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장에 사쿠라가 나오면 “유진산 나왔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화투장에 사쿠라가 나오면 “유진산 나왔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08.12.31 12: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병구의 현대정치사

②스승 유진산(柳珍山) 선생과의 만남 

영등포구와 관계없는 유진산 ‘공천’ 

1967년 5월 3일 실시된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인 민정당과 민주당이 통합해 통합야당 신민당의 후보로 윤보선 전 대통령을 내세워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맞붙었으나 공화당 박정희 대통령의 승리로 야당은 또다시 정권획득에 실패했다.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서울의 국회의원 선거구 중 동대문 을구와 영등포 갑구만 공화당이 이기고 그 외의 선거구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신민당이 승리했다. 당시 영등포 갑구의 공화당위원장은 중앙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였던 윤주영 씨가 맡고 있었는데, 치밀한 조직관리와 남다른 열정으로 야도여촌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많은 표 차이로 승리해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었다.

1967년 6월 8일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일자가 정해지고, 공화당에 서는 당연히 윤주영 위원장이 공천을 받아 윤 위원장의 당선이 무난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공공연히 말하기도 하고 정치 철새들은 윤주영 씨에게 줄을 대려고 기웃거렸다.

따라서 신민당에서는 영등포 갑구 공천에 비상이 걸렸다. 국회의원이고 위원장인 한통숙 위원장은 대통령선거 결과에 책임을 물어 공천에서 탈락되었고, 정치적으로 영등포구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유진산 선생이 신민당의 공천을 받았다.

지구당의 많은 사람들은 윤보선 씨와 유진산 는 정치적 견해가 달라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공화당세가 강한 영등포 갑구에 정적인 유진산 씨를 공천해 낙선시킴으로써 잡음 없이 자연스럽게 정적을 제거하려는 윤보선 씨의 고도의 정략이 숨은 공천이라고 수군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이재형 선생은 윤보선 씨와 가까운 사이로 은근히 유진산 씨를 경원하는 것 같았다.

그 무렵 세간에서는 유진산 씨를 가리켜 낮에서는 야당, 밤에는 여당 하는 사쿠라라고 했다. 그래서 복덕방 등 고스톱판에서는 화투장에 사쿠라가 나오면 “유진산 나왔다” 하고 웃으며 떠드는 판이었으니 공화당의 윤주영 씨는 거의 당선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자신만만하게 사람들을 유혹했다.

내개도 당연히 연락이 왔다. 나도 중앙대학교 출신이고 젊은 사람 중에서는 제법 주목받는 축에 들어 윤주영 씨가 직접 나를 찾아와서 만났다. “자네는 중앙대학교 출신이고 또 유진산 씨하고는 아무런 연고도 없지 않나? 그리고 요새 떠도는 얘기도(사쿠라) 있는데, 자네 같은 사람이 유진산을 밀어서야 되겠나? 나 딱 한번만 국회의원 하고 다음번에 자네에게 물려줄 테니 이번에 내 찬조연설을 해줘요.” 윤주영 씨는 집요하게 나를 설득했다.

아마 그때 윤주영 씨와 함께 공화당을 하며 요령있게 잘만 했더라면 30년에 가까운 군사정부 시절 나와 우리 가족은 물질적인 풍요만은 만끽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또 실제로 일가친척이나 가까운 사람 중에는 “공화당을 하지 왜 그 어려운 야당을 하며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정치를 하려는 생각도 없었으며, 공화당은 더욱 싫고, 유진산 씨의 떠도는 소문도 달갑지 않아서 약국과 독서실 일에만 매달렸다. 공천발표가 나고도 여러 날이 흘렀다.

어느 날 아침 6시경, 약국 덧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위급 환자인가 하고 나가보니 중앙대학교 동문인 임하수 동지가 함께 온 유진산 씨의 셋째아들 유동열 씨를 소개했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 옷을 입고 상도동 유진산 씨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나는 아직 세수도 안 했는데 갑자기 와서 무슨 소리냐고 나중에 보자고 했더니 임하수 동지가 재촉을 했다.

