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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
<기자수첩>태안 사고·차명재산 환원·반도체 피해
2016년 12월 20일 (화) 박근홍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삼성그룹이 20일 '2016년 연말 이웃사랑 성금'으로 500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삼성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5년 연속 500억 원 성금을 기탁했고, 올해까지 누적 기탁금은 4700억 원에 이른다"며 "경기 침체와 양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국대 대기업 중 최대 규모의 성금을 기탁했다"고 설명했다.

모두의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박수치긴 꺼려진다. 총수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국민노후자금에 2조 원 가량의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과거와 같은 수준인 500억 원에 그쳤다는 삐딱한 생각부터 든다.

그럼에도 '내가 혹시 프로불편러가 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접기로 했다. '양치기 소년'이 한두 번 착한 일을 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성인군자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 태안 앞바다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소원면 모항 해안가에서 방제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와 시커멓게 변한 갯벌 ⓒ 뉴시스

삼성의 처음 거짓 약속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8일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예인선은 태안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허베이스트리트호와 세 차례 추돌하고 시커먼 기름덩어리를 유출시켰다. 순식간에 생업을 잃은 주민들은 눈물을 쏟으며 절규했고, 그 검은 눈물을 닦은 건 자원봉사자 125만 명의 손길이었다.

당시 삼성 측은 피해지역과 주민들을 위한 배상금으로 2900억 원을 출연해 내놓았다. 하지만 이 돈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절차적 문제로 인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은 채, 삼성중공업의 명의로 된 수협 통장에서 썩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해양수산부 등 관계당국은 기자의 관련 정보공개 청구에 "출연금에 대한 이해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회신했다. 삼성 역시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눈치다.

삼성 측은 2008년 1월 22일 "국민 여러분께 큰 충격과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 일로 지역주민들께서 당하신 고통과 피해, 그리고 생태계 파괴라는 재앙 앞에서는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라며 "앞으로 관련 당사자들과 함께 주민 여러분의 생활 터전이 조속히 회복되고 서해 연안의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9년이 지난 지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삼성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 지난 7월 21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삼성전자 성매매 의혹'편 화면 캡처 ⓒ 뉴스타파

"차명재산은 실명 전환 후 이건희 회장 본인과 가족이 아닌 유익한 일에 쓰겠습니다."

2008년 4월 17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했던 삼성 특검은 총 486명 명의의 1199개의 차명계좌를 밝혀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비자금 조성 경위에 대해서는 '삼성 측에서 이 회장의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특검은 동 자산을 이 회장의 상속재산으로 평가했다'며 사실상 이 회장에게 면죄부를 줬다. 차명계좌에 있는 천문학적인 은닉재산을 합법화해 준 꼴이었다.

이 같은 특검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지 5일 후, 삼성은 경영쇄신안을 공개하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재산 4조5373억 원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당시 삼성 측은 "구체적인 용도에 대해서는 이 회장의 취지에 맞도록 시간을 갖고 준비하겠다"고 부연했다.

이 회장과 삼성이 공언했던 '유익한 일'은 무엇인지는, 8년 뒤인 2016년 7월 <뉴스타파>의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해당 언론은 당시 이 회장으로 보이는 남성의 모습과 음성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면서 "이 회장이 2011~2013년 서울 논현동 빌라와 삼성동 자택에서 성매매를 했고 여기에 삼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성매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서울 논현동 빌라의 2012년께 전세권자는 김인 전 삼성SDS(에스디에스) 사장이었다. 김 전 사장은 2012년 3월 논현동 빌라 전세권자였다가, 같은 해 9월 해지했다고 등기부등본에 쓰여 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김 전 사장이 전세계약에 쓴 13억 원은 2008년 삼성 특검 때 밝혀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세자금이 이 회장의 개인 돈이라고 선을 긋고, 그룹 차원의 성매매 개입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렇게 삼성은 국민들에게 두 번째 거짓 약속을 한 셈이 됐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가면서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피켓을 든 시민단체들과 마주쳤다 ⓒ 뉴시스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지난해 7월 삼성 측에 1000억 원을 출연해 공익법인을 만들고, 이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삼성은 "법인을 설립해 보상을 실시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재단 설립을 거부하고, 그해 9월 '반도체 백혈병 문제해결을 위한 보상위원회'를 별도로 발족시켰다.

업계에서는 공익법인이 출범할 경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폭이 커질 것을 염려해, 삼성이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접수된 피해자 수는 300여 명이 넘지만, 삼성은 고작 100여 명에 대한 보상 절차만 밟은 실정이다.

2016년 12월 6일,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반올림의 피켓 시위와 마주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반올림 회원들을 흘낏 쳐다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청문회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날 이 부회장은 정의당 윤소하 의원으로부터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유미 씨에 대한 질의를 받았다. 황 씨는 해당 공장에서 불과 2년 정도 일하고는 급성 백혈병에 걸려 꽃다운 24살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당시 삼성은 고인의 부친을 찾아 500만 원을 건네며 이를 무마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의원은 "황 씨 앞에 삼성은 보상금으로 500만 원을 내밀었다. 이 부회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 부회장은 "저도 아이 둘 가진 아버지로서 가슴이 아프다. 모든 일에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답변했다.

과연 이 부회장은 가슴이 아프고,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이 1000억 원 규모의 공익법인 설립을 거부한 시기는, 삼성이 최순실에게 대가성있는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시기와 비슷하다.

'양치기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두 번이나 속였다. 그리고 정말 늑대가 나타났을 때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청했지만 그의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아무도 '양치기 소년'을 도우러 가지 않았다. 삼성이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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