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에 관한 단상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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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에 관한 단상 (斷想)
  • 이인제 국회의원
  • 승인 2009.05.0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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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오늘
무릇 살아 있는 것은 때가 되면 죽고, 죽는 순간부터 부패가 시작된다.  만일 죽어도 부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부패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순환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과학도가 아니지만 엄밀히 관찰할 때 죽음 이전부터 부패가 진행되어 결국 생명의 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보면 하루 이틀만 방치해도 곧 부패한다.  부패를 막으려면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간 고등어처럼 소금에 절여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는 부패시키려는 힘과 부패를 막으려는 힘이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몸을 보아도 면역체계가 약해지면 질병의 침투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악(惡)의 유혹을 견딜 힘이 약해지면 타락에 빠지고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요즘 나라가 온통 정치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반 정치인을 넘어 국회의 수장(首長)을 지낸 사람까지 줄줄이 검찰의 칼끝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뿐인가.   전두환, 노태우로 끝날 것 같던 전직 대통령의 부패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무슨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혼란을 느낀다. 
 
이 사태를 보면서 정치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게 된다.  정치부패에 관한 한 최대의 피해자이자 가장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국민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개인이든, 정치집단인 정당이든, 그 정치적 생명은 국민이 부여하고 또 국민이 거두어 간다.  이 사태를 거치면서 개인이나 정당들은 결국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다만 그 시기나 방법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정당들이 앞 다투어 심판하려 덤빈다.
 
시대의 바람 때문에 은폐물이 걷히고 부패가 드러나 떨고 있는 자들만이 죄인일까. 크게 보면 이 시대에 함께 정치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죄인일 것이다.  국회의 수장, 나라의 원수가 썩어가고 있었는데 이를 모르고 있었을까.  설사 모르고 있었다 해도 그 사실만으로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은 아닐까.

정치부패에 관하여는 한 사회의 발전 단계. 그 사회의 독특한 문화를 떠나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정치부패는 사회의 투명성 자체가 결핍된 상황에서 죄의식 없이 저질러졌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자금법이나 금융실명제 등 투명성을 담보하는 많은 장치들이 들어섰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 비판 기능이 성장한 것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세력에 의해 다시 광범위한 부패가 저질러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뿌리가 약한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 생명을 잃는다.  국가에 대한 충성, 국민에 대한 봉사, 이 뜨거운 열정이 정치의 ‘뿌리’이자 정치인의 ‘혼’이다.  그런데 노무현 세력은 낡은 이념에 갇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들이었을 뿐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일꾼은 아니었다.   그들이 부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무슨 정치적 목적도 아닌 순전히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부패가 저질러진 사실이 그들의 정신적 뿌리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말해준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정치가 한 차원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정치 중심까지 밀고 들어왔던 낡은 이념, 무책임한 포퓰리즘 세력과의 결별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낡은 지역정당 구도를 타파하고 정책정당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혼돈(混沌) 가운데 새로운 질서는 태동하기 마련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정치인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 사태를 바라보며 국민과 더불어 분노하는 일에 만족한다면 이 또한 큰 잘못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우리 정치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정당 안팎에서 낡은 이념, 무책임한 포퓰리즘, 고질적인 지역패권을 추방하기 위한 깊은 성찰과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를 절망케 하는 부패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본래 정치보복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권력에 의한 부패와 국가에 대한 배신은 예외이다.  부패와 배신에는 시효(時效)를 두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살아있는 권력과 죽어있는 권력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또 이미 드러난 부패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검찰은 성역을 두지 말고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으로부터 이토록 외면 받는 우리 정치에 새로운 질서가 더 빨리 태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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