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밀정>, 콜드 느와르로 포장된 시대와 인간의 질곡
스크롤 이동 상태바
[칼럼]<밀정>, 콜드 느와르로 포장된 시대와 인간의 질곡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8.30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범의 시네 리플릿>캐릭터를 연결하는 유기적 서사의 아쉬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밀정>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작년 여름 극장가를 강타했던 <암살> 은 주연을 맡은 남녀 배우들의 현란한 액션과 함께 조국 광복을 염원하며 아스라이 스러져간 독립투사들의 삶을 그려내어 대중성은 물론, 시대의 아픔에 대한 사회의 반추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친일파와 일본군 사령관을 제거하려는 일단의 독립군과 이를 배신하고 일본에 가담한 밀정을 다룬 <암살> 은 최동훈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연출 감각을 보여 주었으며, 우리의 일부였던 반민족적 역사성과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에 대한 일고(一考)의 장을 생산해 내었다. 

이후 드라마와 액션, 전쟁과 재난 등의 각종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의 과거 시대상과 현재의 문제점을 조망하는 크고 작은 영화가 범람하는 가운데 새로이 개봉하는 <밀정> 은 작년의 <암살> 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데에 분명 이의의 여지가 없다. 

최동훈 감독 등과 함께 한국영화의 대표적 스타일리스트로 일컬어지는 김지운 감독은 <밀정> 을 통해 우리가 망각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에 대한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만들고자 한 듯하다. 

다만 <암살> 이 일제강점기 하의 독립 쟁취를 위해 불꽃같은 삶을 바친 숱한 무명인들에 대한 헌사라면, 반대로 <밀정> 은 시대를 뛰어넘듯 진영을 넘나들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인간 군상들의 부조리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투영한다. 

이는 당대의 부귀를 위해, 또는 조국광복을 위해 암흑의 한 시대를 버텨야 했던 상반된 삶들을 대비함으로써 그들의 변절과 배신, 그리고 이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생존 본능에 대한 내적 갈등을 노정한다. 

과거와 현대의 시대상을 봇물처럼 쏟아내는 한국영화의 추세 속에서, 김지운 감독은 시대의 아픔을 아로 새기는 작업에 기존의 액션이나 유머 보다는 등장인물 간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었다. 

영화의 초입부터 과감히 벌어지는 총격 씬은 이후 이 영화가 시종일관 치닫는 줄거리의 향방을 관객들에게 암시하며 그 몰입을 유도한다. 

완벽에 가깝게 고증되어 구현된 일제 강점기 당시 경성과 상해 일대의 풍경과 의상은 그 비주얼과 미장센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과 같은 시대극을 통해 이미 검증된 강점으로 부각되어 있다. 

무엇보다 영화 전편을 지배하는 인상적인 백미는 기차 안의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주인공들의 동선과 액션 시퀀스다. 

(이제는 감독의 장기로 굳혀진 듯한) 일방향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는 기차와 그 안의 제한된 공간은 보는 이들의 강박적인 긴박감을 밀집시키는 절대 효과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적인 CG 와 공을 들여 만든 기차 안 세트는 스타일리스트다운 감독의 방식이 녹아든, 주요 배역 간의 심리전이 벌어지는 극적 장치이다. 

하지만 감독이‘콜드 느와르’라 칭한 이 영화는 그 의도와는 달리, 드라마와 액션 스릴러의 경계 선상에서 시대의 아픔이 농밀하게 전개되어야 하는 스파이 장르의 미덕을 과시하는 데에는 실패한 듯하다. 

마치 마이클 만 감독이 1995년 작 <히트> 에서 보여 준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대면을 연상시키는 송강호와 공유의 연기의 합에 중심을 둔 나머지, 유일한 히로인인 한지민과 신성록 등과 같은 조연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감을 지나 철저히 묻히는 감이 있다. 

특히, 현재 브라운관과 공연계에서 누구 못지않게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신성록이 맡은 배역은 그의 이름값에 비할 때 허전함이 현저하다. 

맥거핀으로 훌륭히 활용되어질 수 있는 신성록이란 카드의 미진함은 오히려 날카로운 눈매를 갖춘 관객들에게는 복선에 대한 일말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송강호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적과 동지를 넘나드는 캐릭터에 대한 서사를 배우 개인의 연기력과 후광으로 대체하는 것은 관객들의 인내 어린 이해와 납득을 요구한다. 

물론 그 비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복잡한 감정선을 순간적으로 넘나드는 것이 무조건 어불성설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요 인물 간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는 제시되어야 한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다소 진지한 이미지의 송강호는 어느 영화에서든 대중적 흥행과는 별로 연이 닿지 않았음을 인지한다면 더욱 그렇다. 

다만 그 와중에 송강호의 대척점에서 밀리지 않는 배역을 맡은 엄태구의 재발견은 이 영화의 소산이라 할 만하다. 

분명 <밀정> 은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이 진화되어 최대한 수렴된 작품인 것만은 자명하다.

그러나 메인 캐릭터에 지나치게 함몰된 나머지,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 간의 유기적 서사가 입체적으로 와 닿지 않아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공명이 관객 저마다의 과제로 남는다는 지적은 면키 어렵다. 

차라리 한정된 시퀀스로 특별출연한 이병헌에게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노파심으로 치부될 수 있을는지 의구심이 앞선다. 

9월 7일 개봉한다. 15세 관람가.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