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안철수, '유훈정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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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안철수, '유훈정치'의 함정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4.24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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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스트 DJ로는 野 정권교체 어렵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 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왼쪽)과 이희호 여사 ⓒ 뉴시스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사실상 승리하면서 여소야대 정국으로 전환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 들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정작 야권 대선후보인 문재인과 안철수의 이름보다 DJ가 더욱 자주 언급된다. 이들이 유훈정치에 기대고 있는 탓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호남민심을 붙잡기 위해 연이은 'DJ클릭'에 나섰다.

총선 직전 호남을 깜짝 방문, 정계은퇴라는 배수진까지 쳤지만,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핵심 지지기반이었던 광주에서 8개 지역구 전부 국민의당에 넘겨줬다. 일부 호남지역 당선자는 문 전 대표의 방문이 오히려 선거운동에 부담이 됐다고 불만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악화된 지역민심을 되찾기 위해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8일 찾은 곳은 DJ 생가가 있는 전남 하의도였다. DJ 3남 더민주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도 동행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문 전 대표의 광주 방문도 함께 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을 모시던 분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시던 분들 모두 한자리에 모아 과거의 사사로운 감정을 뛰어넘어 하나로 뭉쳐서 정권교체를 하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DJ의 후계자'를 자처한 것은 국민의당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지난 1월 말 창당을 앞두고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신당이 DJ 정신을 잇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독대는 비공개로 진행됐고, 안 대표는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년 대통령 선거에 꼭 정권교체 성공하겠다고 말씀드리자, 여사님께서 예전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도 안타까웠다면서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꼭 이뤄달라고 했다"고 독대 소감을 전했다. 

여론은 술렁거렸다. 안 대표가 전한 이 여사의 발언은 더민주가 아닌 신당을 'DJ의 적통'으로 인정하는 셈이었다. 당시 권노갑·정대철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신당에 대거 합류, 이같은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김홍걸 위원장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발하자, 안 대표 측에서 독대 현장의 녹음파일을 한 언론사에 제공, 파문이 일파만파 커졌다.

당시 논란은 해당 실무진의 사의 표명과 안철수 대표의 공식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DJ에 대한 야권의 힘겨루기가 얼마나 치열한 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문제는 두 전현직 대표 모두 DJ의 이름을 차지하는 데 급급해 본인의 정치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야당 지지자 대부분이 지난 2012년 대선을 통해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이들의 정치 비전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구분하지 못한다. 

이는 야권 전반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각각 '경제심판'과 '정치교체'를 대표 슬로건으로 걸었지만, 후보들의 공보물에는 여전히 전직 대통령들의 사진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관련기사: [20대총선 벽보 보기]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139)

야권이 이처럼 유독 유훈정치에 의존하는 것은 야권 전통 지지층인 '호남'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권후보의 정치적 역량보다 전직 대통령과의 인연이 강조되는 방향은 야권 중심의 정권교체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각자 그리는 정국 운영의 청사진이 구체적이지 않다면, 유권자도 정확한 비교가 어렵다. 단순히 인간적인 면에 따라 편이 갈리고 감정적인 싸움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결국 감정은 분별력을 잃게 한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양질의 야권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이는 정권교체를 어렵게 만든다.

이같은 측면에서 현재 지구 반대편에서 한창 진행 중인 대선 경선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 민주당의 힐러리와 샌더스. 세 후보는 특정 거물 정치인에 기대지 않고, 본인의 이름을 걸고 경선을 치르고 있다.

특히, 힐러리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이자 오바마 대통령의 참모지만 본인의 정책노선으로 대중의 평가를 받고 있다.

야권의 또 다른 대선후보로 떠오른 더민주 한 의원 역시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책임질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새정치' 또는 '사람이 먼저인 정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전직 대통령 이미지가 아닌 본인의 이름을 건 정치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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