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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타틀린과 구축주의… 윤난지 저<추상미술 읽기>
2016년 08월 30일 (화) 정은하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은하 기자)

   
 

20세기 초에 새롭게 등장한 주제가 없는 미술은 과히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미술작품 안에는 알아볼 수 잇는 인물도 물건도 등장하지 않았다. 관람자는 작품 속에서 알레고리를 찾고 싶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기적이거나 기하학적인 형태들, 또는 커다란 색면이나 세로선과 가로선만이 화면을 가득채웠다.

20세기의 첫 10년은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작가들이 기존의 자연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던 색채와 자연의 관계를 완전히 전복시켰던 시기이다. 입체주의는 오브제를 여러 면으로 분할하여 기존에 관습적인 공간감을 분해했고, 미래주의는 시간의 개념에 각각 도전했다. 수많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여러 양식을 오가며 새로운 미술 분야를 개척하였고, 마침내 미술은 대중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급속히 그 내용이 전개되어 갔다.

1910년 이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관람자들이 비교적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주제들, 리얼리티를 다루었다. 심지어 피카소와 브라크도 입체주의의 마지막 단계인 종합적 입체주의에서 다시 구상 이미지를 다루었다. 회화 속에서 주제는 항상 그 자리를 굳게 지켰다.

이 이후 시기에서 미술에서 큰 도약이 일어난다.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주제를 캔버스에서 없애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술의 기초는 자신이 본 세상을 재현하는 것이라 여긴 이들에게는 엄청난 일이었다. 추상이라는 개념이 완전하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미 터너는 대기 중에 소용돌이치는 물감과 추상적 요소들로 가득한 풍경화를 183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 다양하게 제작했다. 인상주의자들은 사실주의자들이 중요시했던 물질적 세계를 부수적으로 다루면서 때로는 추상적인 작업을 시도하였다.

블라디미르 타틀린(1885-1953)

블라디미르타틀린(Vladimir EvgrafovichTatlin)은 이러한 추상미술의 시기에 구 소련에서 구축주의자로 활발히 활동했던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무대 장치가이다. 그는 1913년 금속편과목편에 의한 구성적인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그 작품들이 발전하여 구축주의의 모태가 되었다.

<추상미술 읽기>에 따르면, 그는 20세기 초 러시아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전례 없는 과학기술시대에 미술과 테크놀로지 간의 유기적 결속을 다지려고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삶으로 나아가는 미술’, ‘테크놀로지로 나아가는 미술’이라는 그의 슬로건은 그의 예술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당시는 이상사회의 건설 수단으로 과학기술이 각광받던 시대였고 유물론적인 세계관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침으로써 물질물화가 주목받았다. 타틀린 역시 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춰 작가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테크놀로지를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특히 타틀린이 다른 러시아 구축주의자들과 함께 작업한 <제3인터네셔널을 위한 기념탑>은 물질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구축주의의 개념 

구축주의의 기원은 타틀린이 피카소의 파리 작업실을 방문한 191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틀린은 그곳에서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아 색면을‘실제 공간 안에 존재하는 실제 물체’로 변형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벽에 설치하는 채색 부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외형은 회화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표면에 금속, 철사, 나무 등이 튀어나와 부조처럼 보였다. 1915년까지는 바닥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매다는 형식의 조각들을 제작했다.

구축주의자들은 금속, 나무, 유리, 플라스틱 등 현대 산업 재료들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는 당시에 확고해진 노동계급의 위상이라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으며 구축주의자들은 이러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노동자들과의 결속을 더욱 단단히 하고 있었다. 타틀린으로 대변되는 구축주의자들은 산업사회의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과 움직임의 즉자성이 성취되었다는 데에서 큰 의의를 가지며 이는 훗날 미니멀리즘과 키네틱 아트에 큰 영향을 준다.

구축주의의 해체와 유물론의한계 

구축주의 미술 운동은 1919년까지 공산주의의 후원을 받으면서 전개되었지만 이후 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입장과 예술가는 지적인 노동자에 불과하다며 예술의 정치적 역할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갈리며 해체되는 듯 했다. 또한 너무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데에서 스스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추상미술 읽기>의 167p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시에 과학기술은 미래를 여는 열쇠와도 같았다. 타틀린은 기술적 혁신에 거는 기대로부터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구체적으로 키워나갔다. 따라서 타틀린은 과학자이자 몽상가였다. 기술과 도구에 의지해 유토피아적 환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산업사회의 독특한 재료와 과학적 기능을 지니면서도 상징적인 비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더욱이 유토피아를 물질적 차원에서 구현 가능한 실체로 파악함으로써 실제 공간과 삶 속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타틀린은 당시 물질문명의 유용성에 몰두한 나머지 기술과 도구에 과도한 의지를 하였다. 그가 러시아 구축주의의 대가로 인정을 받는 것은 당대 시대적 조류가 그러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조류인 유물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물론은 옛적부터 사회의 진보적인 계급의 견해로 나타나 인간의 인식을 전진시킨 역할을 해 왔지만, 형이상학적이고 기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또 이 견해를 자연 및 사회에 일관되게 입증하지 못하고 사회에 대해서 관념론에 빠져있었다.

브루노라투르라는 프랑스의 과학인문학자는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들며,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면 기술 결정론이며 사람이 총을 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었다면 사회 결정론이라는 말을 한 적 있다. 이는 기술이 가치중립적이기 힘듦을 알려준다.

우리는 흔히 과학기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즉, 과학기술에는 어떠한 가치도 들어가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가치중립적인 과학기술은 세상에 존재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미국의 로버트모제스가 설계한존스비치 공원 진입 고가도로에는 설계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는 당시 백인 중산층 이상만이 존스비치에 출입할 수 있도록 고가차도를 자동차 높이로 만들었다. 자동차가 없는 다른 인종의 저소득층 노동자들은 진입할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술과 물질문명을 사용할 때는 그것들의 사용방식과 삶의 양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구축주의의 한계 

기자는 타틀린의 구축주의 운동은 기술 강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가치가 도전받게 되는 것들을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술의존적인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데에서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기술의 힘으로 삶의 모든 것을 성취해나간다면 자아의 영역은 기술의 영역으로 환원될 수 밖에 없고 사라질 것이다.

또, 러시아 구축주의 작품 속에는 그 어떠한 감수성이 없다는 데서도 그 한계를 찾아볼 수 있다. 오직 재료와 기술, 도구를 이용하여 물질성을 추구하는 작품 속에는 예술이 기초적으로 가질 수 있는 공감과 소통의 창구가 없어지는 등 감수성을 상실하게 되기 십상이다. 물론 모든 예술은 존재하는 것 만으로 감수성의 창구를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세상이 잘 돌아가듯 어떤 것도 어느 한 극단으로 빠지면 저절로 해체되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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