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터널>, 도저한 연출력의 표본적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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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터널>, 도저한 연출력의 표본적 승리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8.04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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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스케일의 방대함을 채운 세심한 생명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터널> 포스터 (제공=쇼박스)

한 남자가 있다. 

한 가족을 책임지는 이 평범한 가장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엉겁결에 벌어진 부지불식간의 사고를 겪은 후, 극한의 폐쇄 공간에 홀로 갇혔음을 깨닫는다.

사방은 막혀있으며, 돌아눕거나 다리를 펴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어둠의 좁은 공간 속에서 날라 다니는 분진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든다. 

앞뒤가 가로 막혀 옴짝달싹 조차 할 수 없는 이 남자는 오로지 적막과 어둠만이 가득 채워진 그 극단의 공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욕구가 담긴 거친 숨소리만 내뱉을수록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소멸됨을 깨닫는다. 

이제 이 남자는 누군가에게 구조를 청해야 하며, 요청을 받은 바깥사람들이 자신을 하루빨리 구해 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벼랑 끝에 선 이 남자에게 실낱같은 한 줄기 희망의 끈은 희미한 불빛과 함께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핸드폰이다. 

극도의 작은 폐쇄 공간 속에 갇혀있는 한 명의 주인공이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의 수단은 오직 외부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통화일 뿐이다. 

도대체 왜 이런 황망한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는지를 따지기 전에,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최우선이다. 

분노와 좌절, 흥분 그리고 절규는 차라리 그 다음의 일이다. 

순식간에 사고를 당한 후, 하나의 닫힌 공간에서 한 남자가 괴로워하는 이 영화 이야기를 여기까지 접한 많은 이들은 아마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의 2010년 작 <베리드>(Buried)를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작은 (촬영)공간에서 한 인간이 점점 지쳐가는 사투의 모습을 애틋함 속에 긴장감 있게 그려낸 이 이야기는 바로 김성훈 감독이 연출한 우리 영화 <터널> 의 내용이다. 

외부와는 닫힌 공간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활용한 <터널> 은 이미 소개되었던 국내 재난영화 장르의 상투성을 탈피, 우선 주요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갈등 구조나 구구절절한 사연을 스토리의 출발 선상으로 잡는 기존의 방식을 철저히 배제한다. 

긴박감 넘치는 전개를 최대화하려는 듯,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평범한 일상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터널 붕괴의 현장에서 외부 세계와 단절된 주인공은 살아남으려는 본능 속에 마음의 여유와 평정심을 잊지 않으려 애써 노력한다. 

물론 대개의 범인(凡人)들이 그러하듯, 터널 안의 주인공 또한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사투 속에서 연속된 좌절과 분노 그리고 공포를 제어하기 힘들어 한다. 

그러나 터널 속의 이 남자는 언제 소진될지 모르는 78% 의 핸드폰 배터리 잔량에만 의존한 채, 차라리 희망을 버리지 않고 외부 세계와 꾸준히 소통하며 주변의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현명함을 택한다. 

두려움, 희망, 분노, 절망 등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단말마 앞에 맞서는 한 인간의 극한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그 일념은 핸드폰으로 꾸준히 소통하는 바깥세상의 가족과 한 소방대원의 존재로부터 기인한다. 

그렇기에 애당초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담아내려 한 감독의 의도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한 <베리드> 와 줄거리 상의 유사성을 지녔음에도 소통의 방식,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선연한 주제 의식으로 피력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지닌다. 

그 차이점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주연을 맡은 하정우다. 

어느 역할을 맡던 관객의 몰입을 지배하는 데에 천부적인 이 배우는 닫힌 터널 속의 긴장감을 통해 이번에도 보는 이의 일체감을 형성시키는 힘을 보여 준다. 

극한 상황에서의 삶에 대한 무서운 집착과 함께, 한편으로 이와는 상반되는 여유와 위트가 동시에 자연스레 구사될 수 있는 남자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보다 진지하고 경직된 분위기 속의 이전 재난영화 <더 테러 라이브> 에서의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극한 상황에서의 대처 방식은 이미 그 전작에서 단련되어 진일보한 바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주인공에 대한 사명감을 지닌 구조대원을 맡은 오달수는 이번에도 주연을 받쳐 주는 역할에서 주연 이상의 몫을 다 한다.

항상 부정확한 그의 발음과 억양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고 빈약해 보이지만, 그래서 늘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그 인간적이고도 현실적인 캐릭터는 <터널> 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하며, 주인공과 유리된 밖의 공간을 이끄는 또 다른 중추이다. 

다만, 유일한 소통의 수단인 핸드폰을 통해 두 남자의 브로맨스가 <다이 하드> 1편에서와 같이 더욱 진하게 형성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의 여지는 있다. 

여기에 배두나의 연기는 항상 그렇듯 세상의 모든 남자가 늘 의지해 보고 싶은 강한 모성애의 변형으로서, 두 남자 배우 사이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적절한 균형의 합을 이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 <터널> 의 진정한 주인공은 세심한 연출력으로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를 완성시키며, 제한된 배경 속에서 스토리를 힘 있게 밀고 나간 김성훈 감독이다. 

폐쇄된 작은 공간의 디테일을 잃지 않는 그 진한 획의 선상에는 시공간을 지배하면서 생명에 대한 주제 의식을 잃지 않고, 그야말로 끝까지 가는 감독의 승부수가 촌스럽지 않은 유머와 함께 버무려진다. 

초반부터 이렇다 할 스토리나 갈등 구조 없이 휘몰아치는 사건의 빠른 전개에 비해 이렇다 할 반전 없는 후반부의 뻔한 결말은 옥의 티 정도로 여겨질 만큼 <터널> 은 한국형 재난영화가 새로이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감상할 때마다 항시 그렇듯 혹자들은 지난 날 우리의 가슴 아팠던 현실들을 되새김질하며, 기존 한국 사회의 총체적 난맥상을 개탄하는 데에만 시간을 할애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네 삶 곳곳에 만연된 관료주의와 구태의연한 안전불감증, 실적 위주의 저널리즘 등에 대한 분통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정치사회적으로 마냥 연장시키기 보다는, 차라리 무미건조하게 건네지는 흔한 물 몇 병이 때로는 절실한 무엇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깨달아 일상의 소소함에 대한 감사를 새삼 느껴 보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리라. 

8월 10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사족 : 영화에서는 결국 핸드폰 배터리가 소모된 주인공에게 외부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창으로, 한 라디오 방송의 클래식 음악 DJ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처음부터 간파한다면, 당신은 분명 시네필이 맞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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