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변호사의 Law-in-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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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현변호사의 Law-in-Case>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0.07.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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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이 모씨는 조카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제가 사업을 새로 시작하려고 하는데 신용불량자라 대출이 안 되니 삼촌 명의로 대출을 받아 주시면 제가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라고 한다.
 
이 모씨는 평소 아끼던 조카인데다 조카의 아버지인 형님을 위해서라도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조카는 여기 저기 알아본 결과 대출브로커로부터 약사대출을 소개받았다.
 
약사대출을 위해 필요한 서류는 ‘약사면허증’과 ‘부동산임대차계약서’였다. 조카는 대출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결국 이 모씨 명의로 된 약사면허증과 부동산임대차계약서를 만들었고, 이 모씨는 좀 꺼림직 했지만 조카를 믿고 큰 문제가 없겠거니 생각하고 대출모집인이 가지고 온 대출거래약정서에 서명ㆍ날인해 주었다. 그래서 이 모씨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조카에게 전해 주었고, 대출받은 돈은 조카가 모두 사용하였다.

그 후 이 일에 대해서 잊고 지내던 이 모씨는 어느 날 은행으로부터 대출금 상환통보를 받아 보고는 놀라, 조카를 수소문했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이미 잠적해 버린 터라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은행으로부터 대여금반환청구소송이 들어왔다. 조카한테도 아닌 자기 자신한테 말이다. 이 모씨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은행이 실제로는 조카가 대출받아 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한테 소송을 제기했다고 분개해 했다.
 
자신은 대출모집인이 직접 찾아와 대출거래약정서에 서명ㆍ날인하라고 해서 그렇게 해준 것뿐 서류를 위조한 사실도 돈을 받아 쓴 사실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느 모로 보나 억울한 사람은 이 모씨니 그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여기에서 이 모씨는 대출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대출거래약정서에 서명ㆍ날인하고, 그로 말미암아 대출이 실행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출하려는 의사에 따라 대출을 받았으므로 그 돈을 내가 쓰던 다른 사람이 쓰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 즉, 은행의 양해 아래 채무부담의 의사 없이 형식적으로 대출거래약정이 이루어진 사실이나 은행도 이 모씨가 약사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대출거래를 하는 등 범죄 기타 부정행위를 권하거나 가담한 사실 등을 입증하게 되면 그 대출거래약정은 무효로 볼 수 있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입증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 모씨의 입장에서는 당시 대출모집인을 형사고소하거나 증인으로 불러 그의 입에서 이 모씨가 원하는 답변을 유도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이 모씨를 탓할 수도 있겠으나 은행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은행과 모종의 거래를 하는 대출모집인이나 대출브로커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법적으로 대출을 모집하거나 중개하고, 은행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자주 목격된다.

더 심한 경우에는 아예 금융기관의 임직원과 대출브로커가 짜고 조직적으로 불법대출을 일으켜 선의의 피해자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대출브로커가 돈이 절실히 필요한 회사에게 대출을 받게 해 주겠다고 속이고, 회사로부터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놓고는 심사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대출을 일으켜 이를 중간에서 가로채 도주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이 경우는 대출금액도 높고 그 회사의 대표이사 등이 연대보증까지 하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피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주의와 명의를 빌려주고자 하는 사람의 안이한 태도에 대한 각성도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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