡으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영화 주인공을 따라하는 시간에는 동작을 따라한답시고 구석에 가서 벽을 긁고 있었으며 주인공의 말에는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주인공이 갖고 있는 소품에 집착해 수업시간에 소품 제작을 하기도 했다.

옆에 있는 친구와 껴안으면서 사이좋게 영화 흉내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바둥바둥 싸우다가 선생님이 말리면 친구를 무섭게 노려보며 씩씩대기까지 했다.

어느 날은 소품으로 장난감 칼을 갖고 와서 그 친구를 찔러서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이 학생에게 다그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해봤다. 하지만 행동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쌓이는 건 나의 스트레스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일단 내 생각부터 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학생의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아주 힘든 일임을 깨달았다.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일단 내 행동의 변화가 필요했다.

차근차근 이 학생의 장점을 찾고 그것부터 살려주기로 했다. Harry의 장점은 바로 영화에 대한 열정이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동안의 행동들이 모두 설명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집에서 소품을 준비해온 것이었다. 너무나도 주인공의 동작이 하고 싶어서 수업시간에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그 동작을 해왔던 것이고 소품 만들기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Contest날 람세스를 흉내 내려고 람세스의 옷을 입고 분장을 해왔던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런 열정을 보였던 학생은 이제 것 없었기에 그걸 미처 몰라준 게 너무 미안했다. 

다음 수업부터는 Harry의 이런 열정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수업에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데로 내버려 두고 숙제를 안 해와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Harry를 바라보자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짜증스런 Harry는 온데 간데 업고 귀여운 Harry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의 행동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오로지 바뀐 것은 내 생각이었다. 나는 이 친구가 참 귀엽게 생긴 학생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실망과 짜증이라는 감정은 어느새 사랑과 관심이라는 감정으로 탈바꿈했고 그것은 비로소 처음으로 학생과 선생님과의 진정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했다. Harry에게 자유를 주고 맘껏 끼를 펼치는 장을 열어줌과 동시에 규칙을 만들어서 규칙 안에서 살아나가는 법을 배우도록 연습시켰다.

영어 선생님이기보다는 친구로서 다가갔고 같이 영화주인공을 흉내 내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고백 컨데 Harry의 영어 실력에 대해서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영어를 누구보다 즐기는 그 모습 자체가 좋았고 개인적으로도 열광적이고 끼가 넘치는 학생들을 좋아한 터라 Harry와 수업하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주인공의 동작에만 열심히 하고 영어대사에는 비중을 많이 안 뒀기 때문에 영어 발달에 기대를 많이 안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비웃듯이 영어를 듣고 따라하는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처음 깨달은 사실이 있다. 동작에만 치중해서 듣고 따라 하기를 하는 학생들이 사실 누구보다 그 대사를 훌륭히 소화해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요즘 학생들은 방학만 되면 더욱 바빠진다.

특히 8학군에서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때가 되면 어머니의 고민들도 커진다. 영어캠프를 보낼까 다른 학원을 더 보낼까 아님 따로 무언가를 더 시켜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가르치는 60명의 학생 중에서 방학동안 가장 많은 실력이 향상된 학생은 바로 Harry였다.

캠프에 간 것도 아니었고 다른 학원을 더 다닌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책을 몇 권사서 그 책들을 Master한 것도 아니었다. 여름방학 동안 한 것이라고는 단지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한국말 자막 없이 영어로 원 없이 본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을 끼고 살면서 주인공의 대사들을 달달 외울 정도로 입에 달고 살았던 것이 그런 결과를 낳았으며 방학이 끝나자마자 있는 Mimicking (영화 대사 듣고 동작과 함께 따라 말하기) Contest 에서 높은 점수로 90명 학생 중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Harry는 영어로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하는 편이다. 아직 읽기 쓰기 부분이 약하지만 솔직히 걱정하지 않는다. 특히 쓰기나 문법은 나중에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 제한이 있다.

문법이나 영어 쓰기를 잘하며 단어를 많이 외운 학생들은 널려있지만 말을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하는 학생들은 참 드물며 가장 힘든 일이다. 지금은 완벽하지 않지만 Harry의 영어 말하기 실력은 원어민의 수준으로 가고 있는 이상적인 길이며 나는 이런 Harry를 지지할 것이다.
 
유재호(서초 Toss English 영어 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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