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27 목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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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 散策]임수경, "불화와 대결의 시대에서 ‘통일의 꽃’을 꿈꾼다"
더불어민주당 임수경 전 의원
"포화상태 빠진 한반도…유일한 활로는 통일, 그리고 대륙"
"통일에 대한 의지 정말 있나…박근혜 대통령이 의뭉스럽다"
"北보다 우위에 있는 우리나라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2016년 06월 24일 (금) 글 임수경 전 의원/정리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임수경 전 의원/정리 박근홍 기자)

“불화(不和)의 시대에서 의원 4년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제(20일) 언론인 손석희 씨에게 받은 문자다. 아마도 내가 지난달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와 낸 <임수경 스토리>라는 책을 읽고 보낸 메시지였을까. 그의 문자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1989년 6월 30일, 금기의 땅이었던 북한에 발을 디뎠던 순간부터 지난 4년간의 19대 국회의원 의정활동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지나간 세월의 모든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 더불어민주당 임수경 전 의원 ⓒ 시사오늘

손석희 씨의 말처럼 작금은 불화의 시대다. 49년을 살아오면서 지금과 같이 극심한 불화를 목도한 적이 없었다. 군부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벌였던 1980년대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6월 항쟁 때 거리에 나선 학생들에게 시민들은 빵과 음료수를 나눠줬다.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사람들의 허연 얼굴을 물로 씻어줬다. 시위를 지지하지 않는 시민들은 그냥 묵묵히 곁을 스쳐지나갔다. 요즘처럼 맞불집회를 열거나, 폭력 사태로까지 번지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그리고 대결의 시대다. 내가 처음 북한을 방문한지 어느덧 27년이 흘렀다. 그사이 ‘미국 대 소련·중공’의 냉전시대가 막을 내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이 민중들에게 이양됐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한반도에도 머잖아 철의 장막이 걷혀지리라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남북대결 구도는 더욱 심화됐다.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5·24 조치,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 등으로 인해, 남한과 북한은 그야말로 ‘신(新)냉전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이 같은 불화와 대결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고통스럽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신음하고 있고, 바로 윗세대는 비정규직, 구조조정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인구문제는 날로 심각해져 간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충동적 범죄는 극심한 불화와 대결에 따른 정서적인 문제가 발현된 게 아닌가 싶다. 개인의 삶을 찾기에, 공동체의 희망을 찾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과연 충분한 곳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나는 우리가 직면한 불화와 대결이 포화(飽和)상태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과 반세기만에 극복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물질의 풍요와 경제적 안정을 누리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남을 짓밟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이기적인 경쟁 풍토가 자리를 잡았고, 바쁜 게 사회의 미덕이 됐다. 삶의 질은 그대론데 물질에 대한 욕구는 급격히 증가해 넘치기 일보직전이다. 지난날의 성공 시스템이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라는 작은 섬에 갇혀서는 더 이상 자생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나는 그걸 풀 수 있는 유일한 활로는 대륙이라고 확신한다. 지금이야말로 ‘통일’이 절실한 때다.

공염불이 된 박근혜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1988년 내가 통일운동을 시작할 때만해도 통일담론은 막연했다. 그야말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연장선상이었다. 이념과 제도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저 ‘북한 사람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북녘땅을 한 번 밟고 싶다’는 식의 추상적인 통일 지향이었다. 그러던 게 1990년대 들어서 점점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지고, 북한에 세습체제가 정착되면서 추상적·감성적 차원의 통일담론 대신, 아주 건조한 현실적 통일담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연달아 성사시키면서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 사이에는 ‘이제 통일은 정부의 몫이구나’라는 인식이 각인돼 버렸다.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존 통일운동의 중심에 있던 순수하게 통일을 지향하고 준비하는 세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그들 역시 일반국민들과 마찬가지로 통일은 정부의 몫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안티 통일운동 세력 역시 통일에 대한 반대가 아닌 정부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목표 자체가 변질됐다. 사회 전반적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국민들이 눈을 돌리는 사이, 정부는 안일한 대북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통일이라는 민족적 목표에 이반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 같은 행보를 보였다. 감시의 눈길이 없으니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 결과는 박왕자 피살 사건에 따른 금강산 관광 중단, 천안함 사태, 남북 교류협력 중단, 북핵 위기, 개성공단 폐쇄 등 ‘신(新)냉전시대’의 도래였다.

