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돈 받아먹고도 흐뭇한 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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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돈 받아먹고도 흐뭇한 소방관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8.01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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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11)>1000원짜리 한 장과 할머니의 틀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현장에 나가다 보면 감사하는 마음에서인지, 미안한 마음에서인지 신고자나 수혜자가 119대원들에게 적잖은 액수의 금품을 제공하려 할 때가 종종 있다. 아마 소방관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본 경험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신고자들을 많이 봤지만, 항상 이를 뿌리치고 귀서하곤 했다. 오히려 어느 때는 신고자의 사정이 안타까워 내 주머니를 털어 그의 손에 쥐여주기도 할 정도였다. 119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시민들의 마음만으로도 참 감사했다.

그럼에도 금품을 수수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단 한 차례 있었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날이었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할머니 틀니가 하수구 구멍에 빠진 사고"

‘참 별의별 출동도 다 있다’며 함께 출동차에 탄 한 대원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얼굴에 잔뜩 웃음기를 머금은 채 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애타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자씨, 틀니를 닦다가 그만 하수구에 빠뜨려 버렸쑤"라며 어린아이처럼 우리들을 보채시는 게 아닌가.

어떻게 틀니를 빼내야 할까. 참으로 난감했다. 하수구를 모두 부숴 틀니를 빼낼 수도 없었고, 또 자칫 잘못했다가 틀니가 물에 흘러서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보니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났다.

‘할머니 여기 진공청소기 있어요?’하고 묻자 할머니는 ‘청소기를 갑자기 왜 찾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반문하셨다. ‘청소기로 틀니를 빨아올리려고 해요’라고 말씀을 드리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대원을 옆집으로 보내 청소기를 구해오라고 지시하자 곧장 청소기를 가져왔다. 우리들은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청소기 세기를 최강으로 놓고 하수구에 들이밀어 빨아올렸지만 틀니는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바람이 옆으로 다 새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폭이 좁은 호스가 필요했다. 작업을 하던 중 몸을 돌려 대원들에게 탈수기나 세탁기 물 내려가는 호스를 어디서든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대원들 사이에서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표정,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내게 “아자씨, 그 틀니가 내 전 재산이어”라며 또 한 번 간곡히 부탁하셨다.

대원들이 가져온 호스를 청소기와 연결해 다시 작업을 반복했다. 몇 번을 시도하다보니 손맛이 오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틀니가 빨려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조심조심해서 청소기를 하수구에서 꺼내보니 할머니의 전 재산인 틀니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칫솔로 깨끗하게 틀니를 닦아 건네드리고 나오는데 할머니께서 허리 주머니 고무줄에 꼬깃꼬깃 접어둔 돈을 꺼내셨다. 할머니는 1000원짜리 세 장 중에 한 장을 우리들에게 들이밀면서,

“아이구 아자씨, 이걸루 가다가 음료수라두 사 먹어”

난 받을 수 없었다. 정중히 거절하고 출동차에 타서 귀서하려는데 할머니는 막무가내셨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차 앞에서 자리를 잡고는 우리들을 놔주지 않았다. 이러다가 사고라도 발생하면 큰일이 아닌가. 다시 차에서 내려 할머니를 설득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이거 안 받으면 내 맴이 참 속상혀”라며 한사코 내 손에 1000원 한 장을 쥐여주려고 하셨다. 계속 거절하면 할머니께서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사실 것 같아 결국 그 1000원짜리 한 장을 받았다.

그제야 출동차는 출발할 수 있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구조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비를 맞으면서 손을 흔드셨다.

돈을 받아먹었는데도 우리 대원들의 입가에는 서로 돌아가는 내내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틀니를 무사히 꺼내지 못했다면 할머니가 밥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참 흐뭇했다.

그때 할머니가 주신 1000원은 아직도 내 책상 서랍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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