“아버지 같은 유진산 선생이 노병구를 만나기 위해 벌써 일어나셔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에 보자니 말이 되나?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빨리 준비하고 가세.”

나는 등을 떠밀려 세수를 하고 그들이 몰고 온 지프를 타고 상도동 유진산 선생 댁으로 갔다. 임하수 동지와 유동열 씨의 말대로 들어가자마자 유진산 선생이 거처하는 방으로 직행했는데 정말 혼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떠돌아다니는 좋지 않은 소문만을 들어 별로 인상이 좋지 않았으므로 임하수 동지의 강권에 못 이겨 오기는 왔지만 어정쩡한 태도로 반갑게 맞이하는 유진산 선생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모시 바지저고리를 단정하게 입고 교자상을 사이에 두고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유진산 선생의 첫인상은 참으로 온화하고 정이 넘쳤다.

“노 동지, 내가 여기 온 지 꽤 오래됐는데 이제야 만나게 돼서 미안해요. 내가 이곳에는 처음인데, 이 지역 사정을 어떻게 아나? 그래서 처음 나오자마자 우선 아는 사람을 대강 만나고 다른 준비를 하다 보니 우리의 만남이 이렇게 늦어졌어요. 노 동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 노 동지, 날 도와줘요. 나하고 같이 이 선거구를 돌아다니며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멋지게 하면서 우리 한번 애국시민과 함께 진정으로 나랏일을 걱정해 보자고 내가 오늘 노 동지를 만나자고 한 거요.” 유진산, 김석원 도움 청하자 “노병구 내세우세요”

유진산 선생은 늦게 만나게 된 것을 미안해하며 진지하고 소탈하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정치의 천재요 선거의 귀재라고 말들을 하기에 선생님은 이미 승기를 완전하게 잡고 계셔서 노병구 정도의 햇병아리의 도움은 이미 제쳐 두고 계신 줄 알았는데, 다시 계산을 해보니 이제 필요하게 되셨습니까?”

나는 하면하고 말면 말고 하는 장난기 넘치는 생각으로 버릇없이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유진산 선생은 호탕하게 껄껄 웃으셨다. “노 동지, 고마워요. 나는 이 지역 사정을 잘 몰라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도와줘요. 나는 노 동지를 믿겠어요.”

그동안 선거법상 정해진 지구당 창당대회를 형식적으로나마 마친 상태여서 내가 지구당 간부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유진산 선생은 이런 지시를 내렸다. “오늘 이후 지구당 정견발표회를 하는 팀을 후보반과 정당반으로 나누어서 하는데, 노 동지는 후보반 연사로 나와 같이 다니고, 지구당 창당대회에서 전형위원에게 위임한 부위원장을 제외한 모든 간부인선에 노 동지도 김유근 부위원장과 함께 참가하시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나와 가까운 동지들을 분과위원장과 부차장에 천거할 수 있었다.나와 유진산 선생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은 유진산 선생은 영등포에 와서 급히 지구당 창당대회를 마친 뒤, 그때가지도 영등포에서는 덕망 있는 지도자였던 김석원 장군을 가장 먼저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형님! 내가 형님 선거구에 공천을 받고 입후보했습니다. 형님께서 나를 적극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아무리 바쁘셔도 내 연설회장에 형님께서 나오셔서 찬조연설을 해주시든가, 그게 아니면 단상에 앉아서라도 나를 지지해주셔야겠습니다. 형님, 나 좀 살려주십시오.”

그런데 김석원 장군은 원래 무뚝뚝하고 말이 적은 분이라 웃으며 잘해보라는 말만 하고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진산 선생이 거듭 도움을 청하자, 옆에 있던 김석원 장군의 부인 서달순(徐撻順) 여사가 말했다.

“유 의원님, 영감님은 그런 데 안 나가세요. 그렇지만 노병구를 내 세우세요. 그러면 우리 영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 영감이 유 의원님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다 따라올 거예요.” 유진산 선생이 그 말을 듣고 돌아갔다는 말은 서달순 여사에게서 나중에 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