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전쟁]이정현 단식, 무리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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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이정현 단식, 무리수였을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0.04 16: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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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또 한 번 여당의 승리로 끝난 결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온갖 비판과 비아냥을 샀지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 뉴시스

1970년대, 미국에서는 괴소문이 돌았다. 맥도날드가 지렁이로 햄버거 패티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맥도날드 측은 즉각 반박했다.

“우리 햄버거에는 지렁이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맥도날드의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사람들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볼 때마다 지렁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가장 최악의 대응은 그 공격을 반복하면서 방어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프레임을 부인할수록 오히려 프레임을 활성화시키게 된다”고 주장했다. 맥도날드의 사례를 예로 들면, “지렁이가 들어있지 않다”는 맥도날드의 대응이 오히려 지렁이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매출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레이코프는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리게 된다”면서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맥도날드는 더 이상 ‘지렁이 괴소문’에 반박하지 않고, 아예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 열흘 동안 한국 정치에서는 치열한 ‘프레임 전쟁’이 일어났다. 시작은 야3당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공조를 통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예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임건의안을 거부하자, 야권은 일제히 “오만과 불통의 극치”, “의회주의의 부정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등의 논평을 내며 ‘불통과 독단’ 프레임을 가동했다. 레이코프의 이론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아무리 야당의 주장을 부정해도 국민은 ‘박 대통령과 불통’을 연결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우(愚)를 범하지 않았다. 대신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우선 해임건의안 통과 과정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중립성을 잃었다고 몰아붙였다. ‘불통과 독단’ 프레임을 ‘국회의장의 중립성’ 프레임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정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단식으로,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 최초의 국정감사 보이콧으로 주의를 분산시켰다. 이 대표가 ‘밀실 단식’으로 비웃음을 사고 새누리당이 ‘명분 없는 국감 보이콧’으로 비판의 중심에 놓이긴 했으나, ‘박 대통령의 불통’ 프레임은 자연스럽게 옅어졌다.

야당의 프레임 전환 시도도 무력화했다. 모두가 이 대표의 단식 투쟁과 새누리당의 국감 보이콧을 비난하는 동안,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와 최순실 씨의 비선실세 의혹은 유야무야(有耶無耶)됐다. 야당은 국감에서 이 문제를 다시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이미 파괴력은 반감된 상태다.

그뿐만 아니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넥슨코리아 간 부동산 거래는 ‘사실상 무혐의’ 결론이 났으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골프장에 배치하기로 했다.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도 조용히 종료됐다. 국민의 비판과 비아냥을 감수한 여당의 ‘뒤집기’에 야당이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한 모양새다.

단식 투쟁을 하는 일주일 내내 이 대표는 조롱을 받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SNS를 통해 단식을 ‘코미디 개그’라고 했고, 추미애 더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에게 그냥 잘 보이고 싶은 것뿐이어서, 대통령이 ‘장하다’, ‘잘했다’고 하면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식이 끝난 지금, 새누리당은 원했던 모든 것을 얻어간 반면 야권은 빈손으로 ‘정신 승리’만 하고 있다. 과연 이 대표가 웃음거리가 되면서까지 ‘전장(戰場)’을 바꾸는 동안, 야권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반드시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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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줄 2016-10-04 17:38:50
이정현의 단식이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함임을 알았다면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건 언론의 역할 아닌가?
언론들이 보란듯이 단식관련 기사만 써놓고 이제와서 눈 돌린 야당탓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