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르헨티나의 별 ‘힌나마리아 이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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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르헨티나의 별 ‘힌나마리아 이달고 ’
  • 김선호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16.10.26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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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3)> '4옥타브' 신이내린 목소리로 불려…美 명문 줄리어드 음대서 장학금받으며 공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선호 음악 칼럼니스트)

 * 죽은 시인의 영혼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그 속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태초의 사랑이 살고 있을까.

죽은 시인의 영혼이 머무르고 있을까.

버려진 슬픈 기억이 머무르고 있을까.

1938년 아르헨티나 동북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휴양지 마르 델 플라타(Mar del Plata)에서 한 여인의 시신이 칠흑 같은 밤바다에 떠올랐다. 그것은 여류 시인 알폰시나 스또르니(Alfonsina Storni)의 익사한 시신이었다.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하다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 물고기들과 고동들, 그리고 산호초와 이야기하며 결국 다른 삶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은의 바다’로 불리는 마르 델 플라타의 바다에서 은처럼 빛나며 사라져버린 시인.

그녀는 시골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문학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홀로 써왔던 시는 문단으로부터도 천박한 통속시라는 비난을 줄기차게 받아왔다. 게다가 스무 살의 나이에 사생아를 낳아 윤리적 편견과 암이라는 병마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살아온 이른바 질곡의 인생이었다.

지금 마르 델 플라타에는 그녀의 조각상이 남아있다. 그녀는 사실 1925년 열린 마르 델 플라타에서 개최된 ‘제1회 시의 축제’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대규모 시인들의 모임은 아니었고, 스또르니를 위한 조촐한 행사였다. 그럴지라도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이고 행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곳은 그녀가 삶의 두 갈래 길을 걸어간 곳인 셈이다. 

▲ 아르헨티나의 별 ‘힌나마리아 이달고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알폰시나와 바다

그대의 가녀린 자취는 파도 어른대는

고운 백사장으로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을

한과 침묵이 감도는 호젓한 길은

바다 속 깊이 이르고

삼켜버린 한이 서린 호젓한 길은

물거품 속으로 사라지고

 

그대가 얼마나 큰 고뇌에 잠겨있는지

고동들이 웅얼거리는 노래에

포근히 기대려고 얼마나 크나큰

오랜 고통을 삼키고 있음을 신은 알지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서

고동들이 부르는 노래에

 

알폰시나여 고독을 안고 가는군요

어떤 새로운 시를 찾으러 갔나요

소금기 어린 해묵은 해풍이

그대 영혼을 어루만지며 데리고 가는군요

그리고 그대는 꿈에 취한 듯

바다의 옷을 입고 그리로 가는군요

 

다섯 인어가

해초와 산호초 길로 인도하리니

반짝거리는 해마들이

옆에서 원무를 그릴 것이며

어느새 바다의 주민들이

옆에서 노닐고

 

유모 불을 조금 더 낮추고

편안히 잠들게 해 주세요

그가 전화해도 없다고 해 주세요

알폰시나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 주세요

그가 전화해도 꼭 없다고 해 주세요

내가 가버렸다고 해 주세요

 

알폰시나여 고독을 안고 가는군요

어떤 새로운 시를 찾으러 갔나요

소금기 어린 해묵은 해풍이

그대 영혼을 어루만지며 데리고 가는군요

그리고 그대는 꿈에 취한 듯

바다의 옷을 입고 그리로 가는군요

이 시는 알폰시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려고 작사가이자 시인인 펠릭스 루나가 쓴 것이다. 여기에 아르헨티나의 국민 작곡가 아리엘 라미레스가 곡을 붙인 것이 그 유명한 <알폰시나와 바다 : Alfonsina y el Mar>라는 곡이다. 이 곡을 쓴 라미레스는 1921년 산타페 출신으로, 초기에는 탱고와 관련된 음악에 심취하였으나 후에 아르헨티나의 크리오요 민속 음악에 빠져들었다. 이를 계기로 유팡키(Atahualpa Yupanqui : 1908년 1월 31일- 1992년 5월 23일)와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 1935년 7월 9일- 2009년 10월 4일)와도 만나게 된다. 

▲ 아르헨티나 천재가수 힌나마리아 이달고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신이 내린 목소리

이 곡은 많은 라틴계 가수들이 부른 노래이지만 그 가운데 신이 내린 목소리를 가진 힌나마리아 이달고(Ginamaría Hidalgo : 1927년 8월 23일 – 2004년 2월 10일)가 불러서 크게 히트를 했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의 마술사로 알려진 힌나마리아 이달고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으로 스페인계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노래, 연기 발레, 문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다. 17세 때는 아르헨티나 음악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소프라노 가수가 되었고, 미국의 뉴욕 줄리어드 음대에서는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이후 세고비아(Andres Segovia)의 후원으로 스페인 국립 장학금을 받아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또한 많은 오페라와 영화의 주인공으로도 활약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조국인 푸에르토리코를 위해서 2002년에 발매한 ‘Ginamaria Live en Puerto Rico, Volumen II’ 앨범은 그 수익금을 모두 푸에르토리코에 기부하기도 했다. 

누에바 깐시온

한편 남미지역의 이른바 새로운 음악조류인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은 1950년대 후반부터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싹튼 뒤 점차 카리브해와 라틴 아메리카 전역으로 걸쳐 퍼져나갔다. 이 음악은, 중남미의 혼란스럽고 부패가 만연한 정치적 경제적 인종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점 새로운 가치관을 담으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의 노래는 늘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을 애수에 찬 목소리로 담았다. 즉 서민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 눈물, 그리고 가난으로부터의 고통 등을 소박한 언어로 가슴 저리게 노래한 것이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신의 목소리를 차치하고서라도 힌나마리아 이달고를 높이 사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러한 그녀의 생각들 때문이다.

그녀가 모차르트의 <돈조반니>,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푸치니의 <토스카>,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를 부르지 않아도 그녀는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이며, 또한 최고의 깐시온 가수이다.

그녀의 음반은 LP를 비롯해서 CD도 적지 않다. CD는 대부분은 LP 시대에 녹음한 것을 CD로 리마스터링한 것이다. 그녀의 음반을 사는 데는 사실 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대표적인 CD 음반 두 종류에 그녀가 그동안 부른 최고의 명곡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구입하면 된다. 하나는 <Ginamaria Hidalgo - Los Esenciales>이며, 다른 하나는 <Ginamaria Hidalgo - Mis Mejores  30 Cancions>이다. 이 음반의 열 번 째 트랙에 가슴 저리고도 슬픈 시인의 노래 <알폰시나와 바다 : Alfonsina y el Mar>가 들어있다. 음질도 모두 뛰어나다

 
 

김선호 / 現 시사오늘 음악 저널리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 월드뮤직 에세이<지구촌 음악과 놀다> 2015
- 2번째 시집 <여행가방> 2016
- 시인으로 활동하며, 음악과 오디오관련 월간지에서 10여 년 간 칼럼을 써왔고 CBS라디오에서 해설을 진행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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