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추모의 장이 극단적인 남녀 성대결의 장으로 변질된 모양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간과된 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서로에 대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1일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강남역을 방문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서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고, 폭력을 조장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있어야 될 자리에 광기만이 가득했고, 애도의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할 대중들은 증오로 가득찬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본질은 이 사건이 여혐(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혐은 피의자의 범죄 동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피의자는 분명히 여혐을 살해 동기로 밝혔다. 그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아무 여성에게나 복수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피의자는 정신분열증으로 4차례 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는 정신질환병력자이기도 하다. 최소한 두 개의 범죄 요인이 혼재돼 있다는 의미다. 여혐 범죄냐, 아니냐가 단순 이분법적 사고 아래 소모적인 논쟁인 이유다.
우리가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강남역 살인 사건의 본질은 바로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라는 것이다. 22일 경찰은 "강남역 살인 사건은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여혐 범죄냐, 아니냐를 따질 게 아니라, 묻지마 사건에 대해 여전히 취약한 치안 구조와 치안 공백, 그리고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관계 당국의 관리 부재 등 시스템 문제에 더 주목해야 마땅하다.
여혐이라는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의 동기만 강조하다보면 우리 사회는 묻지마 범죄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공론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게 된다.
그에 따른 피해는 묻지마 범죄의 주요 표적인 노인, 여성, 어린아이 등 사회적 약자가 고스란히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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