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강조한 미네르바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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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강조한 미네르바 ‘무죄’ 판결
  • 최진철 기자
  • 승인 2009.05.02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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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인식 못했고, 공익 해칠 목적 없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도마..즉시 항소키로
4월 20일. 정부 정책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증언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미네르바와 변호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로 검찰은 검찰권을 남용해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검찰이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문제 삼은 글은 두 개다.
 
하나는 ‘정부가 8월 1일부터 외환 예산 환전 업무를 전면 중단했다’ 는 7월 30일의 글과 다른 하나는 ‘정부가 주요 금융기관과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게 달러매수를 금지하는 긴급 공문을 발송했다’ 는 12월 29일의 글이다. 검찰은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로 마음먹고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저하시키는 등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통신을 했다고 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그러나 문제의 글을 게재할 당시 박씨가 그 내용이 허위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공익을 해칠 목적도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인터넷 상에서 표현의 자유 기준 제시와 함께 그 폭을 넓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사실 유포죄'를 표현의 자유로 해석함과 동시에 '글을 쓸 당시 허위라고 인식하고 있을 것'과 '공익을 해칠 목적이 있을 것' 등 2가지 요건이 충족될 때만 혐의를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정권을 비판하는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박씨를 기소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 시사오늘
◇인터넷 표현의 자유 넓혔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했다.

물론 박씨가 지난해 7월30일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올린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구나'와 12월28일 게재한 '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 -1보' 등 2개의 글이 허위사실임은 재판부도 인정했다.

그러나 박씨가 글을 작성할 당시 허위라고 인식하지 않았고, 공익을 해칠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외화 예산 환전 업무의 정확한 개념을 오해한 상태에서 인터넷 자료와 기사를 종합한 후 경제 지식을 더해 글을 작성했다"며 "자신의 글이 '허위의 사실'이라는 인식이 없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박씨가 문제의 글을 올린 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바로 사과하고 삭제한 점, 인터넷 경제 토론방은 누구나 접속해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박씨에게 공익을 해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허위의 내용인 줄 알고 글을 올렸더라도 공익을 해칠 목적이 없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 주장 외환시장 피해 개연성 불과
재판부는 통신행위의 동기 및 경위, 통신행위 내용과 영향, 당시의 경제상황 등을 종합, 사회통념에 비추어 판단할 때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도 보지 않았다.

단문의 보도문 형식만으로 그 내용의 긴박성이나 산뢰성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는 점, 개인들의 환차손 피해를 방지하고자 글을 게시했다고 주장한 점, 법적조치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글을 게시한 점 등을 주요 판단근거로 꼽았다.

더욱이 검찰이 미네르바가 게재한 글로 인해 2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영향을 미쳤다 하더라도 이를 계량화하기 어렵고 단순한 개연성 정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검찰이 공익에 해악을 가했다며 구체적으로 제시한 공소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이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재판부가 증거의 취사선택을 잘못해 사실관계를 오인했고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임을 인식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배척해 공익 침해 목적에 대한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미네르바 박씨에 대해 국민의 불안 심리를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반성의 빛이 전혀 없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도마에
이번 판결로 검찰은 이번 판결로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기소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우선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지난 1월7일 박 씨를 긴급체포한 후 같은 달 10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박 씨를 구속하면서 "지난해 12월29일 (박씨에 의해)정부가 긴급명령을 발동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된 후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형사5부가 지난해 12월5일 다음으로부터 박 씨의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넘겨받은 사실이 드러났을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역시 검찰이 '다음'에 박 씨의 개인 인적 사항을 요청한 날 '미네르바 주요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라는 제목의 자료를 작성, 배포해 의혹을 더욱 키웠었다.

사실상 미네르바에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에 규정된 허위사실유포죄의 '허위'와 '공익을 해할 목적' 자체도 그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을 어겨 위헌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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