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은 왜 잘나가는 대우건설을 망치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산업은행은 왜 잘나가는 대우건설을 망치나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8.09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국책은행 산은, '棄如敝蹝' 말고 '珍而藏之' 하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KDB산업은행(회장 이동걸)이 결국 일을 냈다. 대우건설 이사회는 지난 8일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대우건설 신임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이달 중에 박 전 사장이 대우건설 차기 사장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사장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대우건설 사장추천위원회가 지난 5일 단독 추천한 인사로,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그를 사전에 신임사장으로 내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실제로 이번 대우건설 차기 사장 인선은 그야말로 물음표 투성이다. 산업은행은 후보자 공모를 했다가 아무 이유 없이 이를 중단하는가 하면, 돌연 일정을 연기했다가 다시 단축하기를 반복했다. 더욱이 박 전 사장은 산업은행이 공모 자격으로 내건 '해외 수주능력을 갖춘 자'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사장을 대우건설 차기 사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정치권 압력과 이권이 산업은행의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최근 증권가에는 친박 실세 정치인이 박 전 사장을 밀고 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대우건설 노조는 박 전 사장을 '낙하산'으로 규정하고 이사회의 의결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 대우건설 차기 사장 인선과 관련 KDB산업은행이 세간의 지탄을 한몸에 받고 있다 ⓒ 각 사 홈페이지

혁혁한 공 세운 박영식 연임 제동 건 산업은행, 왜?

대우건설은 잘나갔다. 정통 대우건설맨 박영식 현(現) 사장은 2013년 사장 취임 이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간 적자를 면치 못했던 회사를 흑자전환시켰다. 대우건설은 박영식 체제 아래 2014년 4153억 원, 2015년 3345억 원, 2016년 상반기 1682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지난해 수천억 원대 규모의 분식회계 사태로 치명타를 입기도 했지만, 이는 박 사장의 책임이 아니었다. 대우건설이 이익을 부풀린 시점은 2012~2013년 말까지로 그의 사장 취임 전의 일이다. 되레 박 사장은 추락한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강도 높은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했다.

때문에 당초 대우건설은 박 사장을 연임시키려 했다. 모진 풍파에 흔들렸던 회사를 잘나가는 기업으로 바로잡은 공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대우건설 사장추천위원회는 지난 6월만 하더라도 박 사장을 차기 사장 최종 후보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그의 연임을 가로막았다는 후문이다. 대우건설 주식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게 명분이었다. 실제로 박 사장 취임 전 1만5000원에 육박했던 대우건설 주가는 현재 6000원 대로 급락했다.

대우건설 주가 하락은 2014년 발발한 이라크 내전에 따른 해외수주 환경 악화와 이듬해 분식회계 사태의 영향이 컸다. 박 사장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박 사장의 연임에 제동을 건 이유가 따로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빠른 시일 내에 대우건설을 재매각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차기 사장으로 앉히려 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박창민 카드로 대우건설에서 손 떼나

산업은행은 2011년 금호그룹을 구조조정하면서 KDB밸류 제6호 사모펀드를 통해 대우건설 지분 2억1093만 주를 주당 1만8000원에 인수, 전체 지분 중 50.75%를 보유해 대우건설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을 2년 안에 다시 팔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KDB밸류 제6호 사모펀드 만기는 2017년 10월로, 산업은행은 그전에 대우건설 지분을 전부 매각해야 한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기업 영업이익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인사보다 지분을 최대한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을 대우건설 차기 사장 자리에 앉히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측면에서 정통 대우건설맨 박영식 현 사장이 산업은행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를리 만무해 보인다.

▲ 대우건설 신임사장으로 유력한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 산업은행이 그를 사전에 대우건설 차기 사장으로 내정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 뉴시스

반면, 사전 내정 의혹을 받고 있는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은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재매각에 속도를 붙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사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대우건설을 재매각하는 데 있어 최대 걸림돌은 추락한 주식가치다. 현재 가치대로 대우건설이 팔린다면 산업은행은 1조60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

건설사가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기간 내에 실적을 크게 올릴 수 있는 국내 주택사업에 올인하는 것이다. 박 전 사장은 업계에서 주택사업, 재개발·재건축 전문가로 통한다. 또한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정치권 인맥이 두터워 각종 로비에 능수능란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

사업부 통폐합과 인력 구조조정도 주식가치를 높일 수 있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현재 대우건설 내에서는 박 전 사장이 신임사장에 취임하면 당장 실적을 노릴 수 없는 해외사업부를 축소하고 희망퇴직, 임금피크제, 진급유예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박 전 사장은 M&A(기업인수합병)에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갖췄다는 평가다. 실제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2008년부터 M&A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게 박 전 사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당시 박 전 사장은 현대산업개발 상무로 진급했고, 이후 영업본부장과 사장 등을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한치 앞만 보는 국책은행, 대한민국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가

▲ 산업은행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 산업개발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지난 반세기 동안 국책은행으로서 성장동력산업 확충, 경제위기 극복 등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역할 수행으로 산업 및 국민경제 발전을 선도하였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이번 대우건설 차기 사장 인선 과정에서는 이 같은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산업은행 홈페이지

산업은행은 전체 대한민국 산업의 성장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금융으로 뒷받침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책은행이다. 또한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책무가 있다.

지금 국내 건설업계는 위기다. 국내 시장은 포화상태고, 해외수주 물량은 올해 들어 반토막 난 실정이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 이는 건설사들이 당장의 이익 추구에 매몰돼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만약 위와 같은 이유로 산업은행이 박창민 전 사장을 대우건설 차기 사장에 선임하려는 게 사실이라면 이는 국책은행으로서의 소임을 스스로 저버리는 처사다. 단순 자신들의 부채를 털어버리기 위해 대우건설의 미래를 포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우건설은 우리 건설업계를 이끄는 대표적인 중견 건설사다. 지난해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상위 3위 안에 들어갈 정도다. 대우건설이 흔들리면 국내 건설업계 전체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치 앞만 보다가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음을 산업은행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산업은행은 헌 짚신처럼 대우건설을 내버리지 말고, 훗날을 위해 소중히 관리하는 데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기여폐사(棄如敝蹝)'하지 말고, '진이장지(珍而藏之)'하길 당부한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