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대안 없이는 승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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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대안 없이는 승리도 없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2.02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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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가장 힘든 길이 가장 좋은 길임을 기억하는 야당 되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1997년, 영국 노동당이 1979년 이후 18년간 정권을 놓지 않았던 보수당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비결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토니 블레어라는 ‘스타 정치인’의 존재, 다른 하나는 ‘제3의 길’이라는 명확한 비전이었습니다.

1994년 노동당 당수가 된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 정책의 핵심이었던 국유화 강령을 폐기하는 등 ‘신노동당 정책’을 강하게 추진해나갔고, 언론으로부터 ‘영국의 클린턴’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스타 정치인으로 도약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97년 총선에서 사회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결합한 ‘제3의 길’을 주창함으로써 보수당에게 압승을 거뒀습니다. 명확한 정책적 대안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 만한 ‘카리스마 지도자’의 결합이 부른 승리였지요.

우리나라 야당에도 국민적 인기를 갖춘 대통령 후보가 있습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차기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3주째 1위를 지키고 있고, 안철수 의원은 한때 박근혜 대통령을 능가하는 지지율을 기록한 인물이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언제든지 대권 후보로 도약할 수 있는 ‘스타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과연 야당에 분명한 대안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노선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는 차치하더라도, 토니 블레어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차용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노동당의 변화’와 ‘확실한 비전’을 모두 보여줬습니다. 보수당에 불만이 있지만 노동당의 위험하고 불안한 이미지 때문에 선뜻 표를 줄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일거에 사로잡았지요.

반면 우리나라 야당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무작정 여당을 반대하다 보니 자기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빈번하고, ‘그래서 대안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여당이 못하니 야당에 표를 달라’는 심판론에만 매달리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야당뿐만 아니라 ‘지금 권력자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여당 후보’라는 또 다른 대안도 있습니다. ‘심판론’은 결코 ‘위험’과 ‘불안’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여당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더라도, 국민들의 선택이 ‘그래도 다시 한 번’으로 귀결되는 이유입니다.

때문에 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대안의 제시가 필수적입니다. 여당보다 더 잘 할 것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까닭입니다. 변화보다는 현상유지에 안정감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상, ‘심판론’은 승리의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를 푸는 가장 확실한 매커니즘은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지금 야당은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러다 보니 매 선거는 ‘야당’과 ‘또 다른 여당 후보’의 싸움으로 흘러가고, 책임을 묻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가장 힘든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국가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효과적입니다. ‘여당이 못하니 이번에는 야당’이라는 일차원적인 주장 대신, ‘우리에게 맡기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뚜렷한 청사진을 보여줄 줄 아는 유능한 야당이 되길 바랍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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