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도 물건 먼저 보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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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도 물건 먼저 보고 삽시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8.22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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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先시공·後분양 필요한 이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무언가를 구매하기 전에는 물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난 뒤 돈을 지불하는 게 상식적이다. 시장에서 과일을 살 때도, 백화점에서 옷을 고를 때도, 고가의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살 때도 이 같은 상식은 통용된다. 심지어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에서 화장품 하나를 사더라도 각종 사용후기들을 읽은 후에 구매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한군데 있다. 바로 국내 주택 분양 시장이다. 우리 주택 분양 시장은 물건을 보기 전에 구매대금을 지불하는 선(先)분양 후(後)시공 시스템이 고착돼 있다.

선분양 후시공은 소비자들에 굉장히 불리한 방식이다. 일단 완성된 주택을 확인하지 않고 대금을 지불한 만큼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건설사가 부도가 날 경우 미리 낸 계약금·중도금 가운데 일부를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더욱이 건설사가 분양 전 설명한대로 집을 짓지 않더라도 분양계약을 취소할 엄두를 쉽게 낼 수 없다. 워낙 목돈인 데다, 당장 살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행법도 사업승인도면·착공도면과 다르게 시공됐더라도 준공도면에 따랐으면 하자라고 보지 않는 등 소비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실정이다.

물론,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선분양 후시공은 분양 시점에 책정된 가격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차후 주택가가 상승할 시 상대적으로 주택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하면 더 이상 강점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정부는 2003년부터 먼저 짓고 나중에 분양하는 선(先)시공 후(後)분양 방식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각도로 제도화를 검토했다. 그러나 이는 곧 거센 반발과 직면했고 결국 선시공 후분양은 뿌리내릴 수 없었다.

▲ 아파트도 이제 먼저 짓고 나중에 분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만리재 인근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 ⓒ 뉴시스

당시 선시공 후분양에 반대했던 세력은 과연 어디일까.

우선 건설사들이다. 선분양 후시공을 택한 건설업체들은 주택을 분양 받은 자들로부터 건설자금을 충분히 얻을 수 있어 금융권 등에서 대규모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다. 자본의 유동성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주택을 올리는 내내 분양을 병행할 수 있어 미분양이 크게 줄어든다. 선분양 후시공이 건설업체의 현재 부담은 물론, 미래 리스크까지 경감시키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 투기꾼들도 선시공 후분양에 볼멘소리를 냈다는 후문이다. 투기꾼 대부분은 이미 막대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이다. 이들은 선분양 후시공 시스템 하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분양권을 사들인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매를 시도해 차익을 남긴다.

실제로 부동산포털 <닥터아파트>가 지난 17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주택 분양 시장 수요자 10명 중 4명이 분양권 전매 투자를 위해 주택 청약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분양가, 매매가, 전월세가 등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내 집 마련이 꿈인 실수요자들만 손해를 보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는 건설사들과 투기꾼들의 눈치를 보느라 선시공 후분양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원성을 무시하고 있는 눈치다. 선시공 후분양을 강제하면 대규모 대출에 따른 건설업체의 이자 부담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공산이 있다는 게 명분이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자본가와 투기꾼들이 판을 치는 국내 주택 시장에서는 선시공 후분양으로 실수요자들이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역량이 없는 중소건설사들은 건설업계에서 저절로 도태될 것이며, 실소유자 중심으로 주택 시장이 재편되면 현재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일고 있는 고분양가 논란과 같은 일도 차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제 정부는 '아파트도 물건 먼저 보고 삽시다'라는 소비자들의 상식적인 요구를 더 이상 묵살해선 안 된다. 또한 우리 건설사들도 좋은 물건을 먼저 선보이고, 그 가치에 맞는 돈을 받는 정정당당한 장사를 하도록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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