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民衆歌謠)', 다시 대학가를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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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요(民衆歌謠)', 다시 대학가를 사로잡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11.12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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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과 저항'의 '울부짖음'에서 '공감과 화합'의 '하나된 목소리'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오늘의 함성 뜨거운 노래 영원히 간직해요/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다시 한 번"

지난 9일 서울 청량리 광장에는 인근 대학생 700여 명이 모여 '비선실세 국정농단 박근혜 정부는 하야하라'는 구호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제각각이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은 구심점은 바로 '민중가요(民衆歌謠)'였다.

▲ 지난 9일 서울 청량리 광장에서 700여 명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촛불행진을 펼쳤다. 인근 대학 민중가요 노래패가 대학생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 시사오늘

무대에 나선 노래패의 선창에 대학생들은 입을 떼기 시작했다. 장엄하고 엄중한 과거의 민중가요가 아닌 부드럽고 경쾌한 멜로디에 700여 개의 촛불이 같은 방향으로 너울거렸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추운 날씨임에도 그들의 하나된 목소리에 청량리 광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투쟁과 저항'의 노래였던 민중가요가 '공감과 화합'의 하나된 목소리로 진화해 다시 대학가에 울려 퍼지고 있다.

급격한 변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던 민중가요

1970~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학생들은 암울한 시대에 대한 저항과 사회 참여의 의미로 민중가요를 부르짖었다. 당시 민중가요의 주제는 대부분 민주화와 노동운동 등이었다. <아침이슬>, <타는 목마름으로>, <광야에서>, <불나비>, <임을 위한 행진곡>, <단결투쟁가>, <광주여 무등산이여> 등이 '그때 그 시절'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민중가요는 대학가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군부독재를 청산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투쟁과 저항의 표적을 잃은 데다,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선언으로 글로벌 거대 자본이 봇물처럼 들어오면서 매스미디어들이 출현,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자연스럽게 대학생들의 관심은 사회 참여가 아닌 취업, 결혼 등 개인의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근근이 연명하던 각 대학교 민중가요 노래패들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집회, 시위를 할 때나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짙어져 대학생들이 거부감을 느낀 데다, 노래패 경력이 졸업 후 취업에 저해가 될까 우려해 활동 자체를 포기하는 회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서울 내 한 대학교 노래패에 있다가 2006년(참여정부 말기)께 활동을 접었다는 최모 씨(32)는 최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민중가요를 부른다고 어디 가서 떳떳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특히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며 "민중가요 노래패 회원이었다고 군대에서 자대배치 하루 만에 문제병사로 낙인 찍혔었다. 두려웠다"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민중가요와 대학생에 접점을 제공하다

▲ 지난 9일 서울 청량리 광장 대학생 집회에 참여한 한 서울 내 대학 민중가요 노래패 관계자는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 선배들의 운동과 열정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그때의 느낌을 알 것 같다"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든 대학생들에게 많은 응원을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이처럼 한동안 대학가에서 설 자리를 잃은 민중가요는 2008년 MB(이명박 전 대통령)정부 때 광우병 촛불집회  등 사회적 이슈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점차 대학생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영향으로 다시 대학가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다만, 최근 대학가에서 울려 퍼지는 민중가요는 과거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무겁고 엄중한 '운동권 노래' 이미지를 탈피하고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로 지난 11일 발매된 유명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의 앨범 '그대를 위한 노래'에 수록된 곡들을 살펴보면 '투쟁과 저항' 대신 '공감과 화합'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대의 눈물보다 내 노래는/얼마나 가벼운지 몰라요/그대의 슬픔보다 내 노래는/얼마나 초라한지 몰라요/그대를 위해 노래할래요/그대가 미소질 수 있도록/그대의 눈물/다 내게 줘요"

(2016년 11월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 <그대를 위한 노래> 中)

"우리가 각자의 삶 속으로/뿔뿔이 흩어진 것도/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야/우린 함께 분노했고/거리에서 노래했고/나 자신보다/우리가 더욱 소중했지/그때 우린 아름다웠고/생각보다 우리가 강한 것을 알았고/서로의 눈 속에서/빛나는 보석을 보았지/이젠 함께 숨 쉬고 싶어/어깨걸고 너와 노래하고 싶어/너는 혼자가 아니라고/네 맘같은 우리가 있다고"

(2016년 11월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 <우리> 中)

또한 최근 대학가에서는 민중가요의 범위가 확대되는 경향도 엿보인다. 기존 대중가요 가운데 사회 참여적인 노래들이 마치 민중가요처럼 대학생들 사이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단초가 됐던 지난 7월 이화여대 점거농성 때 대학생들이 부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 인기 대중음악이 민중가요로 승화한 것이다.

이처럼 민중가요가 다시 대학가를 사로잡게 된 이유는 대중과의 접점을 다시 찾게 됐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한 현재 서울 내 한 대학교 노래패 회원은 12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이 성공할 수 없는 사회라는 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줬다"며 "각자의 치열한 삶에 사회 참여를 기피했던 대학생들이 다시 민중가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민중가요로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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