사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친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사람이지 않나. 박정희는 남북교류의 출발점 역할을 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무장공비 김신조를 보내 청와대를 습격했음에도, 불과 4년 후인 1972년 이후락을 평양에 파견해 7·4 남북 공동성명을 추진했다. 물론 그사이 유신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남기긴 했지만, 공과(功過)는 분명히 따질 필요가 있다.

   
▲ 2002년 5월 13일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난 박근혜 대통령 ⓒ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제공

박 대통령은 그런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을 만나기도 했다. 북한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 번 가보자’,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한 번 만나보자’는 발상을 한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극단적인 네거티브가 아니라 북한과의 대화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5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했을 테고, 외교통상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믿었는데 내가 참 순진했다.

현 정권은 대북 강경기조를 너무 일찍부터 규정해 버렸다. 가벼운 도박을 할 때도 패를 감추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정석인데, 하물며 이런 고도의 정보싸움, 더욱이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강경한 대북정책을 펼쳤고, 통일전략을 사실상 모두 공개하다시피 했다. 결과적으로 북한과의 신뢰 조성에 실패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공염불에 그쳤다.

대통령이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다면 대북관계 개선은 어렵다. 통일문제는 대통령의 어젠다이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면 누군가 나서서 설득하고 나아가 토론을 통해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번 정권에서는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통일부의 존재의미, 그리고 정치인의 덕목

더욱 심각한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 통일부 장관의 역할이 급격하게 위축됐다는 점이다. 통일부 장관이 뭐하는 자리인가.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보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여러 건의와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설득과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류길재 전 장관, 홍용표 현 장관이 박 대통령과 그런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이는 박 대통령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남북장관급 회담 결렬, 개성공단 폐쇄 과정에서 보인 통일부의 태도를 보면 과연 통일부가 정말 통일을 염원하고 있는지 상당히, 의뭉스럽다.

장관급 회담 추진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원하는 특정 인사를 북한이 테이블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하니까, 우리도 장관이 아니라 차관을 내보내겠다고 내세우더라. 북한 대표로 나오는 사람이 과연 장관급인지, 아니면 차관급인지 정보가 부족한 우리가 함부로 예단할 수 있는가. 누가 테이블에 나왔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양측이 대표로 내보낸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격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는데 격을 따졌으니, 회담이 아예 깨져버렸다. 우리는 애초 계획대로 장관급을 대표로 세웠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개성공단 폐쇄에 찬성한 통일부는 존재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절대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청와대나 다른 부처에서 폐쇄를 주장하더라도 끝까지 반대해야 통일부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통일부 장관이 발표하더라. 만약 내가 장관이었다면 적어도 발표만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하라고 맞서든지, 아니면 장관직을 스스로 내려놨어야 했다. 개성공단 폐쇄를 막는 제스처는 보여주지 못할망정, 거기에 힘을 싣는 모양새를 보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류길재 전 장관은 지난해 장관직에서 물러나면서 “누가 가도 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통일부 장관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의미와 다름 아니고, 장관 스스로가 자신의 자리를 가볍게 여겼다는 방증이다. 진정 박근혜 정부와 통일부가 통일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가장 중요한 사람이 통일부 장관으로 있어야 되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정치에 몸담은 사람들은 항상 공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를 작성하고 집밖에 나서는 최후의 순간에도 길 곳곳에서 자라는 잡초를 뽑았다. 그런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 바꾸려고 하고, 노력하고, 실천에 옮기고 그게 정치인의 덕목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보면서 그게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정말 철저하게 아버지와 자기 자신을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인가. 어린 나이에 청와대에 들어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기에 그 누구보다도 정치인의 공적 마인드를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던 사람인데, 나로서는 참 믿기 어렵고, 믿고 싶지도 않다. 아직은 잔여임기가 남았기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본다.

