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족제비가 깨버린 이웃사촌의 정(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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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족제비가 깨버린 이웃사촌의 정(情)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8.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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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14)>나무 위로 올라간 족제비와 나무 아래 매인 백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오후 2시 30분, 늦은 점심을 먹고 막 숟가락을 내려놓자 동물 안전조치 출동지령이 떨어졌다. 지친 몸을 구조버스에 싣고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신고자와 통화를 나눠보니, 오늘 동물 안전조치의 주인공은 족제비였다.

산에 먹을 게 없어 족제비가 야밤을 이용해 민가로 내려와서는 아름드리 정원수에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그런데 신고자가 그 나무 아래 매어둔 백구 두 마리가 족제비를 보고는 밤새 짖어 대는 통에 이웃집이 찾아와 한판 싸우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이런 일로 신고를 해서 죄송해요”라는 수화기 속 신고자의 목소리에 미안해하는 마음이 잔뜩 묻어났다. 신고자가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이런 출동 많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서둘러 현장에 가 보니 정말 개가 시끄럽게 짖고 있었다. 워낙 큰 개라 짖는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신고자 아주머니의 주택과 담 하나 사이로 이웃집이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그 이웃집 사람도 나와서는 말을 보태기 시작했다. 이웃 아주머니는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족제비를 얼른 잡아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럴수록 개는 더 크게 짖어댔다.

신고자는 족제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개를 조용히 시키느라 정신이 혼미해 보였다. 우리는 나무에 신속하게 올라가 족제비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무를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족제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잡는 게 능사가 아니라 그냥 자연의 품 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녀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포획은 삼가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10m 정도 되는 절연봉을 들고 나뭇가지를 후려치니 그때서야 족제비는 겁을 먹고 날렵한 몸동작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지붕 위로 뛰어내려 야산으로 줄행랑을 쳤다.

족제비가 사라지자 신기하게도 개들의 짖는 소리가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신고자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밤새 시끄럽게 해서 죄송해요”라며 연신 사과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웃 아주머니는 “개나 좀 조용히 시켜요. 팔아버리든지”하며 볼멘소리만 남긴 채 집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신고자 아주머니는 난처해하면서도 우리 구조대에게 몇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집에 들어가서 커피나 한 잔하고 돌아가라며 손을 부여잡았다.

나는 “괜찮습니다. 나중에 옆집 아주머니와 잘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는데 꼭 화해하세요” 라는 말만 남기고, 산 어느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족제비를 뒤로하며 다음 출동을 위해 서둘러 귀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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