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 청와대 조직문화와 故 김영한 전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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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 청와대 조직문화와 故 김영한 전 수석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8.31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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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 지난 21일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 뉴시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1일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그의 후임인 우병우 현 민정수석을 떠올렸을 것이다. 김 전 수석이 그렇게 미련 없이 박차고 나온 자리를 우 수석이 물려받은 뒤 다각적인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 달 넘게 뭉개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격(格)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음은 그간 언론에 단편적으로 보도된 김 전 수석의 사퇴에서 사망까지 행적을 정리해 봤다.

“업무에서 배제된 데 따른 불만이 있었던 것 아니냐”
◇…김 전 수석은 2015년 1월 정윤회 씨 등 현 정권의 이른바 '비선(秘線) 실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윤회 문건' 사건이 불거졌을 때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고 하자 "전례가 없다"며 거부하고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김기춘 실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김 전 수석 아래 있는) '우병우 민정비서관'과 직접 상의하면서 김 전 수석이 업무에서 배제된 데 따른 불만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조선일보 8월25일)

“검찰이 청와대 뜻에 따르도록 독촉했던 사람이 당시 민정비서관이던 우 수석”
◇…박 대통령은 그해 12월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 문건 유출 자체를 문제 삼으면서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초점을 돌렸고 검찰은 대통령의 ‘수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통령 기록물관리법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혐의 등으로 조응천 전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등을 기소했다. 이러한 물타기를 기획하고 이같은 수사방향에 부정적이었던 검찰이 청와대 뜻에 따르도록 독촉했던 사람이 당시 민정비서관이던 우 수석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대통령 신임을 얻은 우 수석이 청와대 입성 10개월 만인 지난해 1월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는 것이 여권내 정설처럼 통한다.(경향신문 8월20일)

“우 수석이 깔끔하게 공백을 메워줬다”
◇…(정윤회)문건 유출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핵심 측근 3인방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일 때, 우 수석이 깔끔하게 공백을 메워줬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8월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스트레스와 과음 때문에 그간 앓고 있던 간염이 간암으로 퍼진 것 같다”
◇…김 전 수석의 사법연수원 동기(14기) 등 측근 인사들에 따르면 그는 사퇴 이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출석 요구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와 과음 때문에 그간 앓고 있던 간염이 간암으로 퍼진 것 같다”고 전했다.(중앙일보 6월26일)

“수개월 전 간암 발병을 확인”
◇…김 전 수석은 수개월 전 간암 발병을 확인한 뒤 가족과 친지들에게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수석은 사망 직전 가족들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장례식을 치러 달라”는 말을 남겼고,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들이 22일 김 전 수석의 장례를 치렀다. (동아일보 8월25일)

“너무 곧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대쪽 같은 성격”
◇…영한이는 제 경북고 친구입니다. 너무 곧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대쪽 같은 성격 때문에 친한 친구도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성격이 그렇게 까칠했으니 검사로서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와는 무척 친했습니다. 뭔가 서로 당기는 게 있었던 거 같습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8월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청와대의 ‘조직문화’에 희생 가능성
이들 내용을 종합해보면, 김 전 수석은 결과적으로 청와대의 ‘조직문화’에 희생됐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지난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청와대의 대응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정작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에 묻은 흙을 문제 삼는 격’이었다. 문건에 나타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가능성에 대해선 마땅한 수사 없이 검찰을 앞세워서 ‘물타기’ 내지는 ‘본말전도’ 방식으로 사건을 깔끔하게 수습했던 장본인이 당시 우병우 민정비서관이었다.

지금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수사의뢰한 우 수석의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일언반구 해명 없이 감찰내용 누설에 대해서만 ‘중대 위법행위’,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면서 검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것도 이와 유사한 행태다. 아무튼 변죽을 울려 사건의 핵심을 흐리고 엉뚱한 트집으로 진상을 호도하는 청와대의 위기관리 방식을 놓고 김 전 수석이 주춤하는 사이에 우 수석이 적극 나서면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김영한과 우병우의 엇갈린 인생
이 대목에서 유승민 의원이 김 전 수석에 대해 “너무 곧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대쪽 같은 성격”이라고 적은 글을 생각하면 그의 번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반면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말했듯이 “핵심 측근 3인방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일 때, 우 수석이 깔끔하게 공백을 메워줬다”는 설명에서 우 수석은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김 전 수석은 2012년 대검 강력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날 때까지 30년간 법과 원칙을 지키며 본분에 충실한 덕분에 사정권력의 정점인 민정수석에 발탁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청와대의 조직문화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대통령의 위신과 정권의 안녕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필요하면 ‘통치행위’라는 미명 하에 법과 원칙도 후순위로 밀어버릴 수 있는 융통성(?)이 요구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로 인해 김 전 수석은 불과 7개월 만에 수석직에서 불명예 퇴진한 데 비해, 그의 공백을 메운 우 수석은 청와대 조직문화의 총아로 떠올라 지금은 ‘대못’처럼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후 김 전 수석은 자긍심을 갖고 몸 담았던 공직사회에서 퇴출된 데 따른 심한 패배감과 열등감에 한동안 술과 자책으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민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김 전 수석은) 공직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고 자존심 강한 녀석은 많이 속상했을 겁니다”라고 썼다. 그런 심리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어느새 간염에서 간암으로 악화되고 결국 죽음에 이른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청와대의 적자(適者)는 ‘맹목적인 충성’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말이 있다. 진화론에서 어떤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김 전 수석의 사례에서 청와대의 조직문화는 30년 공직생활을 통해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부장검사마저도 ‘곧고 대쪽 같은 성격’으로는 도태(淘汰)되기 쉬운 환경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보다는 갖가지 의혹이 제기돼 줄기차게 사퇴 요구에 휩싸이더라도 자신의 눈과 귀를 막고 대통령만을 바라보면서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수 있는 그런 두꺼운 얼굴을 가진 사람만이 적자(適者)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청와대의 척박한 조직문화가 그런 사람을 적자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 어떤 척박한 인격의 소유자가 그런 문화를 만든 것인지는 세월이 답을 줄 것이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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