1989년 6·30, 나는 발자국 없는 눈길을 걸었다

   
▲ 더불어민주당 임수경 전 의원 ⓒ 시사오늘

안타까운 마음이 드니, 1989년 6월 30일 처음으로 북녘땅에 발을 디뎠을 때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벌써 30년 전이다. 금기의 벽으로 향하는 그 길, 새하얀 눈이 소복이 덮인, 아무도 걷지 않아 발자국이 없는 눈길을 나는 오롯이 걸었다. 그 길의 종착지는 내가 상상하던 풍경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대동강에는 강물이 흘렀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생지옥이라고 배웠는데,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남조선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귀여운 여학생이 왔다.’ 양쪽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남긴 발자국을 좇아 그 길을 걸었다. 무수한 발자국이 눈밭에 아로새겨졌고 길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깨끗하게 포장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가뭇없이 거대한 장벽이 그 길에 쳐졌다. 그 장애물은 불화와 대결의 시대를 알리는 ‘비석(悲石)’이었다. 가로막힌 한반도는 포화상태가 됐다.

이를 뚫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우위에 있는 사람이 먼저 접근해야 풀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경제력으로 보나, 국력으로 보나 북한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는 국가다. 강경기조를 내려놓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신뢰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북한은 절대 먼저 손 내밀지 않는다. 우리보다 아래에 있는 그들에게 남은 건 자존심밖에 없다. 없이 살더라도 우리끼리 살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문제도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양쪽에 다리를 놔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확대해 경색된 국면을 풀어줘야 한다. 불화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해, 한반도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통일, 그리고 대륙 말고는 갈 곳이 없다.

아마 정권이 교체되면 인도적인 차원의 교류협력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나아지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거대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 3대 세습체제가 확립되면서 ‘핫라인’이 다 끊겼다. 인도적 교류협력도 사실상 단절된 상태고, 유일한 창구였던 개성공단까지 문을 닫은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정보난이 심각한 실정이다. 이는 우리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최근 들어 내국인 사찰 쪽에 치중한 영향이 커 보인다. 국정원을 정권을 잡는 데에 ‘오용(誤用)’했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일부 세력은 어떠한 정보도 없이 김정은 체제의 몰락과 붕괴 시나리오를 자꾸 언급하고 있다. 김정은이 들어선지 벌써 7년이 지났다. 7년을 지속하고 있는 3대 세습체제가 머잖아 무너질 것이라고 예단하려면 그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상식적이다. 섣부른 예단이다.

되새겨야 할 YS표 대북정책

북핵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교류협력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는 납득하기 힘들다. 일단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대화를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먼저 화해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 기약 없는 북한의 핵 포기 선언을 기다리며 이 상태로 갈 셈인가. 국내외 불안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국민을 위한 길이 결코 아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대북정책을 되새겨볼 때가 아닌가 싶다. 문민정부는 역대 정권 가운데 대북관계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조치를 단행한 정권이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꼽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냉전 붕괴라는 국제정세의 흐름으로 인해 주변국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갔던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디테일한 측면에서 북한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건 YS였다.

군사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민간으로의 권력 이양을 이룩하는 데 앞장선 YS는 1993년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며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집권 초기에 통일부 장관을 통일부총리로 격상시키고, 그 자리에 당시 진보적 학자로 이름을 알렸던 한완상 전 총리를 임명했다.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를 송환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처럼 YS는 국내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점진적으로 확대시켰다. 1993년 우리가 1차 핵위기를 무사히 넘긴 배경에는 YS의 이 같은 노력이 깔려있다.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권력인 박근혜 대통령과 앞으로 미래권력들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통일과 정치인의 역할, 그리고 통합과 화합

   
▲ 더불어민주당 임수경 전 의원 ⓒ 시사오늘

통일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치인들이 선행해야 할 작업이 하나 더 있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는 통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도 다수다. 사실 통일에만 관심 없는 게 아닌 것 같아 더 걱정스럽다.

