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위원장, 3당 합당 ‘구국적 결단’이니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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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위원장, 3당 합당 ‘구국적 결단’이니 같이 갑시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0.07.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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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구국적 결단의 3당 통합

1990년이 시작되면서 김영삼 총재는 김대중 씨의 4자필승론으로 더욱 굳어진 지역분할 구도의 고착화로 인해 나라의 앞날이 암담함을 걱정하고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민주국가의 출현을 바라는 70%의 국민여망을 실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걱정이었다. 다음 선거도 또 다음 선거도 지금 같은 지역분할의 상태에서는 비록 소수지만 하나로 뭉쳐있는 기득권 세력 앞에 70%의 다수가 패할 수밖에 없고, 군부통치의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라는 걱정과 또 지역분할 구도대로 4당으로 나뉘어 있는 국회상태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정국을 안정시킬 수 없음은 물론, 이 불안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그것을 기회로 또다시 군사쿠데타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는 걱정이었다.

김영삼 총재는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노태우 대통령을 만나 정국안정과 문민정부 탄생을 위해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의 합당을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이 제의를 들은 노태우 대통령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까지 합류시켜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 이렇게 3당이 합당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마침내 3당이 통합을 했다.

수십 년 동안 쿠데타를 반대하며 군사독재 타도를 외피고 고생해온 우리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실로 종잡을 수 없는 허탈함으로 맥이 빠져 있었다. 처음 통합소식을 들은 통일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은 통합비율 25%의 지분으로 통합을 하면 100%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서 전반적으로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김영삼 총재는 상도동 자택으로 우리들을 불러 한 사람씩 만나 통합정당으로 같이 가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도 김 총재의 방으로 불려 들어갔다.

“노 위원장, 3당합당이 단순한 모험으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김대중이 호남을 볼모로 잡고 저렇게 제 욕심대로 활보하며 즐기는 한 야권후보 단일화는 물 건너갔고, 이런 지역감정 구도로는 어차피 모험처럼 보이는 3당통합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결심했어! 이래도 저래도 가능성이 없을 바에는 한번 도박을 해보는 거야. 나하고 같이 가요.”

“총재님, 저 두 정당 사람들은 체면불구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입니다. 저 사람들은 절대다수인 75%의 세력을 가졌고 우리는 겨우 25%이며, 또 저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집권하면서 많은 재물을 축척한 사람들입니다. 수적으로도 힘으로도 우리로서는 처음부터 지는 싸움입니다. 그야말로 민주방식으로 하자고 하면 우리는 명분까지 잃고 쫓겨나게 됩니다. 총재님, 제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재고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통합을 반대합니다.”

그러자 김영삼 총재는 내 무릎에 두 손을 얹어놓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노 위원장, 이왕 결정된 사항이고 달리 방법이 없는 그야말로 ‘구국적 결단’으로 한 것이니 나와 같이 가도록 해요”

“총재님께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통합신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셔야 하는데, 사전에 무슨 보장이라도 되어 있으면 저는 무조건 따라가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생스럽긴 하지만 지금처럼 야당이 훨씬 명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말에 김 총재는 아주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노 위원장, 보장 같은 것은 없지만, 그 문제라면 내가 자신이 있어요. 내가 반드시 승리한다고. 나를 믿고 나하고 같이해요. 내가 꼭 된다니까.”

“사전보장이 있어도 어려운데 백지상태로 25%를 가지고 75%를 어떻게 이긴다고 그렇게 장담을 하십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노 위원장, 틀림없이 같이 가는 거다.”
김 총재의 말에 나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나와 버렸다.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불만이었지만 유진산 총재 이후에 김영삼 총재가 있었기에 군사독재 정권과 맞붙어 갖은 박해와 고초를 이기며 줄기차게 싸워 민주화도 직선개헌도 이루어놓았다.
 
사리사욕에 눈이 먼 김대중 씨의 위장된 민주화투쟁과 진정한 민주정부 구성에 방해만 없었더라면 이런 궁여지책은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한없이 한탄했다. 3당합당이 되고 나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유일한 야당지도자라고 큰소리를 칠 것이 뻔한데, 나로서는 신민당 시절부터 쭉 보아온 김대중 씨를 지도자라고 따라갈 수는 더욱 없었다.

아무리 들어보아도 따라갈 지도자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도 정치도 모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라고 생각하며 경옥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금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김영삼 총재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10,20년을 함께 손잡고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몸바쳐온 동지 중 적잖은 사람이 3당합당에 반대해서 그간의 대열을 이탈했다. L의원은 3당합당에 찬동하고 청와대에까지 들어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인사까지 하고 나와서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다시 주저앉았는데, 만약 처음 생각대로 그냥 따라 나갔더라면 아마도 김영삼 대통령 집권 후에 이회창과 함께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올라 자신의 운명도 나라의 운명도 바꿔놓았을지 모른다.

그는 나중에 김대중 씨하고 같이한다고 하다가 결국 말과 행동이 너무 자주 바뀌는 김대중 씨에게 속은 것을 알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정치에서 영영 빛을 잃고 말았다. 그야말로 분초의 생각이 평생을 좌우하는 세상사를 확실하게 보여준 모델이었다. 애석한 일이다.

따라서 광명시에서도 신민주공화당 출신의 김병용 의원이 지구당 위원장이 되고 나와 운향렬의 지구당위원장 직위는 소멸되었다.
 
민주산악회의 조직 확대와 문경새재의 기적

1991년 3당 합당은 마무리되었으나 수적으로 25%의 지분만으로 힘의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워서 늘 걱정도 되었지만 노태우를 비롯한 민정·공화계는 기회만 있으면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과 민주계를 견제하고 나왔다. 그러면 그럴수록 민주산악회의 조직은 전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가담자가 늘고 조직은 확대일로였다.

1992년 초, 서울과 수도권 근방에 사는 동지들만으로 문경새재에서 시산회를 갖기로 되어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1992년 1월9일 내각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간에 마지막 담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전날인 1월8일 저녁방송과 텔레비전 뉴스시간에 1월9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청와대회담이 보도되면서 때맞춰 민주산악회가 문경새재에서 전국단위의 궐기대회를 가진다는 보도가 나왔다.

민주산악회의 중앙본부에서는 수도권 일부 지부에만 연락해서 올 수 있는 지부만 참가하도록 통신을 띄우고 시산회 플랜카드만 제작하여 가지고 갔는데, 전날 방송을 들은 전국 지부와 회원들이 버스로 자가용으로 심지어는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문경새재로 모여들었다.

전세버스로만 약500∼600대에 자가용, 승합차 등으로 무려 3만여 명이 단숨에 모여들어 청와대에서 담판하는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을 응원하고 노태우 대통령을 압박했다. 대단한 결단력이었다.

계획적으로 그만한 인원을 문경새재로 동원하려면 수십억 원의 경비를 써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통신비와 플랜카드 제작비 등 10∼20만원이 들었을 뿐 모두 자비로 억척같이 모여들어 참으로 전무후무한 기적을 낳은 것이다.

그날 민주산악회의 궐기로 문경새재는 그야말로 붉은 산행 조끼를 입은 회원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덮었고, 그 열기는 문경새재를 떠 옮길 만한 힘이 샘솟는 용광로였다.

그날의 담판으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 등 당론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혼미를 거듭하면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앞길을 가로막고자 하는 노태우 대통령과 일부 민정계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대통령중심제와 민주적 당내경선으로 대통령후보를 선출한다는 결정을 확고히 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 후로는 부분적으로 민정·공화계의 반발과 방해가 있긴 했지만 그날의 담판 내용을 뒤집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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