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레임덕과 승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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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레임덕과 승자의 저주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8.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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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아름다운 패자 되는 관용과 여유 가져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8월은 ‘청와대의 달’이었다. 9일 전당대회에서는 친박계를 새누리당 지도부로 앉혔고, 16일 단행한 개각에서는 각종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제외했으며, 24일에는 음주운전 논란에 휩싸인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다. 당권 경쟁에서도, 인사 문제에서도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청와대는 세 차례의 대전(大戰)에서 모두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떠오른다. 승자의 저주란, M&A·법원경매 등의 공개입찰 때,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적정한 가치를 웃도는 대가를 치르고 낙찰을 받은 승자가 오히려 위험에 빠지거나 큰 후유증을 겪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한마디로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경우를 일컫는다.

‘총선 패배 책임론’과 ‘계파 청산론’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이번 전당대회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오더 투표’로 점철됐다. 그 결과 남은 1년 6개월의 임기를 뒷받침할 새로운 당대표로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 이정현 의원이 선택됐고, 함께 지도부를 구성할 최고위원도 친박계 일색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친박계 지도부가 세워지면서, 새누리당은 ‘도로 친박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계파 청산이라는 국민의 요구도 무시한 꼴이 됐다.

처가 부동산 매매로 논란을 일으킨 우 수석이 교체 대상자가 될 것으로 보였던 8·16 개각에서도 청와대는 ‘마이 웨이’를 선택했다. 청와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3개 부처에 대해 개각을 단행하면서도 우 수석은 유임시켰다. ‘권력형 비리’로 인한 레임덕 가속화를 막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우 수석이 물러나지 않으면서, 시간이 갈수록 국민의 박탈감은 더해가고 있다.

24일에는 23년 전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고, 신분을 감춰 징계를 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철성 후보자가 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인사검증 실패 논란을 막기 위해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보이지만, ‘음주운전 전과자가 음주운전을 단속한다’는 비아냥이 온라인을 채우고 있다. 경찰 조직에 대한 신뢰 하락과 국민적 지탄을 피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청와대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비박계를 이기고, 야당을 이기고, 국민을 이겼다. 그러나 세 번의 승리를 통해 얻은 전리품의 가치가 민심(民心)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비박계에게 지고, 야당에게 지고, 국민에게 지는 것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해야 하는 결정이 아니었을까. 저주에 빠진 승자보다는, 아름다운 패자가 되는 쪽을 택하는 관용과 여유가 레임덕을 피하는 최선의 방안이 아니었을까. 청와대가 곱씹어봐야 할 세 가지 물음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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