나는 한국외대와 성공회대에서 시간강사를 10년 정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그들에게 배우는 일에 무척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회의감이 느껴져서 그만뒀다. 내가 마주하는 대학생들이 ‘대학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는 대학생으로서의 자기의 주관도 느껴지지 않았고, 독자적인 논리도 보이지 않았다. ○○○ 대학생이 아니라 아무개집 아들, 딸이었다. 마치 고등학교 4학년, 5학년 같았다. 열심히 노는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다른 분야에 꽂혀있는 대학생들도 별로 없었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들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19대 국회 말미에 테러방지법 관련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내가 그 친구들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20~30대 청년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어느 출판사에서 필리버스터 속기를 모아서 책을 만들었는데, 사전 주문한 고객 가운데 70% 이상이 20대라고 하더라. 그들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었다. 통일에 대한 관심을 정치인들이 이끌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불화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통합과 화합이 절실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를 저해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우리 국민들에게 불화와 대결 구도를 자정하고, 통합과 화합을 추구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서 공작에 들어가는 순간, 국민들의 자정작용은 그 힘을 잃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다. 국민 통합과 화합을 저해하는 세력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불화와 대결 국면으로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국민들의 현명함을 믿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989년 평화의 기도, 2016년 파주의 기도

   
▲ 1989년 8월 15일 2시 22분, 판문점 군사분계선 위에서 '평화의 기도'를 바치는 더불어민주당 임수경 전 의원(왼쪽), 문규현 신부 ⓒ 임수경 전 의원 제공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을 받았던 19대 국회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작금의 불화와 대결의 시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책임을 느낀다. 또한 통일을 위해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등에서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국민들에게 참으로 송구스럽다.

1989년 8월 15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을 때 나는 군사분계선 위에 올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남긴 평화의 기도를 외쳤다. “주님,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십시오.” 그리고 2016년 6월 21일 지금의 나는 앞으로 어떤 사명을 갖고,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다시 고민하고 있다. 다만, ‘평화의 도구’로 쓰이고 싶다는 소신은 여전하다.

내가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점은 정치는 바로 타협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한 번에 큰 변화가 일길 갈망한다. 정치권에 발을 디디기 전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는 한꺼번에 못 바꾼다. 그저 한걸음씩 나아가야 하더라. 그렇다고 내가 말하는 타협이 물러섬을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다.통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통일은 이벤트가 아니라, 민족의 염원을 향한 고단한 순례다. 우리 국민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문제다. 내 고민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그곳이 어디든 간에 ‘통일의 꽃’을 꿈꾸고 있으리라.

나는 최근에 ‘대한민국 희망도시’ 경기 파주로 몸을 옮겼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이 도시로 오다보면 표지판에 ‘판문점’, ‘개성’, ‘평양’이 쓰여 있는 게 눈에 띈다. 신의주로 향하는 경의선이 다닌다. 지금은 도라산역까지만 개통돼 있는데 이곳은 경의선의 종점이자 평부선의 종점이다. 언젠가 먼 훗날 이 도시를 거쳐서 북한으로, 또 북한을 경유해서 중국으로, 시베리아로, 그리고 유럽으로 내달릴 열차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제2의 대한민국 전성시대가 파주를 통해 열릴 것이다.

2016년 6월 21일 ‘대한민국 희망도시’ 파주에서.

임수경 씀.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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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ardie89
(125.XXX.XXX.214)
2016-06-28 20:06:31
임수경 전 의원님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2016년 6월 4일에서 7일까지 백두산 관광을 했다
윤동주 시인 출신학교인 대성중학교 방문
한뼘 바라보이는 북한에서 떨어진 두만강의 통통배
강 이슭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족의 슬픔 눈빛
관광 마지막날 연길의 "조선 자치국 역사박물관"
통일의 절실함이 느꼈지는데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 세대가 꼭 해 주어야 하는 숙제가 통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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