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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직권상정
<기자수첩>특검연장법 직권상정하라는 민주당, 한국당과 뭐가 다른가
2017년 02월 23일 (목)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1년 전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비난하며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던 야당이 이제는 정세균 국회의장을 향해 ‘특검 연장법’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 뉴시스

민주주의는 형식적 합리성과 실질적 합리성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합법적 과정을 통해 권력을 얻었더라도 민주적 방식으로 운용하지 못하면 민주적 정부라고하기 어렵고, 아무리 훌륭한 국정 운영자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획득했다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 국가의 정치인이라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모두 충족시키는 ‘힘들고도 비효율적인 길’을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민주 국가의 정객(政客)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고난’을 외면한 채, 쉽고 빠른 길만 찾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초 ‘필리버스터’를 촉발했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국제적 테러와 북한의 도발 등으로 국민 안위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이 직권장정 요건인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며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요청했고, 새누리당 출신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이종걸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가비상사태를 핑계로 느닷없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한 것은 국민에 대한 배반”이라며 “과거 망나니 같았던 의장이라도 직권상정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힐난했다. 새누리당이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와 합의하는 경우로 제한된 직권상정 요건을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년여가 흐른 지금, 이제는 야권이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이 사법부를 협박하고,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도 않고 있다. 대한민국 사법질서와 헌법체계에 대한 정면도전이 비상사태가 아니면 더 이상 비상사태로 어떤 것을 상정할 수 있겠나”라며 “적극적으로 직권상정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지난 22일 보건의료노조 대의원대회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과거 테러방지법의 직권상정 사례에 비춰보면, 특검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 열망이 크기 때문에 직권상정 사유에 해당한다”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국회가 직권상정을 해서라도 특검 기간 연장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이 1년 전 ‘국회법의 취지를 무시한다’며 비난했던 새누리당의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 민주주의 충족을 위해 특검이 연장돼야 한다는 데는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한다. 박근혜 대통령 측이 법적 허점을 악용한 까닭에 특검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희생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목적을 위해 절차를 무시하면 결과는 정당성을 잃고, 과정은 힘을 잃는다. 또한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 했으니 특검 연장법도 직권상정하자’는 논리는 ‘특검 연장법을 직권상정했으니 또 다른 법안을 직권상정하자’는 논리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붕괴는 이렇게 시작된다.

국회의사당의 돔 지붕은 찬반토론을 거쳐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회민주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 ‘정치 불신의 시대’를 넘어 ‘정치 실종의 시대’에 접어든 시대에, 이제는 정치인들이 토론과 합의라는 ‘어려운 길’에 도전해봐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가장 힘든 길’이 ‘가장 좋은 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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