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박근혜 호(號)’와 TK 의원들 도중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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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박근혜 호(號)’와 TK 의원들 도중하차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7.16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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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냉·온탕 오간 TK 의원들

지난 한 달 사이에 대구·경북권 의원들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야 했다.  6월21일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김해공항 확장’으로 둔갑시켜 발표하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듯했다.  참아야할지 대들어할지 망설이다가 7월1일 대구권 의원 10명은 권영진 대구시장과 함께 “ ‘김해 신공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불복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7월11일 ‘대구민간공항과 군공항 통합이전’ 계획을 제시하자 의원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틀 뒤인 7월13일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지역으로 경북 성주를 선정해 발표하자 의원들은 다시 불끈하고 일어섰다.  대구·경북권 의원 21명은 “성주가 사드배치 최적지라는 근거를 대라”면서 ‘항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도하(都下) 언론을 통한 따가운 비난여론이었다.  “지난 총선 때 그렇게 ‘진박(眞朴) 마케팅’을 하고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겠다’고 공언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하는가”라는 추궁에 할 말을 잃었다. 

국익을 향한 ‘박근혜 호’에 올라탄 TK 의원들
대구·경북권 의원들은 대부분 지난 총선 당시에 TK(대구·경북)에 정차 중이던 ‘박근혜 호(號)’에 자발적으로 승차했다.  일부 무소속 출마자와 야당 공천자만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뿐이다.  그들은 창밖에서 ‘V자’를 그리며 열렬히 박수치고 손을 흔드는 유권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플랫폼을 떠났다.  그러나 이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기착할지, 어디가 종착점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선두의 기관사가 ‘국익’을 지향하며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란 믿음은 충분히 갖고 있었다.

국익과 지역이익 간 충돌지점에서 선택의 갈림길
이들은 3개월도 안돼 ‘신공항’과 ‘사드’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첫 ‘시험’에 들게 됐다.  ‘국익’과 ‘지역이익’이 묘하게 충돌하는 지점에서 열차는 멈춰 섰고, 계속 타고가야할지 아니면 내려야할지 선택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  다행히 ‘신공항’의 경우 대통령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대구공항 이전’ 발표로 퇴로를 열어줬다.  의원들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사드’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신공항’ 때처럼 인센티브 국책사업이 제시되더라도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지는 미지수다.  제주 강정마을의 전철을 되밟는 건 아닌가하는 우려도 나온다.  의원들은 당초에 급히 내리려고 하다가 여론의 눈총만 맞고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이다.  지역구 의원인 이완영 의원은 여전히 비상 상태에 있다.

헌법은 '국익우선', 현실은 지역표심에 정치생명 좌우

이 대목에서 ‘국회의원으로서 국익과 지역이익이 충돌할 경우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헌법 제46조제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익 우선’의 원칙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다르다.  비례대표가 아닌 이상, 국회의원의 생사(生死)는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에 달려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지역이익을 중시하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해마다 정부예산안 심의 때 객관적인 ‘투자우선순위’를 무시하고 지역구 현안사업에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배정받기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의원들 행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국비를 많이 가져와야 유능한 의원으로 인정하는 유권자들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그에 부응하는 공급이 있는 것이다.

임기 말에 갈수록 ‘도중하차’의 유혹은 강해져
앞으로 박근혜 정부 임기는 2018년2월말까지 1년 7개월 남았다.  그 사이에 TK 의원들이 ‘박근혜 호’의 안락한 의자에 머물지 못하고 선택의 기로에 다시 직면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앞선 사례처럼 국익과 지역이익이 충돌하는 경우도 그렇고, 박근혜 정부의 여정(旅程)과 본인의 재선가도가 방향을 달리할 때도 그렇다.  열차가 종착점에 가까워질수록 국정동력은 떨어지고 국민들 관심은 멀어질 개연성이 높아 ‘도중하차’의 유혹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다양한 각자도생
그런 와중에 다양한 각자도생의 방식이 나타날 수 있다.  잠시 정차했을 때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소프트 랜딩’도 있을 것이고, 타이밍을 놓쳐 달리는 열차에서 발목 다칠 각오로 뛰어내리는 ‘하드 랜딩’도 있을 것이다.  기관사 모르게 내리란 법도 없다.  운전실력이나 운행노선을 문제 삼아 당당히 하차하는 표변(豹變)형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나중에 되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옥쇄(玉碎)형도 있을 것이다. 

공천학살이 자행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딱히 정답은 없어 보인다.  그들에겐 정답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훗날 민심의 향배가 정답 여부를 가르쳐줄 뿐이다.  ‘사드 역’에 머문 ‘박근혜 호’는 다시 출발을 서두르고 있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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