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8·27 전당대회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5선의 추미애 의원이 당선됐다. 민주당 61년 역사에서 대구·경북 출신으로 선출직 당대표에 오른 것는 그가 처음이라는 의미부여가 뒤따랐다. 당 대표 외에도 최고위원 8명 중 6명이 친문계 인사로 채워져 도로 ‘친문당’이 됐다는 진단이 나오자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한다. 지난 9일 8·9 전대를 통해 새누리당 새 대표에 3선의 이정현 후보가 당선됐을 때도 80년 대 이후 보수정당에서 선출된 최초의 호남출신 대표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리고 당대표는 물론이고 최고위원 6명 중 5명이 친박인사로 채워지자 ‘친박당’으로 되돌아갔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대표의 지상과제는 ‘킹 메이커’
추 대표도, 이 대표도 임기 중 지상(至上)과제는 내년 대선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고 본선에서 자당후보를 당선시켜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다. 킹메이커 역할이다. 추 대표도, 이 대표도 공교롭게 연고지가 상대당 안방이어서 당의 외연 확장에는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구가 서울(광진을)인 추 대표는 새누리당의 안방인 대구에서 출생해 경북여고를 졸업했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 대표도 당 대표 경선 때 "내년 대선에서 호남 표 20%를 가져오겠다"고 장담한 바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당대표 경선에서 당내 주류(친문계,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당선됐다는 점에서 한계도 공유하고 있다.
지난 1997년 15대 대선에서 2012년 18대 대선까지 선거결과를 보면 보수 여당과 그에 맞서는 야당 사이에는 팽팽한 표대결이 계속돼 왔다. 어느 한쪽이라고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 패배로 직결됐음을 알 수 있다. 15대 대선 때 야권의 단일후보 김대중 후보(40.3% 득표)에 맞서 보수진영의 표가 이회창(38.7%), 이인제(19.2%) 두 후보로 갈린 탓에 김 후보가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17대 때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이긴 이명박 후보(48.7%)가 단일후보로 나선 데 비해, 비한나라당 표는 정동영(26.1%), 이회창(15.1%)으로 갈리면서 공멸을 자초했다.
보수 대 진보 2강(强) 구도가 펼쳐진 16대 대선(이회창 46.6%, 노무현 48.9%)과 18대 대선(박근혜 51.6%, 문재인 48.0%)에선 겨우 3%p 안팎 박빙의 표차가 승패를 갈랐다. 유권자 성향이 일방적으로 한 쪽으로 쏠리지 않고 고르게 분포돼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역균형발전, 경제민주화 등 일부 민감한 공약들이 중간층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후보구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데 더 크게 작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선목표는 단일후보 배출
이런 전제에서 볼 때 추 대표와 이 대표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기 위해선 각 진영에서 단일후보를 배출하다는 것을 우선목표로 삼아야 한다. 단일후보가 나와야 표의 분산을 막고 본선에서 당력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나 양당의 대주주들이 특정후보에 이미 경도돼 있다는 사실은 두 대표 운신의 폭을 좁히는 동시에 성공적인 임무완수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 이 대표에게 1차적인 과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운영과 임기 마무리를 충실히 뒷받침하는 것이다. 정권재창출도 박근혜 정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고구마 덩굴’처럼 딸려올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따라서 국정 운영과 대선후보 결정,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는 마스터플랜은 청와대에서 관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대표체제는 그에 필요한 입법부 차원의 측면지원 역할에 충실해달라는 주문으로 보인다. 이미 당청 관계에서 청와대가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는 4·13 총선 공천, 8·9 전대, 우병우 수석 거취 등에서 일단을 드러냈다.
주류에 대한 불신은 '단일후보' 야금(冶金)에 걸림돌
‘시어머니’의 수렴청정 아래 이 대표는 앞으로 여권의 대권주자들이 대거 참여해 한마당 잔치를 벌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야 한다. 반기문 사무총장뿐 아니라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시장 등 비박계 주자들이 당내 역학관계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누가 멍석에 오를지는 미지수다. 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선 주류와 이 대표에 대한 경계감이 불신감으로 비화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 대표는 ‘수평적 당청관계론’에 숨통을 박았고 우병우 수석 거취에 함구로 일관함으로써 비박계와 정서적 이질감을 드러냈다. 비박주자들은 결론이 나 있는 굿판에 자신들은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이 앞선다면 참여를 거부할 것이다. 그들은 지난 8·9 전대에서 친박 조직표의 위력을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이른바 ‘제3지대’로 관심이 돌아갈 개연성은 항상 열려 있다.
추 대표의 경우도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1등을 깎아 내리는 대선 경선은 자살골”이라며 본인부터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입장을 드러냈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친문계는 그에게 득표율 54%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표직을 안겨줬다. 대표 임명장 행간에는 '문 전 대표를 내년 대선후보로 당선시켜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정권’을 창출하라'는 특명이 적혀 있을 것이다.
추 대표, 지지도 2위 후보로 정면승부는 위험부담
추 대표는 그럼에도 외연 확장을 위해 당의 문턱을 낮추고 문호를 개방하는 등 안간힘을 쓸 것이다. 호남 실지(失地) 회복을 위해 “호남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이 버티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결과가 뻔한 경선에 손학규 전 대표나 김부겸 의원 등 비중 있는 주자들의 참여가 어려울 것이며 그럴수록 흥행에 실패해 맥빠진 레이스가 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 대표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를 겨냥한 야권 후보 단일화에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당선 직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후보 단일화라는 꼼수 시나리오는 체질적으로 싫어한다”면서 선을 그었다. 문 전 대표 하나로 정면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며, 타 후보의 합류 여부는 ‘선택사항’이라는 인식이다. 협상과 타협을 모르는 ‘친노·운동권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지금 반기문 총장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내년 대선전을 앞두고 어느 진영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변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8월 1주차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반 총장이 21.3%, 문 전 대표가 19.0%, 안철수 전 대표 9.0% 순이었다. 반 총장은 지난 5월말 5박6일 방한 이후 지지도 25.3%로 1위를 차지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선두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유엔 임기를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정치활동에 들어가면 혹독한 검증과정이 있더라도 지지도가 만만찮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소홀히 할 수 없는 반기문 총장의 국민 지지도
이런 사실은 이 후보와 추 후보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추 후보에게는 여론조사 2위 후보를 단독으로 내세워 정면 승부를 내겠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1위 후보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X-파일’을 확보하지 않은 이상, 그것은 돈키호테처럼 무모해 보인다. 합종연횡을 염두에 두고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 대표에게도 과제가 생긴다. 반 후보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그러나 정치 때가 묻지 않은 신인(?)에게 ‘친박’이란 낡은 계파정치의 감투를 씌워 진흙탕 속으로 끌어들였을 때 국민 기대와 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 이 대표와 친박은 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반 후보의 ‘새누리호 승선’은 무산될 것이고 친박계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도 있다.
태생적 멍에를 극복한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결론적으로 추 대표와 이 대표는 당내 주류세력의 조직적인 지원 덕분에 당 대표의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고 임무는 무겁다. 그들이 경선 과정에서 짊어진 '태생적 멍에'는 대선 승리를 위한 정지작업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비슷하게 맞닥뜨린 딜레마를 얼마나 슬기롭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따라 킹메이커로서 최후 승자가 판가름 날 것이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