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엘비스와 대통령>, 정상(頂上)들의 비정상(非正常)회담
스크롤 이동 상태바
[칼럼]<엘비스와 대통령>, 정상(頂上)들의 비정상(非正常)회담
  • 김기범 영화 기자
  • 승인 2016.11.23 1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범의 시네 리플릿>짧고도 강렬했던 그들만의 만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 기자) 

▲ 영화 <엘비스와 대통령> 포스터 ⓒ우성엔터테인먼트

적어도 학문의 영역에 있어 정치학의 영원한 테제는 과연 누가 권력을 잡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권력을 잡은 인물들의 일대기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정치학의 제이론들이 추출되고 연구되어지기 마련이지만, 정작 정상에 선 인물들의 기저를 이루는 심리 상태나 내면세계에 대한 고찰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과연 (정상인의 범주와는 확연히 달라) 정상에 이른 이들의 심리 구조와 내면 상태는 어떤 것일까? 

영원한 ‘록의 제왕’(The King of Rock 'n' Roll) 으로 등극하며 사후에도 불멸의 전설로 추앙받고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워터게이트 사건의 오명을 남긴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짧았던 만남을 그린 영화 <엘비스와 대통령> (Elvis & Nixon) 은 단순한 코미디를 지나, 어쩌면 현실의 우리에게 정치권력의 속성과 이를 쥐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내면 심리에 대한 단상을 제공할 지도 모른다. 

6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던 베트남전 반대 여론과 히피 문화, 그리고 무정부주의와 인종갈등 등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첨예화된 1970년은 적어도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혼탁의 기점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1970년의 연말을 배경으로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인 엘비스 프레슬리가 리처드 닉슨을 만나 연방요원 자격을 요구한다는 <엘비스와 대통령> 의 이야기는 웃지 못 할 한 편의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양자의 비밀 회동이라는 명징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은 단순한 대중의 우상이 아닌, 정상에 오른 숱한 문화예술인들에게서 쉽사리 보여 진다고 오인될 수 있는 편집과 강박을 소유한 괴짜의 모습이다. 

미국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비틀즈까지 언급하며 자신에게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연방요원 배지와 비밀 임무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하는 엘비스의 모습은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에는 다분히 믿겨지지 않는 픽션 코미디로 여겨져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실존하는 엘비스와 닉슨 간의 기념 촬영사진에 덧입혀진 감독과 작가의 창의적 상상력은 황당할 수 있는 영화의 리얼리티에 품격 있는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을 부여한다.

▲ 리처드 닉슨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기념 촬영 사진 ⓒ미국 국립기록관리처(NARA)

자신이 직접 작곡한 히트곡 하나 없이 거의 원곡이 있는 흑인음악을 차용하였다는 혹평도 받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달리 보면 흑백 차별이 심하던 시대에 인종의 크로스오버를 이룬, 당시로선 반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상에서 미국의 연방요원 배지에 집착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은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를 뒤흔들던 미국의 혼란을 개탄하는 시각을 대변하는 듯하나, 실상 그도 파격적인 의상과 춤으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서 많은 반발을 샀던 것을 생각한다면 일련의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이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가 이루고자 하는 꿈은 대중이 갖는 판타지의 주인공이 아니라, 테네시 주 멤피스의 한 남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개인적인 비애와 애환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왜 그토록 미국의 연방요원이란 자리에 집착했고, 실제로 대통령의 직권만으로 검증되지 않은 한 개인에게 실질적인 공권력이 주어져 그로 하여금 동료들을 고발하는 임무가 비밀리에 이행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리얼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가 말해주듯 실화에 기초한 다큐드라마로서의 단순한 서사를 떠나, 권력의 심장부인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두 왕이 만나 자신들만의 케미스트리에 이르게 되는 비밀 대화의 시퀀스는 영화의 요체가 집약된 압권이라 할 만하다. 

미국의 권위주의적 대통령이 평소엔 무관심했던 대중문화의 제왕에게 서슴없이 동화되는 이 장면에는 온갖 노력 끝에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가 정상에 이른 자수성가형 인물이라는 공감대의 기제가 작동한다. 

그 과정 속에서 영화의 기초를 이룬 리얼리티와 상상력의 간극을 해학적인 대사와 유머러스한 연기가 적절하게 메꾼다. 

정치권력을 손에 쥐어서는 안 되는 사람과 충실한 국민의 이름으로 그 권력의 일부를 얻고자 하는 사람의 만남은 권력의 이면뿐만 아니라, 이를 보지하고 행사하려는 정상(頂上)들의 비정상(非正常)적인 단면을 풍자적으로 은유한다. 

85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 속에서 그나마 두 남자의 만남과 회담의 시간은 더더욱 짧지만, 이를 이루는 그 장면과 대사들은 영화의 단편을 순간적으로 후벼 파는 함축의 진수다. 

주연을 맡은 마이클 섀넌과 케빈 스페이시의 실제 인물들과의 외모적인 싱크로율은 절대 높지 않다. 

적어도 풍채와 헤어스타일, 말투와 몸짓에서 닉슨에 최대한도로 근접한 메소드 연기를 펼친 케빈 스페이시에 반해, 꽃미남 스타일인 엘비스 프레슬리와는 달리 날카로운 범죄자에 가까운 성격파 배우 마이클 섀넌의 인상은 보는 이들의 몰입감을 순간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이 알던 감미로운 엘비스 프레슬리와는 전혀 다른 이 주연 배우의 이미지는 다소 과장될 수 있는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과 심리를 최적으로 표출하며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낳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렇듯 실화의 편린에 의존하여 식상한 틀에 얽매일 수 있는 다큐드라마의 요소를 풍자와 해학으로 중화시킨 상상과 창의의 연출은 코미디의 희화성과 드라마의 사실성을 배가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낳는다. 

하기는 60~7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일세를 풍미했던 미국 대통령이라는 두 제왕의 짧고도 강한 만남이 유머와 해학이 가득 찬 수준 높은 블랙 코미디로 잔상이 남는 이유는 웃기고도 슬픈 현재 우리의 시국과도 전혀 무관치 않으리라. 

11월 30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대통령 보좌진으로 나오는 인물 중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데자뷰가 아니다. 전쟁 드라마의 수작 <밴드 오브 브라더스> 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도 출연한 적이 있어 이미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배우이기도 하지만, 할리우드 대배우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