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자본권력 그리고 그 후
스크롤 이동 상태바
성범죄와 자본권력 그리고 그 후
  • 김인수 기자
  • 승인 2016.04.12 1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고 피해자는 죄인이 되는 대한민국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인수기자)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기타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

지난 1998년 2월 8일 제정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2조 2항은 ‘성희롱’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최근 性과 관련된 각종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직장 내에서 그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사회적 문제를 넘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의심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직장 내에서 각종 성범죄를 일으킨 당사자는 당당하게 얼굴을 뻣뻣하게 들고 다니면서 죄의식을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 그 피해자는 수치심에 더해 오히려 따돌림을 받으며 견디자 못해 결국 스스로 생을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에서 성범죄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고 피해자가 오히려 죄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수치심에 심지어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 그 범죄질이 심각하다.

2014년 9월에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해 파장이 일었다. 당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25세의 한 젊은 여성 A 씨는 정규직 전환을 오매불망하며 2년 간 힘겨운 생활을 버텼다. A 씨는 주변으로부터 일 잘한다는 칭찬이 자자했고, 중앙회 인사 최고책임자로부터도 정규직 전환을 약속 받았다. 그러던 그가 정규직 전환을 일주일 앞 둔 8월 중순 경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A 씨가 당했던 성희롱 문제를 상부에 이메일로 제기한 것이 원인이 됐다.

A 씨는 중앙회 소속 인재 교육본부로 교육을 받으러 온 중소기업 대표나 CEO들과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라고 강요를 받았고, 부등켜 안기는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B 씨의 상사는 부하직원을 보호하기는커녕 방치했고, 되레 함께 성희롱·성추행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참다못한 A 씨는 이같은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A 씨는 직장 내에서 상당한 괴롭힘을 받았다. 유족 측에 따르면 B 씨의 한 직속상사는 “A 씨가 이메일을 보내서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라며 평소 부하직원들에게 쓰지 않던 존댓말까지 해가며 공개적으로 A 씨를 비아냥거리는 등 ‘왕따’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력하면 다 될 거라 생각했어. 그동안 그래왔듯이…. 그런데 이제는 뭘 해도 결과가 안 좋을 것만 같아. 자신이 없어…내가 순진한 걸까?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굳게 참고 끝까지 자리 지키고 있었던 게. 그들은 설마 이렇게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냥 끝인가 봐. 사람 인생이 걸린 일인데. 속은 사람도 문제이지만, 자기 좋자고 속인 사람들. 적어도 죗값은 치러야 하지 않나?”

A 씨가 남기 유서에 분노가 치밀고 가슴이 먹먹하다.

직접 가해자인 A 씨의 직속상사들은 유가족에게 어떠한 사실인정도, 진심어린 사과도 하지 않았다.

여직원을 성희롱한 범죄자에게 대통령 표창까지 수여한 경우도 있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국공항공사 서울지역본부 B 팀장은 같은 소속팀에서 근무하던 인턴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수차례 하다가 결국 징계를 받았으나 B 팀장은 성희롱 기간에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B 팀장은 인턴 여직원에게 카톡으로 ‘오늘 패션 좋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라’, ‘몸 전체가 다 나오게 찍어서 보내라’ 등의 문자를 발송하는가하면 자신의 상반신을 셀카로 찍어 인턴 여직원에게 전송해 그 인턴직원이 불쾌감과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했다.

또 정장을 입고 출근하자 ‘어른이 다 됐다’고 하면서 ‘카톡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라’라는 등 치근덕 대기도 했다.

이같은 일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5월30일까지 발생했다. B 팀장은 성희롱 기간 중인 2013년 12월 13일에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다.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는 4년째 공방 중인 사내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나몰라라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성희롱 피해자에게 불이익까지 줬다.

르노삼성 직원 C 씨는 2012년 초부터 약 1년에 걸쳐 팀장 최 모 씨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최 씨는 C 씨에게 “아로마 오일을 쫙 발라서 전신 마사지를 해주겠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등 치근덕대는 발언은 물론 신체적 접촉, 개인적 만남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C 씨 2013년 3월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공식적으로 알렸고, 회사는 2달이 지나서야 성희롱 내용 일부에 대해서만 인정해 최 팀장에게 고작 정직 2주의 처분을 내린 게 전부다.

그러나 정작 성희롱 피해자인 C 씨는 회사 측으로 더 심각한 피해를 받았다. 견책 징계를 받은데 이어 직무 정지, 대기 발령 조치에 더해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2013년부터는 지속적으로 최하위 등급의 인사고과만을 부여받았다.

결국 C 씨는 법원에 호소해 성희롱과 사 측의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 승소했다. 하지만 르노삼성은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를 하는 등 자신들의 이미지를 지키는 데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르노삼성은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꼴찌를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업의 윤리정신은 저버린 채 돈만 쫓고 있는 것이다.

과거 공공기관 원장으로 있으면서 여직원을 성추행한 범죄경력자가 유수의 기업체에 대표이사로 선임돼 경우도 있어 비난이 일기도 했다.

지난 3월 과거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던 기간통신사업자인 S사에서 범죄 경력자를 신임대표를 선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자는 공공기관의 S 前 원장이다. S 전 원장은 지난 2012년 6월 15일 오후 2시께 자신의 집무실에서 여비서 D 씨를 갑자기 두 팔로 껴안고 목 뒷부분에 입을 맞추는 성추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대낮에….

S 전 원장의 변명이 가관이다. “껴안은 게 아니라 격려차 등을 두드려준 것이며, 입을 맞춘 것이 아니라 넘어지면서 자신의 이마가 피해자의 목에 닿은 것이다.” 결국 징역 5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다.

이런 범죄 경력자는 유수의 기간통신사업자인 S사에 대표로 자리를 옮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금방 눈치를 챌 수 있다. S 전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뒷배경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S 전 원장이 성추행 파문으로 사임할 당시 해당 공공기관은 아무런 제재 없이 그가 근무한 1년 9개월 치인 1711만원을 지급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과급 명분으로 직원보다 9배가 넘는 상여금 2719만원 등 총 4430만 원을 지급했다. 공무원연금법에도 배치된다.

그렇다면 피해자 D 씨는 어떻게 됐을까. D 씨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6개월간 무급휴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장은 집에서 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직장동료는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은 보내는 제2의 가족과도 같은 존재다.

직장 내에서의 성범죄. 당신은 가족에게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

담당업무 : 산업2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借刀殺人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