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박근혜 대통령과 우병우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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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박근혜 대통령과 우병우 수석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8.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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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처리했으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해결했을 일을 오래 방치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청와대가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특별감찰관 대화록의 ‘선택적’ 보도
처음 우 수석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불거졌을 때 그것은 청와대와 상관없는 개인 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 16일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언론사 기자 간의 대화록이 방송(MBC) 전파를 타면서 전선은 확대됐고 이제는 청와대가 명운을 걸고 전면에 나선 모양새다. 이 특별감찰관의 대화록을 처음 입수한 측이 MBC에 이를 전달할 때는 ‘특별감찰관은 감찰 착수 및 종료 사실, 감찰 내용을 공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된다’(특별감찰관법 제22조), ‘이를 위반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제25조제2항)는 조항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실제로 MBC도 대화록에서 그와 관련된 부분만 뽑아서 보도했다. 그 때문에 대화록은 특별감찰관의 활동과 이해(利害)가 상충하는 진영에서 MBC 측에 제공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고, 일각에선 감찰 대상자인 우 수석 측을 의심하기도 했다.

대화록에서 드러난 관계기관 비협조
그런데 추가 취재와 보도가 이뤄지면서 이 특별감찰관이 누설한(?) 감찰 내용에는 우 수석을 불리하게 만드는 내용도 많이 들어 있다는 게 드러났다. "경찰에 자료 좀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 한다",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는 게 그의 발언이다.  이는 경찰 등 관계기관의 비협조로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 민정수석실의 ‘압력’이 의심된다는 취지다.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 특별감찰관의 직무수행을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있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제25조제1항) ‘자격정지형’이 없어 감찰내용 누설보다 더 중한 범죄로 간주되고 있다.

게다가 대화록에는 이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을 겨냥해 “저렇게 현직으로 놔두고는 어떻게 할 수 없어”, “우가 아직도 힘이 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째려보면 까라면 까니까”라면서 야당의 요구 대로 우 수석 사퇴 필요성을 보여주는 내용도 들어있다.

또 이 특별감찰관은 ‘여러 가지가 다 조금씩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전면적으로 파면 버틸 수 있을까’. ‘자기가 수석자리에서 내려서면 막을 수 없을까봐 저러는 건가’라고 말해 우 수석을 둘러싼 비리 의혹에 상당한 심증을 두고 있음도 내비쳤다.

아무튼 이 특별감찰관은 직무수행 방해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에 우 수석 개인에 대해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로 검찰총장에게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의뢰는 ‘고발’보다 강도는 한 단계 낮지만, 특별감찰관이 ‘감찰 결과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조치다. 

이를 종합해 보면, 이 특별감찰관은 관계기관의 비협조로 우 수석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관계기관의 비협조 배경에는 우 수석 내지는 민정수석실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했다. 기왕에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정황증거에다 그 ‘의심’이 추가되면서 범죄 가능성에 심증을 굳히고 검찰총장에게 수사 의뢰한 것으로 해석된다. 

감찰내용 누설 vs 감찰 방해 가능성
이런 맥락에서 이 특별감찰관의 대화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두 가지 메지시를 던진다. 하나는 이미 청와대가 문제 제기한 감찰내용 누설 가능성이다. 한 보수단체에 의해 이 특별감찰관이 검찰에 고발된 상태이기 때문에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특별감찰관의 감찰을 방해하는 세력이 암약했을 가능성이다. 이는 이 특별감찰관이 자기과시용으로 한 얘기도 아니고 자신의 무력감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허위사실을 지어냈다고 봐야할 이유는 없다. 

만일 대통령이 우 수석 문제에 대해 ‘중립적’이라면 이들 메시지를 공평하게 대했을 것이다. 이 특별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에 흘린 데 대해 “괘씸하다”면서 분노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만히 보니 민정 쪽에서 감찰이 잘 안되도록 힘을 좀 쓴 것 같은데 우 수석에게 뭔가 켕기는 게 있는가?’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다.

우 수석에 대한 대통령의 집착
그러나 청와대의 19일 공식발표를 보면 대통령이 중립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는 판단이 든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감찰 내용을 특정언론에 유출하고 특정언론과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 위법행위”라면서 “국기를 흔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어떤 감찰 내용이 왜 어떻게 유출됐는지 밝혀져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감찰 방해 가능성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 감찰 내용 누출만 문제 삼아 이 특별감찰관에 대한 수사를 앞두고 있는 검찰에 ‘반드시 기소하라’는 지침을 하달하는 듯했다.

만일 홍보수석의 발표가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한 것이라면, 대통령은 우 수석 혐의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 잘못은 우 수석이 국정운영에 기여하는 역할의 중요성에 비춰 미미한 것이어서 그냥 묻고 가겠다’라고…. 대통령이 우 수석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우 수석이 사정기관, 정보기관 곳곳에 ‘우병우 사단’을 구축해뒀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선 ‘사령탑’을 허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나마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우 수석 지키기의 ‘비용’ 증가
문제는 박 대통령에게 우 수석의 ‘효용가치’는 그대로 있으나 그를 지키기 위한 ‘비용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을 논해야 하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논평을 들고 우 수석 구하기에 가세했고, 집권여당의 대변인도 힘을 보태느라 스타일을 구겼다. 

새누리당 김현아 대변인은 “특별감찰 활동의 활동내역이 사전에 공개되는 것은 사실상 국가원수의 국정수행을 마비시킬 수 있는 국기 문란행위”라며 ‘침소봉대’를 연상시키는 논평을 냈다. 도하 언론에서 ‘본말전도’, ‘어불성설’, ‘견강부회’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청와대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국민 시선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역전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세간에는 임기 내내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해 애를 먹던 청와대가 뜻밖에 우 수석 문제로 목표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돈다. 진보적인 사회단체와 언론은 물론이고, 메이저 보수언론까지 우 수석 사퇴론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야당과 여당 내 비주류에 더해 중립적인 여당 원내대표까지 사퇴를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여당 주류 측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으로 공감하는 목소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제갈공명의 읍참마속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자신의 지시를 어긴 탓에 중요 전투에서 패한 마속(馬謖)을 대했을 때,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 그의 목을 베게한 것은 아니다. 마속은 유능한 장수요, 뛰어난 지략가로 공명에게는 꼭 필요한 참모였지만 천하통일의 대업을 앞두고 군율을 세우고 조직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칼을 들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 수석의 잘못이 마속에 비할 게 못된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민심이 흔들리고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후유증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적기를 놓쳐 가래가 아니라 ‘불도저’로도 못 막는 사태는 피해야할 것이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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