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후보들은 유진산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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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후보들은 유진산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1.22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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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구의 현대정치사 ③예상을 깬 유진산의 승리

백기완 후보 "유진산은 멧돼지"라며 공격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유진산 후보를 비롯한 공화당의 윤주영 씨, 백기완 씨 외 다른 후보 셋 등 모두 여섯 명이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유진산 선생의 지프 뒷자리에 후보자의 경호를 맡은 이형호(李亨縞) 씨와 함께 타고 다니며 하루에 7~8회씩 정견발표회를 했는데, 며칠을 다녀도 연설회장에는 유권자는 없고 아이들만 모여들었다.

‘유진산은 사쿠라’라는 말을 다른 후보 진영에서 더 퍼뜨려 놓은 데다가 경찰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선거개입과 압력이 노골화되어 정견발표회장에서 유진산 후보의 연설회장으로 나오도록 목청껏 외쳐도 어른은 한명도 없고 어린아이들만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약속한 연설시간이 되어 아이들 몇을 상대로 허공에 대고 연설을 하려면 맥이 빠지는데도 유진산 선생은 아이들과 허공에 대고 성의껏 한 시간 정도씩 꼬박꼬박 열변을 토했다.

“어린이 여러분! 내 이름이 유진산인데, 오늘 집에 가거든 아버지 어머니께 유진산 할아버지가 아빠 엄마를 만나러 왔다가 못 뵙고 간다고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고 꼭 말씀드려요. 집에 계신 유권자 여러분은 여러분을 감시하는 눈초리가 많으니 여기저기 숨어서 나오지 마시고, 창문을 열어 놓고 제 연설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맥빠지는 연설회였지만 후보자 자신이 열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함께 다니던 우리들도 감동을 받기 시작했다. 우신초등학교에서 첫 번째 합동 정견발표회가 열렸다. 등단하는 후보자마다 유진산 후보를 공격했는데, 특히 백기완 후보가 아버지 같은 유진산 후보를 가장 혹독하게 공격했다.

“유권자 여러분! 나는 백기완입니다. 내가 여기서 입후보한 이유는 바로 저 늙은 멧돼지를 잡으러 왔습니다. 저 늙은 멧돼지는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으로 둔갑하는 배신자입니다. 저 사람이 우리나라의 정치를 망치는 사람입니다. 저 늙은 멧돼지를 이번에 여러분의 표로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로 욕을 해도 유진산 후보는 아무 표정 없이 자기 차례가 되면 “막중한 나랏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라살림을 어떻게 하겠다는 정견도 없이 남의 험담만 늘어놓아서야 되겠느냐”고 한마디하고는 시종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과 현 국정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신민당의 정책을 설명하고 연설을 끝냈다.

그날 이후 개인 정견발표회의 사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역시 유진산이 정치가다!”
“다른 후보들은 유진산에 비하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이 정견발표장에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합동 정견발표회가 있던 날 저녁, 상도동에서 유진산 후보의 개인 정견발표회가 있었다. 

그날따라 그 지역 출신 K씨가 찬조연사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그분은 습관인지 또는 선거운동 시작 후 처음으로 수많은 청중이 모여들어 흥분이 되었는지 연설 시작 전에 소주를 큰 컵으로 한 컵 마시고 연단에 올라섰다.

그런데 날이 덥기도 하고 술에 취하고 청중의 열기에 취해 연설내용이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끌어 지루하게 되자 일부 청중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빨리 끝내라는 쪽지를 여러 번 적어 연사에게 건넸지만, 그때마다 쪽지를 보고는 이제 끝내는가 하면 또 물을 들이키며 “뭔가 하면......” 하고는 연설을 계속했다.

청중이 모이지 않아서 계속 실망하다가 모처럼 유권자에게 제대로 된 정견발표를 하게 된 호기를 놓치는 후보자의 가슴은 타는데 술 취한 연설은 계속되고 청중은 계속 빠져나가니 천하의 유진산 후보도 안절부절못하고 독촉을 했다.

“이 사람아, 웬 물은 그렇게 먹어! 뭐가 뭔가 하면이야. 이제 그만 끝내, 이 사람아!”
후보자는 답답했겠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들은 답답하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늦게 연설이 끝나고 상도동 집에 오자마자 유진산 선생은 연설회를 관장하는 J씨를 불러 다음 날 연설회 계획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거기에도 K씨가 연사로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계획서를 내던지면서 J씨에게 “야, 네가 후보를 해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후 K씨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연단에 서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유진산 후보의 연설회장에는 유권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이제는 확실한 승리가 오는 것 같아 유진산 선생도 나도 마이크를 잡으면 저절로 힘이 났다. 나 스스로도 평상시에 생각지 못한 좋은 말들이 튀어나와 청중에게 갈채를 받기도 했다.

나는 매일 아침 7시에 후보자와 마주앉아 전날의 유세결과를 반성하고 새로운 연설내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그날의 연설회를 시작했다.

아침마다 유진산 선생은 나를 보고 전날 내가 한 연설내용을 지적해주셨다.
“자네는 목소리도 좋고 제스처도 나무랄 데 없고 연설내용도 참 훌륭했어. 그런데 혹시 자네가 말한 어제의 연설내용 중에 이 대목은 이런 말로 대체하면 어떨까 하고 내가 생각해봤어. 한번 생각해봐요.”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무릎을 쳤다. 그러면서 내 연설도 서서히 다듬어져 갔고, 성숙한 연설이 어떤 것인가를 보고 배우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한 달의 선거운동 기간에 사람의 도리에서부터 인생철학까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유진산 선생은 아들 같은 내게도 결코 억압을 하거나 핀잔을 주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참으로 민주적인 교육을 실천하셨다.

윤주영 후보도 그렇지만 특히 백기완 후보는 자기 아버지 연배의 유진산 후보를 인정사정  없이 까고 다녔다. 하지만 유진산 선생은 이에 대응하지 않았고, 특히 개인 정견발표회에서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국가경영에 대해서만 한 시간 이상씩 참으로 진지하게 호소했다.

하루는 재일교포 대표 김재화(金載華) 씨의 전국구 공천을 문제삼아 유진산 후보를 연행하려고 기관요원 몇 명이 연설회장까지 지프를 몰고 와서 자기들을 따라가자고 했다. 유진산 선생은 “지금 보다시피 유권자들이 연설을 듣기 위해 이렇게 많이 나와 있는데, 인사도 없이 그냥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나? 단 10분간만 인사를 하고 가세.” 하고 타협을 해서 내게 약 7분이 되거든 신호를 하라고 지시하고 연설을 시작했다.

평상시와 전혀 다름없이 침착하게 연설을 하는데, 늘 한 시간 이상하던 연설을 단 10분으로 줄였는데도 평상시의 연설내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끝내는 데는 나도, 듣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혀를 내두르며 그 실력에 감탄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자유당 말기에 저지른 부정선거에 버금가는 금권타락은 물론 영등포 갑구에서도 시흥동 같은 곳에는 야당 사람들이 선거운동을 위해 접근조차 할 수 없게 깡패를 동원해 폭력을 휘둘러 선혈이 낭자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무시무시한 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산 선생은 공화당 윤주영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는 선거 초반의 예상을 완전히 실력으로 깨고 만여 표 차이로 당당하게 압승했다.

야당의원들은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6·8 부정선거라고 하여 약 6개원이나 국회등원을 거부해 박정희 대통령으로 하여금 부분적으로 나마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자인을 하게 했다. 그리고 여야 합의로 ‘합의의정서’를 만들어 앞으로는 부정선거를 하지 못하게 입법을 해서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등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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