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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술 이야기②]MM시스템부터 토털 풋볼까지
2016년 06월 18일 (토)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를 받은 리오넬 메시는 역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헤라르도 마르티노 감독 하에서의 리오넬 메시는 마치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 같았다. 같은 선수가 같은 팀에서 같은 동료와 함께 뛰었음에도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전술’이라는 참고서가 필요하다. 〈시사오늘〉은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유로 2016 등 남미와 유럽을 달구는 ‘축구 축제’ 개막에 맞춰 축구 전술을 다루는 시간을 준비했다. 오늘은 ‘지루하지만 알아두면 좋은’ 간략한 축구 역사 두 번째 시간이다.

   
▲ 네덜란드는 축구사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갖는 팀이다 ⓒ 뉴시스

MM 시스템의 등장

허버트 채프먼이 고안한 WM 시스템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허버트 채프먼이 지휘봉을 잡았던 아스널은 세 시즌 연속 리그를 제패했고, 그의 사후에도 세 번 더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FA컵 우승컵도 들어 올렸다. 2-3-5 시스템만큼은 아니지만, WM 시스템 역시 1950년대까지 약 20여 년간 세계 축구의 주류 전술로 이름을 날렸다. 양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2년 만에 재개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팀 우루과이, 그로부터 4년 뒤 있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의 우승팀 서독 모두 WM 시스템을 가동한 팀들이었다.

이처럼 1950년대 초반까지 WM 시스템은 무결점의 완성형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당시만 해도 수비의 기본은 1:1 대인 방어였기 때문에 상대팀 공격수 1명을 우리 수비수 1명이 상대하게 하는 WM 시스템은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WM 시스템의 기본 전제를 뒤집어 엎어버린 감독이 출현했다. 1950년대 초반 헝가리 대표팀을 맡았던 구스타프 세베스는 축구가 1:1 싸움의 총합이라는 전제에 반기를 들었다. 그가 보기에 축구는 11명의 선수를 상황에 따라 잘 활용하기만 하면 1:1 싸움 외에도 얼마든지 많은 변수를 마련할 수 있는 스포츠였다. 구스타프 세베스의 생각은 간단했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임으로써 WM 시스템의 장점인 안정성을 흔들어 놓자.’

마침 헝가리 대표팀에는 구스타프 세베스의 구상을 현실화시킬 선수들이 있었다. 당시의 센터 포워드로서는 드물게 풍부한 활동량과 뛰어난 패스 능력, 수준급의 발기술을 갖추고 있던 난도르 히데쿠티는 최전방에 머물러 있지 않고 2선으로, 좌우로 움직이면서 상대 센터백을 끌어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950년대 초반에는 대인 방어가 수비의 정석으로 여겨졌으므로 센터 포워드가 폭넓게 움직이면 센터백은 마땅한 대처 방법이 없었다. 센터 포워드를 따라 나오면 골키퍼 바로 앞 공간이 텅텅 비고, 센터 포워드를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면 다른 수비수가 수적 열세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난도르 히데쿠티가 2선으로 빠지고, 페렌츠 푸스카스와 산도르 코츠시스가 전진하면 공격진이 M자로 재배치됐는데, 사람들은 이를 MM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MM 시스템을 활용한 헝가리 대표팀은 당대 최고의 팀이던 잉글랜드 대표팀을 ‘잉글랜드의 성지(聖地)’ 웸블리 구장에서 6-3으로 완파했고, 1년 뒤 갈고 닦은 WM 시스템으로 복수전에 나선 잉글랜드를 7-1로 대파(1954년 5월 23일)했는데, 이 경기는 아직도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상 최다 득점 차 패배 경기로 남아 있다. (참고로 최초로 월드컵에 참가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헝가리 대표팀을 만나 9-0으로 대패를 당했는데, 당시 헝가리 대표팀 주장이 페렌츠 푸스카스였다.)

