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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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의 용기
  • 유재호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4.20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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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혹은 '고릴라'라고 불리는 형이 있다. 나이는 1975년생, 35살……. 이 형은 내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헌팅'을 제일 잘하는 형이다. 얼굴이 장동건처럼 잘 생겼을까? 몸매가 권상우처럼 잘빠졌을까?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장동건, 권상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비호감 중에 비호감이다.
 
▲     © 시사오늘

 
20년 이상 운동격력에 몸무게 100kg…입술은 두껍고, 머리는 대두…두껍고 짧은 팔다리에 거대한 몸집…별명 '신생아', '킹콩', '고릴라'…….
그럼 이 형은 과연 어떻게 '헌팅'에서 성공하는 것일까? 비결을 물어봤다.
"별거 없어 간단해. 맘에 드는 여자 10명한테 대쉬하면 그중 못해도 한명은 성공하게 돼 있어. 확률 싸움이지 뭐."
답은 참으로 간단했다. 이 형은 될 때까지 무식하기 '들이대는' 것이었다. 

"형, 그렇게 채이면서 쪽팔리지도 않아요?"
"처음에는 나도 거절당하는 게 두려웠지. 근데 하다보면 내성이 생겨. 이것도 훈련과 경험이야. 채일 꺼 두려워하면 길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봐도 말 한마디 못 붙여보고 집에 가서 후회할거다."
‘고릴라’가 어떤 방식으로 '헌팅'을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하루는 그를 따라 나섰다. (사실 처음에는 '허풍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배회하는 길을 가던 그 형은 다짜고짜 여자 두 명에게 다가갔다. 나는 '고릴라'의 행동이 창피해서 뒤에 숨어서 몰래 엿들었다.

"혹시 시간 있으면 저희랑 같이 차나 한잔 하지 않겠습니까?"
'!!!! 저건 말로만 듣던 80년대 스타일의 구닥다리 멘트 아닌가? 그것도 '~습니까?'가 뭐야? 100% 실패 한다'
내 이런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참을 형이랑 협상(?)하던 여성들은 어느새 우리 일행이 돼 있었다.

그날은 운 좋게도 처음부터 성공했지만 물론 ‘고릴라’는 거절당하는 적이 성공하는 적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한 번의 성공을 위해 10번 이상 채이고, 10번 이상 철면피가 되고, 10번 이상 다시 도전한다. 그런 각고한 노력(?) 끝에 원하는 여성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나이 35먹고 뭐하는 짓이냐'며……. 하지만 그렇게 그를 바라보는 사람 중에 몇이나 길거리에서 자신이 이상형을 봤을 때 "마음에 드는데 전화번호 좀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의 없을 것이다. 맘에 드는 사람에게 한 마디 건넬 용기 없이 본인 스스로 위안할 것이다.

'쪽팔리게…….' 
'저런 여자는 내가 성공하면 맘만 먹으면 사귄다.' 
'인연이 있음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잘났어도' 길거리에 가만히 있는데 먼저 다가와 줄 여자는 거의 없다. 인연이 있어서 언젠간 다시 마주칠 확률은 더더욱 없다. 이상형이 있으면 '고릴라'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Oh, my God! 저 여자 진짜 대박인데."만 연발하지 말고…….
 
남들이 철없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고릴라'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
첫째,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나이 35……. 적은 나이가 아니다. 또래들은 번듯한 직장에서 벌써 자리 잡았거나 자기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고릴라는 지금 자신이 사랑하는 운동에 빠져 산다. 그중에서 킥복싱은 그의 꿈이자 인생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비전 없는’ 격투기에 대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50살까지 필드에서 뛸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이런 그의 삶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남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체면'도 없고 '창피함'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도전이든지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다. 비슷한 또래들이 흔히 하는 인생에 대한 '계산'이 따로 필요 없다.
둘째,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한다는 것……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사람은 나이를 들면 들수록 용기를 잃는다. 바로 거절대한 경험이 많아지면서이다. 두려움 속에 우리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용기 있게 하기가 어려워지며, 행동이 과거보다 위축되는 현상이 생긴다. '신중'이라는 가면 아래 있는 '두려움'이 겁 많은 어른을 만드는 것이다. 
나도 20대 초반 만해도 동네에서 '철면피'로 유명했었다.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거침없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뭐든지 하고야말았다. 하루는 친구들과 게임해서 벌칙으로 반바지만 입고 수영모와 물안경을 낀 채, 토요일 저녁에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활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엄두도 못 낸다. 길거리에서 맘에 드는 여성을 봐도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거절당할까봐 망설여진다.    

대신 스스로를 위안하는 법을 배웠고 감정을 억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사회와 타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주위에 시선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철들었다는 것을 핑계 삼아……. 하지만 주위에서는 예전의 내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침없고 시원시원한 예전의 내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한다.

'고릴라'는 내가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울 때,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 형도 처음에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끊임없이 훈련했다. 계속 거절을 반복해서 당하고 그것에 대한 내성을 길렀다. 나중에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됐다. 어떤 상처든지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형에게 당당하게 대쉬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셋째, 진실성이 있다.
'고릴라'의 80년대 멘트가 여성들에게 먹힐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진실성 때문이었다. 주위에서 온갖 '말빨'세다는 사람들을 접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화려한 화술 뒤에 있는 진실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기 얘기하느라 남의 얘기 들어줄 여력이 없다. 하지만 '고릴라'는 남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고릴라'는 자동차 세일즈맨이다.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남들보다 좋다. 내로라하는 꾼들사이에서 그가 나름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는 손님들에게 '이빨'을 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끌어내고 그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기 때문이다. 
고릴라는 말이 긴 아저씨들 얘기도 주위 깊게 경청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나중에 물어봤다.

"형, 지겹지 않아요?"
"야 인마, 어르신들 말씀은 다 배울게 있는 거야. 다 들으면 너한테 나중에 도움 돼."
이러한 자세는 상대방에게 그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억지로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즐기며 경청하는 자세……. 이런 자세가 그를 촉망받는 세일즈맨으로 이끌었다.
 
미국 학생들과 친해지려면 ‘고릴라’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물론 당장 밖에 나가서 ‘헌팅’을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다. 무식하게 들이댈 수 있는 ‘용기’를 갖으란 말이다. 물론 그들한테서 상처받을 수도 있다. 모욕적인 말을 들을 수도 있으며 인종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다면 10명중 1명꼴로 진정한 친구가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노력하다보면 좋은 친구를 얻을 확률이 10명중 1명에서 2명, 3명, 4명으로 늘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상처 받았다고 용기를 잃고 그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멈춘다면, 이런 좋은 사람과의 만남마저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에 '고릴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드디어 킥복싱 시합에서 우승했어. 하하하…….”
과연 그의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 
 
유재호 (서초 Toss English 영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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