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사건과 묻지마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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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 사건과 묻지마 범죄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5.22 17:1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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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여혐 조명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험에 대한 경각심 공론화 돼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추모글 아닌 추모글 ⓒ 시사오늘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추모의 장이 극단적인 남녀 성대결의 장으로 변질된 모양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간과된 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서로에 대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1일 기자는 취재를 위해 강남역을 방문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서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고, 폭력을 조장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있어야 될 자리에 광기만이 가득했고, 애도의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할 대중들은 증오로 가득찬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본질은 이 사건이 여혐(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혐은 피의자의 범죄 동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피의자는 분명히 여혐을 살해 동기로 밝혔다. 그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아무 여성에게나 복수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피의자는 정신분열증으로 4차례 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는 정신질환병력자이기도 하다. 최소한 두 개의 범죄 요인이 혼재돼 있다는 의미다. 여혐 범죄냐, 아니냐가 단순 이분법적 사고 아래 소모적인 논쟁인 이유다.

우리가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강남역 살인 사건의 본질은 바로 이 사건이 '묻지마 범죄'라는 것이다. 22일 경찰은 "강남역 살인 사건은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여혐 범죄냐, 아니냐를 따질 게 아니라, 묻지마 사건에 대해 여전히 취약한 치안 구조와 치안 공백, 그리고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관계 당국의 관리 부재 등 시스템 문제에 더 주목해야 마땅하다.

여혐이라는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의 동기만 강조하다보면 우리 사회는 묻지마 범죄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공론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게 된다.

그에 따른 피해는 묻지마 범죄의 주요 표적인 노인, 여성, 어린아이 등 사회적 약자가 고스란히 입게 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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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wavef 2016-05-22 21:17:29
마지막 두 문단은 여성들이 만연한 여혐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며 '나대지' 말 것을 경고하는 협박처럼 느껴집니다. 살인범이 자기 입으로 밝힌 범행동기를 무시하고 젠더에 기반을 둔 사건에서 여성혐오를 쏙 빼놓으려는 것은 여성의 입을 닫게 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성차별주의적이며 증오범죄에 조력하는 것입니다.

thirdwavef 2016-05-22 21:15:22
취약한 치안 구조와 치안 공백이 문제라면 어째서 그런 위험에 남성과 여성이 함께 노출되어도 한쪽 성이 대부분의 폭력을 저지르고 다른 성은 대다수 폭력의 피해자인지 의문이 들지 않나요? 이렇게 명백히 특정 성별을 대상으로 살인 사건을 한 정신질환병력자가 미쳐 날뛰어 벌어진 일인 양 축소시키면 여성대상 증오범죄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할 수 없고 여성은 계속해서 죽어 나갈 거예요.

thirdwavef 2016-05-22 21:13:17
이번 사건이 누구든 희생될 수 있던 묻지마 범죄였다면 왜 피해자보다 앞서 화장실을 이용한 여럿의 남성들은 왜 죽지 않았을까요? 피의자가 여혐을 살해 동기로 밝혔다면서 왜 묻지마 범죄로 퉁치려고 하죠? 여자가 죽이기 만만하고 쉬워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여성을 처벌하고 죽여도 된다고 허용하는 사회라 일어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