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 한국정치와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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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 한국정치와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8.11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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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새누리당 8·9 전대 결과를 보면 4개월 전 20대 총선 직전에 친박계가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공천파동’을 일으킬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계파공천’을 강행해 20대 총선 결과 당내 당수파가 된 덕분에 이번 당권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비박계와 전면적인 조직 대결을 벌여 결국 당 대표직과 최고위원직 8할을 석권할 수 있었다.  다음 목표는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결이 맞는 후보를 당선시켜 본선에 내보는 것이다.  조금의 행운이 뒤따른다면 박근혜 정부 계승을 자임하는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무성 대표와 경선 악재
비박계는 ‘공천학살’과 ‘총선참패 친박 책임론’, ‘친박계 녹취록 폭로 파문’ 등을 거치면서 국민 여론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당권을 거머쥐지 못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거론될 수 있지만 김무성 전 대표가 밀어붙인 후보단일화가 중대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복기해 보면, 지난 5일 경선 중반에 비박 진영에서 주호영 후보로 후보단일화가 성사돼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반면 비박 쪽에선 이정현· 이주영·한선교 세 후보로 표가 갈려 불리한 처지에서 2~3일 지나는 동안 ‘언더도그 효과’가 국민정서를 파고 들었다.  오랫동안 밑에 깔려 고생하던 비박 진영이 정작 그 국면에서는 위로 올라와 위치가 바뀌는 바람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된 것이다.  계파 조직력과 무관한 국민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가 38.2%를 얻어 주 후보(20.5%)를 2배 가까이 앞선 결과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정현 대표의 ‘당청 일체론’
이정현 신임 당대표는 당무 첫날인 10일 ‘친박 색채’가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대통령과 맞서고 정부와 맞서는 것이 마치 정의이고 그게 다인 것처럼 인식을 갖고 있다면 여당 소속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당과 야당이 똑같이 야당이 돼 가지고 대통령과 정부를 대하려고 한다면 그건 여당이 자기 본분과 지위, 신분을 포기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가히 ‘당청 일체론’이라고 할 만하다.

그의 발언을 ‘여당의원이 야당의원과 같을 수는 없다’는 말로 단순화해서 받아들이면 누구도 토달 게 없는 지극히 당연한 내용이다.  그러나 ‘여당 의원은 대통령과 맞설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여당 의원은 행정부 정책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미로 확대해석을 할  경우, ‘수평적 당청관계’를 주장해온 일부 비박 주자들에게는 거의 선전포고로 들렸을 것이다.  아직은 새 지도부 출범 초기라서 ‘좀더 지켜보자’는 생각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임계점은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당청관계에 있어 ‘일체론’과 ‘수평론’ 중 어느 것이 맞는지 정답은 없다.  한국 권력구조에  포함된 내각제적 요소를 강조한다면 당청은 하나라고 할 만하다.  내각제에선 의회 다수당의 당수와 의원들이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입법권과 행정권의 권력융합이 이뤄지기 때문에 당과 행정부는 일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통령제에서 여당의원의 행정부 견제
그러나 한국의 모델인 미국의 대통령제에서는 삼권분립 차원에서 의회와 행정부 간에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의 원리가 더 일반화돼 있다.  실제 미국 의회에선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핵심정책을 뒷받침할 법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해 6월1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국정과제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의 신속한 타결을 지원하는 중요법안을 놓고 하원에서 표결이 이뤄졌을 때 민주당 의원 188명 중 144명이 집단적으로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켰다.  당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원내대표가 반대투표를 사실상 주도했다.  5개월 뒤인 11월19일 오바마 대통령의 시리아 난민 수용계획에 제동을 거는 법안에 대해 표결이 이뤄졌을 때도 미 하원 민주당 의원 188명 중 47명이 공화당 편에서 찬성표를 던져 법안을 가결시켰다. 

박근혜 의원의 정부안 반대토론
태평양 건너 멀리까지 볼 것도 없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의 핵심정책을 뒷받침하는 법안 표결에서 여당의 중진 의원이 대통령과 맞선 전례가 있다.  바로 이 대표가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지난 2009년 미디어법안과 2010년 세종시법안 국회 통과 때 친박계의 수장 박근혜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제출한 정부안에 강한 제동을 걸어 수정된 내용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세종시법안의 경우 박 대통령이 정부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직접 반대토론에 나섰던 장면은 국민들에게 인상적이었다.  이런 전례를 감안해서 이 대표는 발언의 진의를 보다 정확히 개진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라는 지적은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우호적인 ‘언더도그 효과’는 종종 우리 국민정서를 대변해 왔다.  지난 2004년3월 17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한나라당 주도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탄풍’이 전국적으로 거셌다.  한나라당의 ‘안방’이라는 대구경북에서도 “아무리 그래도 나라님을 그렇게 욕보일 수 있는가”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나라당 후보들은 완패의 위기로 내몰렸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를 이기는 한나라당 후보는 거의 전무했다.  그러나 보름쯤 지나자 예상 밖의 현상이 벌어졌다.  “밖에서 저렇게 죽을 쑤고 있는데 우리라도 밀어줘야지”라면서 ‘역탄풍’이 불었던 것이다.  선거 결과 대구·경북 27석 중 무소속 1석을 제외한 26석을 한나라당이 ‘싹쓸이’ 했다. 

지금은 경선에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승리의 영광을 안은 친박 당대표에게 국민 관심과 지지가 쏠려 있다.  그러나 당권 장악을 계기로 일방적인 입장을 앞세우고 편가르기식 당 운영에 나선다면 민심의 향배를 장담할 수 없다.  민심이 흔들리면 대선에 훨씬 못미친 재보선에서 당 지도부의 입지가 좁아지고 대통령 레임덕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비박을 너무 오래 깔고 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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