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웅 119④] '불꽃같은 사나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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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웅 119④] '불꽃같은 사나이들'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5.15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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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2001년 3월 4일 홍제동 화재 사고를 회상하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시사오늘> 181호 커버스토리를 시작으로 본지는 서울 은평소방서 이성촌 현장대응단 구조1대장의 <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를 연재한다. 현직 소방대원이 현장에서 직접 '소방관의 희로애락'을 들려주는 이번 연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생활 속 작은 영웅' 소방관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한다.  <편집자주>

▲ 2001년 3월4일 홍제동 사고 현장 ⓒ 은평소방서

2001년 3월 4일 새벽 4시, 일상적인 사람들에게는 3.1절이 지난 그냥 3월의 어느 하루, 하지만 내게는 이 주황색 제복을 벗고 난 이후의 삶에서도 평생 잊혀 질 수 없는 그날이다. 회상하면 아직도 내 뇌리에 당시 사고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몸이 파르르 떨려온다. 긴 한숨으로 얼룩진 그날의 억만겁 같았던 몇 시간을 조심스레 꺼내본다.

그날 난 비번이었다. 24시간 근무하기 위해 청하는 새벽잠은 내게 늘 꿀맛이었다. 그렇게 곤히 잠을 청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집 전화가 울렸다.

“비상, 비상, 속히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도록.”

택시에 몸을 싣고 황급히 녹번동 소방서에 도착하니, 동료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아끼며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들 입을 굳게 닫고 무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당직 근무에 임하고 있던 직원을 통해 힘겹게 현재 상황을 통보 받는데 말문이 막혔다.

“화재 출동 중 건물이 붕괴돼 대원들이 매몰됐습니다.”

나는 커다란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다급히 출동복장으로 환복하고 홍제동 사고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2층 건물이 화마로 뒤덮인 상황에서 ‘우리 아들이 있다’는 한 거주자의 말을 듣고 구조대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진입해 인명검색을 실시하고, 화재 진압대원들은 수관을 끌고 건물 안에 들어가 뜨거운 열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던 중 갑자기 굉음과 함께 건물이 붕괴된 것이다.

밖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대원들은 무전과 육성으로 목이 터져라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박동규 반장님” “김기석 반장님” “승기야” “석찬아” “준우야” “김철홍 반장님” “상옥아”

기다리는 대답은 오지 않았다. 이름 소리만 교차돼 애타게 울려 퍼졌고, 타다 남은 잔불소리만 ‘타닥타닥’거렸다. 그렇게 삽시간에 건물 한 채가 붕괴됐다.

우리 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 직원들은 물론이고 인접한 종로, 마포서에서 나온 수많은 직원들이 햄머드릴, 곡괭이, 삽, 심지어는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파헤쳤다. 하지만 좀처럼 내 동료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과의 사투.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한곳에서 본적이 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강한 남자들의 눈물. 몇 백도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수많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낸,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살아온 남자들의 뜨거운 눈물. 그들의 얼굴은 동료를 구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이 섞인 눈물 자국과 굵은 땀방울로 뒤범벅돼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허리를 쉽게 펼 수 없었다.

우리 대원들의 힘만으로는 빨리 동료들을 구조할 수 없다는 생각에 포크레인을 요청했지만, 입구 근처에 불법 주차돼 있는 수많은 차들로 인해 진입조차 불가했다. 중장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힘을 몇 백배 더 써야했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공간이 생겼다. 겨우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공간에 공기 호흡기를 있는 대로 틀어 공기 주입에 들어갔다. 공기를 좁은 구멍 속에 불어넣자 시꺼먼 연기가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안에 갇혀서 저 연기를 마셨을 동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종로 구조대 허 반장님이 내게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지체 없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진입했다. 숨을 들이마시자 연기가 기관지를 통해 폐 안으로 들어왔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뜰 수 없는 눈에서는 눈물만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아랑곳 할 여유가 없었다. 시야 확보는 불가능했다. 눈에 의지하지 않고 손과 발을 이용해 여기저기 더듬었다.

어느 순간 매몰된 동료들의 손이 잡혔다.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게 중요치 않았다. 오로지 빨리 구조해야 한다,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같이 진입한 동료들과 함께 밖으로 한 명 한 명 구조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공기 호흡기 면체를 벗은 상태였고, 누구는 면체를 그대로 쓰고 있는 채 따뜻하게 남아있는 마지막 온기를 내 손길에 내어주며 말없이 쓰러져 있었다. 공기 호흡기 면체를 벗었다는 건 살아있었다는 증거였다. 그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웠다. ‘살릴 수 있다, 살아있을 것이다’라는 자그마한 희망, 제발 그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그들을 구조했다.

구조한 동료들은 총 7명이었다. 그들은 곧장 근처 병원으로 분산 이송됐고, 현장에 남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그들의 생사가 어떻게 됐는지 알지도 못한 채, 거주자가 매몰돼 있을 수 있다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지막까지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러나 ‘내부에 아들이 있다’는 거주자의 말과는 달리 그 아들은 그곳에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지만 이날 화재는 그 아들의 방화로 발생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날의 처참한 사고는 마무리됐지만 난 하루아침에 가족보다 더 소중한 6명의 동료를 잃었다. 몇몇 동료는 그날의 사고로 주황색 제복을 벗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겠노라고 불편한 몸으로 지금껏 현장을 누비며 활동하는 동료도 있다. 15년 전 그날 홍제동 사고는 우리 소방 역사상 가장 큰 재난이었다.  

나는 보고픔, 그리움 그리고 살리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또 그들의 가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매년 3월 4일이면 대전 현충원을 찾아 그들의 묘비 앞에 앉아 쓰디쓴 소주잔을 나눈다. 당신들의 몫까지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하고 온다.

▲ 홍제동 화재 사고로 순직한 여섯 명의'불꽃같은 사나이들' ⓒ 은평소방서

우리 소방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사선까지 마다하지 않고 넘나들며 출동한다. 많은 시민들이 양보운전에 동참해 주시지만 일부는 아직도 비양심적 운행을 하고 있다. 또한 불법주차로 인해 소방차량이 제대로 진입하지 못해, 멀리 떨어진 현장까지 무거운 장비를 메고 뛰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날 현장에서도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에 중장비를 쓸 수 없었다. 1분, 1초에 수많은 시민들이 생사를 넘나드는데 소중한 시간을 골목 길바닥에 허비하자니 안타까울 때가 많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119에게 길을 내어주시면, 그 길을 ‘안전고속도로’로 만들어 시민 여러분께 돌려드리겠다. 우리 119는 늘 이렇게 시민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발맞춰 걸어갈 것이다. ‘Safe Korea’,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원한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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