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對기자] 탄핵 인용 vs 탄핵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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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對기자] 탄핵 인용 vs 탄핵 기각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03.0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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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이슈 이야기①>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병묵 기자 정진호 기자)

탄핵 인용

 

김병묵 기자 - “대통령이 감정조절 못하고 자제력이 없으며 휘하를 잘 감독하지 못해 국법을 위반하거나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면 마땅히 탄핵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20대 국회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이 발언은 아이러니하게도 현 탄핵 정국의 피의자 중 하나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한 말이다. 법조인 출신으로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전 실장은, 당시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언뜻 봐서 지금 정국에 걸맞은 표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더 이상 법리적으로 탄핵을 기각하긴 어렵다는 방증이다. 당시 김 전 실장은 ‘유죄 추정의 원칙’을 주장하며 탄핵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안타깝게도 현 정국은 저 발언에 거의 정확하게 부합한다. 국정농단, 정경유착, 특례입학 등 다방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죄의 증거들에 비례해 국민들의 공분(公憤)도 치솟았다. 이는 결국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촛불시위라는 모습으로 구체화됐고, 그 인파는 10회 만에 누적 천만 명을 돌파했다. 역으로 야당과 야권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은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한국 최고의 법, 헌법을 해석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다른 법전이나 판례로부터 자유롭다. 해석의 기준은 소위 ‘시대정신’이라 일컬어지는 당대의 정의다. 그래서 일각에선 헌재의 판결은 여론의 흐름과 함께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초수 사건 때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 답변이 70%을 기록하며 탄핵은 기각됐다. 지금 상황과는 정 반대다. 탄핵 의결 직전 기준으로 국민의 약 80%가 탄핵에 찬성한다고 나타났다. 당대의 정의를 법의 해석으로 구현해온 헌재가 이러한 민심을 외면하긴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발언 번복과 해명 기회 회피로 탄핵을 면하는 길을 포기했다. 한 인터넷 TV에 나와 핵심쟁점을 모두 뺀 인터뷰를 한 차례 한 것이 전부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시간끌기’라는 비판을 들은 데 이어, 법정보다는 거리에서 지지자 결집에 힘을 쏟고 있다. 오히려 미리 ‘헌재 결정 불복’을 외치는 등 마치 미리 탄핵 인용을 전제, 대비하는듯한 모순적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헌재는 이러한 모습에 단호하게 ‘마이 웨이’를 천명했다. 도리어 예상보다도 앞당긴 10일 선고를 예고했다. 이정미 재판관 퇴임 전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결심이다. 이 재판관이 퇴임할 경우, 탄핵 인용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 중론인 상황에서 헌재의 인용 의지가 엿보인다는 해석도 있다.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헌재가 형사재판에서 일반적으로 형사소송법상에 적용된 증거법칙과 다른 증거법칙의 기준들은 처음부터 제시했고, 그걸 헌법재판관 모두가 거기에 동의해서 17차 변론까지 왔다는 점, 변론종결일이 2월을 벗어나지 않은 점, 선고기일이 지켜진 점 이상의 세 가지 측면에서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탄핵 기각

 

정진호 기자 - 헌법학자들은 탄핵이 인용되려면 △탄핵 소추안에 포함된 사실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그 사실들이 헌법·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인지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보기와 달리, 결코 충족하기 쉬운 조건이 아니다.

실제로 국회 소추위원들과 대통령 대리인단은 ‘사실 존재 여부’와 ‘헌법·법률 위배 여부’를 검증하는 과정에서부터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개연성을 추측할 수 있는 증거는 충분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의 ‘공범’으로 볼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는 법리적 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강일원 재판관이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지만 형사소송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심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사실 존재 여부와 헌법·법률 위배 여부를 가리는 과정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8일 홍준표 경남지사와 오찬 겸 간담회를 가진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 따르면, 홍 지사는 “국민들이 화가 나 정치적으로 탄핵 의결은 됐지만, 13가지 (헌법·법률 위반 혐의를) 다 뜯어보면 법률적으로 유죄가 되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에도 홍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무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법행위를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더욱이 소추위원 측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발표한 최종 수사결과를 증거로 신청하지 않았다. 수사자료 증거 신청을 하면 탄핵 절차가 지연될 수 있고, 이미 탄핵사유가 충분하다는 이유다. 헌재와 법조계도 특검의 최종 수사결과가 “탄핵심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특검이 밝혀낸 내용은 헌재가 사실 존재 여부와 헌법·법률 위반인지를 판단하는 데 증거로 활용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설사 헌법·법률 위반에 해당하는 사실이 존재한다고 해도, 탄핵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대통령을 파면할 중대한 사유’라는 마지막 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한’이라는 단어 자체가 보편적·객관적 기준과는 동떨어져 있다 보니, 헌법·법률 위반 사항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탄핵으로 연결될지를 예측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법조계에서도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률 위반이 어떤 것인지 일반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관 개개인의 성향과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니 탄핵 기각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데이터 저널리즘 랩 한규섭 교수 연구팀이 헌재 결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8명의 헌재 재판관 중 서기석·안창호·조용호·김창종 재판관은 보수, 이진성·강일원·이정미 재판관은 중도, 김이수 재판관은 진보로 분류됐다. 진보·중도 재판관들이 모두 인용하더라도, 보수 성향 재판관 4명 중 2명 이상이 이번 사건이 ‘중대한 사유’라는 데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탄핵 결정이 되려면) 6명이 인용을 해야하는데 1명만 야당 추천”이라며 “정치권이 박 대통령의 덫에 걸렸다”고 우려한 바 있다. 홍 지사 역시 강 의원과의 만남에서 “(헌법재판관) 6명의 동의를 받기 어렵지 않겠느냐, 6명이 다 인용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예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적인 여론과 달리, 탄핵 기각 가능성도 낮지만은 않은 이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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