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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답이 된 사회①]"안정성 보장이 공부 이유 아니다"
2017년 01월 10일 (화) 정진호 기자 김현정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현정 기자)

해마다 9급 및 7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21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이 공시생인 셈이다. 또 공시생 중 55.2%는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로 ‘안정성 보장’을 지목했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이들을 고시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공무원 시험 열풍’을 반영하듯 노량진 고시촌엔 다양한 커리큘럼을 갖춘 대형학원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도 이곳엔 공무원 시험 준비생, 일명 ‘공시생’들로 분주하다. 높은 건물에 통째로 입주한 ‘XX공무원시험 학원’ 앞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학생부터 중년층까지 무거운 가방을 맨 채 수강을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공무원 말고 답이 있나요?”

그러나 공시생들에게 기자가 공무원 시험 준비 이유를 물어보자 모두 이같이 대답했다. 그들은 공무원 시험이 ‘목표’이기 때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단지 ‘안정성 보장’이 고시를 준비하게 된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 고시촌이 밀집해 있는 노량진역 ⓒ 시사오늘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지방대 출신은 서럽다”

김모 씨(26세)
“경남 창원 출신으로 지방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공시생들 중에 지방 애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지방대라서 취업이 안 되는 것도 있는데 정보가 너무 없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들은 졸업한 선배들이 와서 길도 알려주고 한다는데…. 그런게 전혀 없으니까 할 줄 아는 게 시험밖에 없어 졸업하면 다 공무원 준비 하는 거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지역 대학 취업률은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 50% 수준이었다. 수도권 대학 취업률이 80.5%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수도권 이외 다른 지역 대학 졸업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방대 졸업이 수도권대학 학생보다 불리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방에서는 취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아 공무원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보’에서 소외된 지방대생들로서는 공무원 외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여자이기 때문에…차별받지 않으려면 시험뿐”

한모 씨(32세)
“재수하고 어학연수 갔다가 언론고시 몇 년 준비하니 나이가 서른이 됐다. 이 나이가 되니 다들 서른 넘은 여자는 취업하기 어렵다 한다. 몇 년 째 공부만 하는건 힘들지만 그래도 공무원 준비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지금 기업에 취직을 한들 결혼 때문에 눈치도 보이고 우리나라엔 유리천장이 너무 높지 않나.”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남녀 경제활동 참여비율에선 아이슬란드가 82.6점, 우리나라는 25점으로 조사돼 경제부분에서 여성차별이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성 공시생들도 이런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어렵게 취업의 문을 뚫더라도 출산·육아·성(gender)편견 등 넘어야 할 산들이 많기 때문이다.

   
▲ 노량진 공무원 고시촌의 모습 ⓒ 시사오늘

◇“돈은 대기업처럼 못 받아도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

전모 씨(30대)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직업은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공무원 밖에 없더라. 적당히 돈 받고 밤에 퇴근해서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고 주말에는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삶을 원한다.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게 왜 추구해야 하는 걸로 바뀌게 된 건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직장인은 하루에 평균 9시간 30분을 일한다.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평균 6분이라는 보고다. 이들에겐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자녀와 놀아주는 ‘저녁이 있는 삶’이 사치다. 지난해 말 정부의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직장문화>를 위한 실태조사에서 근무혁신을 위해선 절반이 넘는 기업 및 근로자 모두 ‘불필요한 야근 줄이기(정시퇴근)’를 주장했다. 노사가 원하지 않는 야근이지만 정시퇴근은 눈치를 보게 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이 된다면 급여는 대기업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퇴근이 가능해진다. ‘공무원 공화국’의 숨겨진 진실이다.

◇“공무원 연금은 전보다 줄어도…불확실한 노후를 보장”

이모 씨(33세)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노량진으로 들어왔다. 삶에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모아도 돈도 안모이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애도 낳아서 키워야 되는데 노후가 보장되지 않아 너무 걱정됐다. 그래도 공무원이면 적당히 월급 받아도 연금이 나오니까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연금이 예전보다 줄었지만 그래도 공무원보다 노후 보장 확실한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뉴스 보면 하루 종일 공원에서 시간 보내고 어디 카페에서 쫓겨나는 노인들 많이 나오는데 솔직히 남일 같지 않아 다른 일에 도전하지 못하겠다. 공무원하며 평생 비참하게 살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납세자연맹이 지난달 29일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퇴직 공무원 평균 연금 수입은 근로자 평균 연봉보다 높았다. 공무원 급여는 박봉이지만 노후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져준다는 인식이다. <시사오늘>과 만난 여러 공시생들도 늘어가는 수명에 비해 불확실한 노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 때문에 예전보단 줄어들었지만 공무원연금보다 확실한 대비책은 없다는 의미다.

   
▲ 노량진 컵밥거리 근처 고시촌 모습 ⓒ 시사오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옛말…공딩족 급등”

오 모씨(20세)
“예전엔 대학을 가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을 나온 사촌들만 봐도 아직 취직을 못하거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해서 4년 내내 알바만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근데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부모님한테 손 벌려가면서 의미도 없는 대학을 졸업하는게 무슨 이득이 있나 싶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도 자신 없고…. 재수하고 이러느니 그냥 소득이 생기는 쪽으로 준비하려 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9급 공무원시험에서 18~19세 지원자는 2015년에 비해 40%나 급증했다. 고등학생 중 대학을 포기한 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공딩족’이라 부른다. 대학등록금이 워낙 높은 탓에 대부분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취업이 어렵다 보니 일치감치 공무원시험에 뛰어드는 고등학생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기준 4년제 대졸 이상 실업자 수는 31만5천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실업자 98만 5천 명 중 32%에 달한다. 수많은 사회 병폐가 불러온 ‘공무원 열풍’이 10대에게도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김현정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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