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청마 유치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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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청마 유치환을 만나다
  • 서지연 기자
  • 승인 2016.04.02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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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문학관 관람기>관람료 징수 후 관람객 줄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서지연 기자)

지난 3월 마지막 주말, 친구와 통영으로 즉흥여행을 떠났다. 토요일에 출발해 일요일에 올라오는 짧은 여정이라 동피랑마을, 이순신공원 등 주요 관광지 몇 곳만 둘러볼 예정이었다.

여행 이튿날인 일요일, 숙소가 있던 통영 중앙시장에서 곧장 이순신공원으로 향했다. 서울행 버스 시간까지 여유가 있던 터라 통영 중앙시장에서 이순신공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기엔 꽤 먼 거리라는 숙소 주인아저씨의 만류에도 우리는 지도를 붙들고 길을 나섰다.

30분쯤 걸었을까. 슬슬 지쳐가던 참에 ‘청마문학관’이라 쓰여 있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당초 계획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쉬어갈 겸 올라갔다.

▲ 청마문학관ⓒ시사오늘

  

▲ 청마 유치환 상ⓒ시사오늘

우연히 오게 된 청마문학관에서 청마 유치환(1908~1967)을 비롯한 통영출신 유명 예술인들의 예술혼을 접할 수 있었다. 전시관은 청마의 삶을 조명하는 '청마의 생애'편과 작품의 변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청마의 작품 세계'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밖에도 청마의 유품 100여점과 각종 문헌자료 350여점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건물 뒤쪽에는 청마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곳이 있다.

청마는 경남 통영 출생으로 몇 편의 수필과 소설을 남겼지만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시에 나오는 주제는 대개 자연인데 특히 바다가 많이 나와 그의 고향인 항구도시 통영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이다.

그는 현대 한국시단에서 생명파의 대표로 일컬어진다. 일제 강점기(1910~1945)에 쓰여진 초기 작품은 조국에 대한 일본의 압제와 관련돼 있다. 특히 <생명의 서>는 일제 강점기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간도에서 집필한 전형적인 간도문학으로 꼽힌다. 관념적인 문제를 엄숙하고 웅장한 남성적 독백조로 표현한 게 특징이다.

청마는 6.25가 난 다음해인 1951년에 통영으로 돌아가 교직에 몸담았으며 경상남북도 여러 학교에서 교장을 역임했다. 그는 경주고, 경주여중, 대구여고, 경남여고 등에서 교장으로 재직했으며 1967년 부산남여자상고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 청마문학관 뒤쪽으로 올라가면 청마의 생가를 복원한 집이 있다.ⓒ시사오늘

전체적인 이 곳의 분위기는 적적했다. 관람객은 우리를 포함해 5명 뿐이었고 특히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료관람으로 바뀌어서 관람객이 확 줄었어. 무료 관람이었을 때는 하루에도 300~400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말이야...” 주말인데도 사람이 없냐는 우리의 질문에 청마문학관 관리인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청마문학관은 2014년 1월 1일부터 일반인 1500원, 청소년과 어린이는 1000원의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고 한다.

▲ 청마문학관에서 내려다 본 광경ⓒ시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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