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 미국과 한국의 비교정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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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 미국과 한국의 비교정치론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7.28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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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지난 27일 한국 언론의 특파원들이 전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지난 2월1일 아이오와 코커스(지역당대회)를 시작으로 6개월 간의 혈전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패배자인 버니 샌더스 후보가 30분 간 격정 연설로 “힐러리가 반드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단합을 호소할 때 민주당 당원들은 하나가 됐다고 전했다. 더욱이 경선을 관리는 당 지도부가 샌더스의 약점을 캐고 험담을 주고받은 이메일이 폭로돼 ‘불공정 경선’이라는 항의가 빗발쳤음에도 샌더스는 지지자들의 불만을 다독이며 힐러리를 밀자고 독려하는 모습에서 그의 정치적 도량을 짐작케 한다.

  샌더스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경선 승복

 시계를 9년 전으로 돌려, 17대 대선을 4개월 앞둔 2007년8월20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장. 당시에도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BBK 주가조작 의혹, 도곡동 땅 문제 등 갖가지 의혹을 놓고 사생결단으로 공방을 벌인 직후였다. 현장 개표 결과 박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이겼지만 여론조사에서 패배해 이명박 후보에게 박빙의 차로 대권후보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연단에 서서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라면서 경선불복 우려를 잠재웠다. 이어 "오늘부터 저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면서 당의 단합을 역설했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중심제를 공유하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정치권 풍속도가 많이 닮았다. 한국에서 과거에는 경선 패배가 확정된 뒤에도 탈당해서 본선 출마하는 경우도 있었고, 세가 불리하자 경선 도중에 ‘불공정’ 시비를 건 뒤 이탈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패자가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의 본선 승리를 위해 함께 뛸 것을 약속했다. 경선의 취지를 십분 살린 결과였다.

  친이계의 보복공천, 협량(狹量)정치의 시작

 그러나 이후 미국 정계와 한국 정치판의 행로는 서로 엇갈린다. 한국에선 그해 12월 한나라당 대선 승리 이후 이듬해 4월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친이계와 친박계는 불구대천의 관계로 전락했다. 당권을 장악한 친이계가 공천권을 쥐고 친박계 현역의원들을 대거 낙천시키면서 벌어진 일이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친이계 의원 일부도 희생양이 됐다. 그럼에도 주도권은 친이계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보복공천’의 시작 책임은 전적으로 친이계로 돌아간다.

 미국에서도 지난 2008년6월3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당선에 필요한 대의원수(매직넘버)를 넘겨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대선후보로 공식 확정됐다. 그러나 이후 8년 동안 미국 정가에서 ‘오바마派’, ‘힐러리派’라는 단어는 나돌지 않았다. 더욱이 2년마다 상·하원 선거가 계속됐지만 당 후보 공천 과정에 대선전의 대결구도가 재연된 적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의 공천 방식은 중앙당이 공천권을 쥐는 ‘하향식’이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과 당원들이 갖는 ‘상향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판에서 대선전의 대결구도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동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된 이유는 무엇인가? 공천 제도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아니면 한국 정치인들의 협량(狹量) 때문인가?

  4·13 총선의 실험과 좌절

 가령 미국에서도 상·하원 후보 공천권을 당 지도부에 부여하고 ‘하향식 공천’을 하도록 맡겨보는 실험을 할 수 있다면 뭔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한국에 미국식의 ‘상향식 공천’ 제도를 도입해 보는 것이 더 실현 가능하며, 실제로 그렇게 한 것이 지난 4·13 총선 때였다.

 비박계 당 지도부는 자의적인 공천 개입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면서 일반국민 70%, 당원 30% 또는 일반국민 100% 여론조사로 후보자를 뽑는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기존 관행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정치인들의 강한 거부반응 때문에 새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상향식 공천은 현역의원들에게 유리하다”는 주장만으로 특정 계파의 ‘낙하산 공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권력 과점(寡占)과 불공정 구조

 당을 따로 만들지 않은 채 당 안에서 계파나 파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불공정’ 행위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보수정당’의 간판을 내건 당은 선거를 통해 ‘조금 보수적인 국민’, ‘보통 보수적인 국민’, ‘많이 보수적인 국민’, ‘극히 보수적인 국민’ 등 다양한 보수 성향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정치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계파정치가 작동하게 되면 ‘많이 보수적인 정치인’과 ‘극히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조금 보수적인 국민’과 ‘보통 보수적인 국민’들의 지지까지 가로채 자기들끼리만 나눠 갖는 셈이다.

 그들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조금 좋아하는 유권자’, ‘보통 좋아하는 유권자’, ‘많이 좋아하는 유권자’, ‘무지 좋아하는 유권자’가 있을 텐데, 그들 덕분에 얻은 권력을 ‘대통령을 많이 좋아하는 정치인’과 ‘무지 좋아하는 정치인’들끼리만 향유하는 것과 같다. 정의가 아니며 공정하지도 않다.

 경제로 치면 대한민국 전 국민의 구매력을 몇몇 대기업이 나눠 갖는 과점 체제로 비유될 수 있다. 과점체제는 독점체제와 마찬가지로 자유시장 경제의 생명력을 좀먹는 암적 요소로 간주되며 이를 규제하기 위해 공정거래위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계파정치에 대한 통제 수단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오로지 유권자들의 여론과 표심이 그들 정치인의 무딘 신경을 건드릴 뿐이다.

 거꾸로 가는 역사의 시계바늘

 4·13 총선에서 얻은 가설은 한국의 계파정치는 정치제도 이전에 정치인들 의식의 문제라는 점이다. 일부 정치세력이 권력과점에서 얻어지는 특혜에 중독돼 파벌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 중에 ‘당파성론(黨派性論)’이 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왜곡해 ‘한민족은 당파를 이뤄 내부 갈등에만 골몰하고 단결하지 못한다’고 식민지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해방 이후 우리 국민들은 민족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민주시민의 역량을 고양해 식민사관에서 깨어난 지 오래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우를 범해선 곤란할 것이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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