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 45년 만의 새 보금자리…'휑'한 첫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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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45년 만의 새 보금자리…'휑'한 첫 경매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3.16 0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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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협소한 공간·높은 임대료 등 갈등요소 여전…"정들었지만 별수 있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국내 최대 수산물시장인 노량진 수산시장이 45년 만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고 16일 새벽 첫 경매를 진행했다. 이는 수산시장을 운영하는 수협중앙회의 '현대화' 사업에 따른 것이다.

이날 경매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지만, 현대식 건물의 점포 대부분이 채워지지 않은 채여서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노량진 수산시장이 신축 건물로 보금자리를 옮겨 16일 첫 경매를 진행했다. ⓒ 시사오늘

이날 자정이 지난 노량진역 주변은 가방을 멘 수험생들이 가끔 지나가는 것 외엔 인적이 드물었다.

역사 표지판을 찾아보니 노량진 수산시장은 7번 출구로 바뀌어있었다. 수산시장이 이전하기 전에는 1번 출구로 나와 역과 시장을 잇는 육교를 이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익숙치 않은 길을 따라 나오자 수산시장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한눈에 보였다.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지어진 신축 건물은 형광등 불빛이 빼곡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일요일과 명절 등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경매를 진행한다.

조개류가 새벽 1시부터, 고급 선어와 대중 부류가 1시 반부터, 그리고 경매의 하이라이트인 고급활어와 냉동 부류가 새벽 3시부터 진행, 대여섯쯤이면 장이 마무리된다.

이날 기자가 수산시장을 찾은 것은 경매 시작 20분 전이었지만, 이미 건물 안은 소란스러웠다. 수많은 카메라가 에워싼 가운데, 현대식 건물 이전과 첫 경매 진행을 기념하는 사전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깥 주차장에는 수산물 박스를 잔뜩 실은 트럭들이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강한 바닷내가 퍼졌다.

▲ 16일 경매에 참여한 중도매인들이 늘어서 있고, 경매사가 수산물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 시사오늘

사전 행사가 끝나고 곧바로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사가 박스에 든 수산물을 직접 보여주고 무게와 개수 등을 부르자, 나란히 선 중도매인들이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가격을 제시하는 표시다. 이에 경매사도 빠른 속도로 가격을 확인해 나갔다. 낙찰까지 수십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첫 경매 어종인 오징어가 3만2천 원에 낙찰되자, 주변에서는 "원가 3만1천 원짜리를 천 원만 붙였네…"라는 한탄이 나왔다.

이날 경매를 지켜보던 상인들은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손을 맞잡는 등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사전 행사에서 나눠준 떡을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다가가면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산시장 상인들은 전날 오후까지 신축 건물 이전을 반대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반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실질적인 판매 공간이 좁아지고 임대료도 2~3배 오른다는 것이다.

이날 경매 현장에서도 '생존권 쟁취'라고 쓰인 붉은 조끼를 입은 상인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취재진이 다가가면 대부분 손사래 치는 등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50대 여성 상인은 '평소 경매 현장과 비교하면 어떻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래의 1/3 정도"라면서 "지금 언론인이 대부분이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직 상인들이 구식 건물에 많이 남아있으니 한번 가보라"고 덧붙였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40년간 일해왔다는 60대 남성 상인은 이전 규모가 작은 이유에 대해 "큰 땅 놔두고 이렇게 작은 땅으로 옮기라고 하니 사람들이 오고 싶겠냐"면서 "원래는 트럭들도 시장 안까지 들어오는데 여기는 아예 못 들어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결국 상인들이 며칠 내 다 옮길 것"이라면서 "우리가 집회도 했지만, 뭐가 바뀌겠느냐"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 신축 건물 1층 점포 공간이 여전히 비어있다. ⓒ 시사오늘

실제로 신축 건물 1층에 위치한 판매 공간은 아직 비어있는 곳이 많았다. 또 이전작업을 마친 점포의 경우, 수족관이 경계선 앞까지 나와있었다. 상인들은 이와 관련, "수족관을 새로 다 맞춰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축 건물을 나서 구(舊) 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수많은 점포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판매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 대부분은 점포 이전을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침울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 노량진 구시장 점포에 '이전 반대'가 적힌 빨간 리본이 달려있다. ⓒ 시사오늘

40대 여성 상인은 "이사가야 하는데 아직 못 판 게 많아서 못 갔다"면서 "싸게 해줄 테니까 얼른 가져가라"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을 붙잡았다.

'단결 투쟁' 조끼를 입은 50대 여성 판매상은 점포 이전을 위해 홍합더미를 정리하면서 "저기 신축 건물에 사람 많아? 별로 없지?"라고 물었다.

그는 '이사갈 생각에 아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40년 일하면서 정들었지만 어떡하겠나. 먹고 살려면 옮겨야지 뭐"라고 답했다.

구시장에서 경매가 벌어졌던 자리에는 상인들이 이전을 준비하며 버린 쓰레기 더미로 가득찼다. 기둥에는 수협의 현대화 사업 공고가 붙어있었다.

수협 노량진수산주식회사 측은 이전 반대 이유로 거론되는 '협소한 점포 공간'과 관련, 이미 2009년부터 양해각서 체결 등을 통해 상인들과 충분히 합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협 측은 이와 함께 현대화 건물로 입주하지 않고 기존 시장에서 영업하는 상인을 무단점유자로 간주해 무단점유사용료를 청구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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