4-2-4 시스템과 카테나치오

MM 시스템의 등장은 세계 축구계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진리처럼 신봉되던 WM 시스템이, 그것도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가 MM 시스템에게 당한 패배는 모든 감독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때부터 전 세계 축구 지도자들은 여실히 드러난 대인 방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골몰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전술의 흐름은 공격적인 4-2-4 시스템과 수비적인 카테나치오 시스템의 두 조류로 갈라지게 된다.

4-2-4 시스템

헝가리 대표팀의 MM 시스템에 브라질 지도자들이 보인 관심은 남달랐다.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준우승에 그친 브라질 대표팀은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해 월드컵 우승을 노렸고, 이 과정에서 헝가리 대표팀의 MM 시스템을 도입, 개량, 발전시킨다.

본질적으로 MM 시스템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공격 방식의 혁신성과는 달리, 수비는 WM 시스템의 대인 방어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포지션 체인지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MM 시스템의 전성기가 끝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구스타프 세베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고심 끝에 지역 방어를 해답으로 내놓았다. 이러한 구스타프 세베스의 지역 방어 개념을 바탕으로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 비센테 페올라가 완성시킨 것이 4-2-4 시스템이다.

비센테 페올라는 스리백 대신 좌우 밸런스가 좋은 포백을 활용해 지역 방어의 기반을 다지고, 전방의 공격수 네 명에게 쉴 새 없는 자리바꿈을 주문해 아직까지 포지션 체인지에 익숙해지지 못한 상대 수비를 농락했다. 4-2-4 시스템은 지역 방어와 포지션 체인지 외에도 두 명의 미드필더가 한층 진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4-2-4 시스템에서 두 명의 미드필더는 수비에 가담해 상대의 포지션 체인지를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적 우위를 만들었다. 이러한 진보적 전술을 바탕으로 브라질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카테나치오 시스템

지역 방어와 포지션 체인지라는 개념을 공격적으로 재해석한 브라질의 지도자들과 달리, 위험 회피적 성향이 강한 이탈리아는 보다 수비적인 쪽으로 MM 시스템을 개량해 나갔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카테나치오 시스템이다. 인테르 밀란의 감독이었던 엘레니오 에레라는 포지션 체인지라는 숙제를 대인 방어 + 지역 방어라는 독특한 해법으로 풀어냈다.

엘레니오 에레라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상대가 포지션 체인지를 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공간을 허용하게 되거나 수적 열세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위험한 지역 방어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필요는 없다.’

엘레니오 에레라의 해법은 수비수를 한 명 더 두는 것이었다. 네 명의 수비수 뒤에 한 명의 수비수, 즉 리베로(Libero)를 추가 투입하는 방법이다. 상대가 4-2-4 시스템을 바탕으로 포지션 체인지를 시도할 경우, 네 명의 수비수가 상대 공격수를 각각 한 명씩 막고, 포지션 체인지로 인해 생기는 공간이나 대인 방어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만들어지는 수적 열세는 리베로가 커버한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 포메이션이 네 명의 수비수 뒤에 리베로라는 빗장을 걸어 문을 잠가버리는 모습과도 같다고 하여 카테나치오(Catenaccio)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테나치오란 이탈리아어로 ‘빗장’이라는 뜻이다.

카테나치오 시스템은 수비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대인 방어 뒤에 리베로가 대기해 공간을 커버하고 수적 우위까지 확보하며, 상대 미드필더의 공격 가담은 우리 미드필더가 방어했으므로 그야말로 물샐 틈이 없었다. 문제는 공격이었다. 수비에 최소 5명, 최대 7명이 배치되는 전술이기 때문에 공격은 3~4명의 선수가 해결해야 했다. 이 대목에서 나오는 개념이 ‘판타지 스타’다. 수비적 전술 성향 탓에 늘 수적 열세 속에서 공격을 해야 했던 이탈리아의 공격수들은 탁월한 개인기와 백발백중의 골 결정력을 겸비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이탈리아에는 혼자서 마법 같은 플레이를 펼치며 득점을 올리는 공격수, 판타지 스타가 많이 배출됐다. 이탈리아가 좋은 수비수 못지않게 좋은 공격수를 많이 배출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던 셈이다.

