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 된 대선판, 원희룡이 주목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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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시루 된 대선판, 원희룡이 주목받는 이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03.07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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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도정 성과로 대권 노리겠다는 원희룡의 정치 실험, 성공할 수 있을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세력을 만들 수 있는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행정가로 돌아간 원 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 뉴시스 / 그래픽디자인=김승종

‘공(功)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리를.’

정치권의 오랜 아포리즘 중 하나다. 대통령 선거는 거대 세력과 거대 세력이 맞부딪치는 이벤트기 때문에, 당선자에게는 ‘신세를 갚을’ 수많은 사람이 생겨난다. 그러나 은인(恩人)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자리’를 주면 효율적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지므로, 논공행상(論功行賞)과 인사(人事)는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여전히 원칙이 외면 받는다. 능력과 무관하게, 선거에서의 공과 당선 후 자리의 높이가 비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 캠프는 자리를 기대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정치인들도 굳이 원칙을 내세우지 않는다. 사람이 몰려 세력을 형성해야 차기 대선을 노릴 수 있는 까닭이다. 정치인들은 대선 출마라는 ‘미끼’로 사람을 모으고, 사람들은 자리를 기대하며 출마를 선언한 대권 후보에게 몰려드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일단 출마하고 보자’는 태도로 대선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출마를 해야 세력이 형성되고, 세력이 형성돼야 단일화를 통해 차기 대선에서 ‘지분’을 얻거나 차차기 대선을 노릴 수 있다. 아직 탄핵 심판 결과조차 나오지 않았음에도, 너도나도 대권에 도전장을 던지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희룡 제주지사의 대선 불출마는 흥미로운 결정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정치에서 대선은 ‘대통령을 뽑는’ 작업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더욱이 원 지사는 오랜 정치 경력에 비해 ‘세(勢)’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원 지사 입장에서는 지지율이 높든 낮든, 일단 출마해서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이 ‘정석(定石)’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원 지사는 지난 1월 “제주도는 현재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데다, 지금의 토대를 잘 다져놓지 않으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중책을 맡은 상황에서 대선에 출마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맡는 것은 명백한 무리수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당과 제주도 모두를 위해 좋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선 후보에 등록하지 않기로 했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일단 대권에 도전한 뒤 세를 모으고 차기를 노리는 것이 우리 정치의 ‘문법’이었음을 고려하면, 원 지사의 불출마는 신선한 결단이다. 무리하게 대선에 출마하기보다는 도정에 집중해 ‘행정 능력’을 검증받고, 그를 통해 권좌(權座)에 도전하겠다는 일종의 ‘정치 실험’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지만,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므로 훌륭한 대통령은 뛰어난 정치가면서 동시에 유능한 행정가여야 한다. 그러나 ‘세 불리기’에 초점을 맞춰 왔던 우리 대통령들은, 번번이 ‘무능력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청와대를 나와야 했다.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고 ‘행정가’라는 기본으로 돌아간 원 지사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그를 위해 응원의 박수를 한 번 쳐보는 건 어떨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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