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에게 ’전권 주겠다‘는 안철수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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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에게 ’전권 주겠다‘는 안철수의 착각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0.2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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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당명 변경·당 운영 권한 주겠다는 제안, 무슨 자격으로 하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고문에게 당 운영에 대한 권한을 열어두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 뉴시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이다. 주권재민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국민을 우선으로,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의 대전제라는 이야기다.

이를 정당에 적용하면, 민주정당의 기본 원칙은 ‘당권재민(黨權在民)’이라고 할 수 있다. 당권은 당원에게서 나오므로, 민주정당이라면 아무리 리더라고 해도 당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당원의 뜻부터 물어야 한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지난 20일 정계복귀를 발표하면서 “술을 전혀 못하는 걸로 알았던 안철수 의원이 만남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신 뒤 국민의당으로 오라면서 새로운 당명을 포함해 모든 당 운영에 대해 나한테 열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말, 참 이상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는 ‘당명을 포함해 당 운영을 특정인에게 열’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당헌 제3조 제1항은 ‘국민의당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고, 당의 의사는 당원이 결정한다’고 규정한다. 당명을 교체하거나 당을 운영할 권한을 특정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분명 당원이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안 전 대표가 손 전 고문에게 ‘당명을 포함해 당 운영에 대해 열겠다’고 말하려면, 당원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선행됐어야 한다. 당원의 의사를 묻지 않고 단독으로 이런 제안을 했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다. 안 전 대표가 당헌 제3조 제1항을 위반했거나, 손 전 대표에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손 전 고문과 안 전 대표의 회동 타이밍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안 전 대표가 대표직에 있을 때 약속을 했다면 이해의 여지가 있다. 당원들이 안 전 대표에게 당을 운영할 권한을 부여한 만큼, 이를 활용해 손 전 고문에게 제안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문제는 손 전 고문이 저서에서 밝힌 안 전 대표와의 회동 날짜가 지난 8월 말이라는 점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 6월 ‘리베이트 파동’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대표라도 해서는 안 될 약속을 대표도 아닌 무권리자가 했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지난 13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지역위원장 선출을 보면 민주적 공당의 모습이 아니다”라며 “경선도 없이 조직강화특별위원들이 조물조물 결정해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문재인 대표의 사당화를 비판하고 나와 새 정당을 만든 것이 아닌가”라면서 “이렇게 안철수 사당화를 의심받을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손 전 고문 또한 대표도 아닌 안 전 대표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민주당 탈당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이는 정치권이 국민의당을 안 전 대표의 사당(私黨)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과연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손 전 고문 영입에 힘을 쏟기 전에, 정당(政黨)에 대한 인식부터 확고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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