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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모두 김영삼에게 패했다˝
<노병구의 가짜 보수 비판(2)>목숨을 건 세 남자[下]
2017년 02월 19일 (일)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김영삼의 투쟁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부산과 마산 시민 궐기의 동기가 되고, 도화선이 됐다. 그로 인해 박정희의 범죄적 정권은 비참하게 끝났다.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과 부마사태의 진압 방법을 놓고 그들끼리 다투다가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는 쓰러졌다.

하지만 박정희의 범죄적 정권을 그대로 이어받은 전두환의 세상이 왔다. 김영삼은 감옥 보다 더 고통스러운 가택 연금을 수 년 동안이나 당했다. 그러던 중 전두환은 박정희처럼 무력에 의한 강권통치로 이 나라를 완전히 제압 했다고 자신하고, 1년여 만에 김영삼을 연금에서 해제 했다. 그러나 전두환 보다 훨씬 강력한 군사독재 정권의 원조(元祖)인 박정희를 물리친 김영삼이 전두환의 비정상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갔다. 산 정상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이 나라의 민주화를 하나님께 기도하며 민주화 쟁취에 결의를 다졌다. 김영삼의 민주화에 대한 철학적 신념에 감동한 국민들이 산으로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그 수가 200 만 명을 넘어서는 기적이 일어났고, 세계의 이목이 민주산악회에 쏠렸다. 자연스럽게 발생한 거대 조직체, 민주산악회는 민주화 투쟁의 원동력이 되면서 전두환, 노태우의 6·29 항복을 받아내는 밑거름이 됐다.

민주산악회는 김영삼과 김대중 두 갈래로 갈라졌던 정치권을 하나로 묶은 민주화추진협의회로 발전했으며 6ߴ10 대회로 전두환에게 결정타를 날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로 이어진다.

또한 김영삼은 소위 ‘전두환 정권의 1중대·2중대’라는 민정당과 민한당의 민주주의를 가장한 사기 정치에 완전히 재를 뿌리고, 선명야당으로 일컬어지는 신한민주당을 창당하했다. 2ߴ12돌풍을 일으키며 본연의 길을 이탈 했던 의회정치의 궤도를 바로 잡는데 성공했다.

여기까지의 모든 이 나라 민주화의 과정은 정치권에서는 김영삼 홀로 외로운 투쟁으로 이룩한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 전두환에서 노태우까지의 민주화 일지를 적는다.

1981년 6월 9일 도봉산 산행, 민주산악회 태동

1983년 5월 18일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

1984년 5월 18일 민주화추진협의회 발족

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 창당, 총재 이민우

1985년 2월 12일 제12대 총선에서 신민당 압승

1985년 3월 18일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 취임

19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 창당, 총재 김영삼, 상임고문 김대중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1987년 6월 10일 국민대회 150만 시민 궐기

1987년 6월 29일 전두환 노태우 항복, 민주헌법으로의 복원

1987년 12월 16일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당선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 선언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 김영삼 당선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취임

민주회복의 전 과정을 보면,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까지 범죄적 정권의 무법불법에 대항하여 학생들과 시민들은 싸우고 또 싸웠다.

혹자는 죽고, 불구가 되고, 인격의 손상까지 입었다. 군부독재 하에서 인생을 망쳐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민족의 광복이 일본이라는 외국에 의해서 자행된 무자비한 탄압에 의한 고통이었다면, 민주회복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를 위하여 목숨을 건 박정희의 군사반란으로 만들어진 동족에 의한 압박에 국민이 시달렸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을 독자들은 부디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

덧븉여, 군사반란의 주역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몰락 과정을 보면 하나 같이 김영삼과의 1대1 싸움에서 패했다. 김영삼과 박정희. 김영삼과 전두환. 김영삼과 노태우. 각각 김영삼의 정곡을 찌르는 민주화에 대한 철학적 신념과, 기어이 이 나라를 선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는 국가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진정성 있는 애국심에 결국 무너졌다.

김영삼은 외로웠지만 목숨을 걸 곳을 정확하게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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