또한 엘레니오 에레라는 레프트백 지아친토 파케티로 하여금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함으로써 공격 상황에서의 수적 열세를 풀백의 오버래핑으로 극복하려 했다. 수비 상황에서는 왼쪽 수비를 보다가 공격 상황에서는 앞으로 달려 나가 공격을 지원했던 지아친토 파케티는 현대 풀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엘레니오 에레라는 현대적인 풀백의 개념을 가장 먼저 도입한 감독으로도 알려져 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토털 풋볼

세계 축구는 공격의 4-2-4 시스템과 수비의 카테나치오 시스템으로 나뉘었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팀들이 있었다. 공격하고 싶어 4-2-4 시스템을 받아들였으나 유럽 특유의 투박함이 발목을 잡은 팀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공수 밸런스 유지를 위해 공격수 한 명을 줄여 4-3-3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시도하는 등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이 때 ‘공격하고 싶은 유럽 팀’들에게 희망의 빛을 제시한 팀이 있었으니, 바로 토털 풋볼의 네덜란드다.

‘토털 풋볼의 아버지’ 리누스 미헬스는 공격적으로 경기하기 위해서는 후퇴가 아닌 전진을 모토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축구는 ‘너 한 번 나 한 번’의 게임이었다. 수비하고, 한참을 전진해서 공격하고, 다시 한참을 후퇴해서 수비하는 일이 당연했다. 리누스 미헬스는 이런 고정 관념에 반기를 들었다. 수비하려고 40~50m를 후퇴하면 공격하기 위해 다시 40~50m를 전진해야 하는데, 이것이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논리였다. 후퇴하지 않고 볼을 빼앗으면 그만큼 상대 골문과 가까운 곳에서 공격할 수 있다. 리누스 미헬스의 생각은 그랬다.

상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는 수비 라인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와야 한다. 압박이란 상대가 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박탈하는 작업이므로, 수비 라인이 높이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압박의 강도도 강해진다. 예를 들어 수비 라인이 25m 지점에 자리를 잡으면 상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길이 80m 폭 68m지만, 수비 라인이 50m 지점까지 밀고 올라오면 상대는 길이 55m 폭 68m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토털 풋볼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수비 라인의 항상적 전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수비 라인이 높이 올라오면, 그만큼 수비 뒤 공간에 대한 위협도 커진다는 점이다. 상대 공격수가 수비 라인을 뚫고 침투할 경우, 우리 골키퍼는 꼼짝없이 상대 공격수와 일대일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약점을 방지하기 위해 리누스 미헬스는 선수 사이에 좁은 간격을 유지할 것과 정교한 오프사이드 트랩 활용을 주문했다.

리누스 미헬스가 좁은 간격 유지를 강조한 이유는 압박의 강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선수들의 간격이 촘촘하면 볼을 빼앗기는 즉시 강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처럼 볼을 빼앗기자마자 강하게 압박하면 상대는 수비 뒤 공간으로 패스를 넣을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없다. 반대로 선수들 사이가 멀어지면 볼을 빼앗겼을 때부터 상대 선수에게 접근할 때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만큼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정교한 오프사이드 트랩을 쓴다 해도 실점 위기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토털 풋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후방 수비 라인이 지속적으로 오프사이드 함정을 파면서 전진하고, 최대한 안전하게 볼을 소유하되 볼을 빼앗기면 즉시 강한 압박을 시도해 빠른 시간 안에 소유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토털 풋볼의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는 팀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음에도(바르셀로나, 스페인 대표팀 정도가 전부다)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을 현대 축구의 시작점으로 삼는 이유는 이러한 압박의 개념이 현대 축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압박 축구의 태동이 축구사의 전환을 의미하는 이유는 공격과 수비의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압박 축구 이전의 공격은 기회를 만들어 내는 데 중점을 뒀다.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는 플레이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상대의 수비진을 뚫고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행위가 공격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압박 축구가 등장한 이후에는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는 것부터가 공격 전술의 범위에 포함된다. ‘공격 전개’의 개념이 훨씬 광범위해진 것이다. 〈계속〉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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