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28 화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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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문재인 대세론, 해 뜨면 사라질 아침 안개”
“정윤회 사건 덮은 황교안, 최순실 게이트 키웠다”
“기본소득제, 국가는 국민 먹여 살릴 의무 있어”
“동반성장, ‘함께 잘 사는 사회’ 지속시킬 사회작동원리”
“文 공공일자리 81만 개 공약, 세금 거둬 나눠주자는 말”
“세종시, 통합수도 만들지 경제도시 만들지 국민투표해야”
2017년 03월 17일 (금)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한 사람이 있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일했다. 2002년 서울대학교 총장이 됐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총리 자리에 올랐다. 201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세상은 그를 ‘금수저’라 한다.

한 사람이 있다. 시골에서 상경한 지 1년 만에 부친을 잃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렵사리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 진학하기에는 너무 가난했다. 취업을 생각했다. 그러다 친구 아버지 도움으로 중학교에 등록했다. 학비는 친구 아버지가 소개한 선교사에게 지원받았다. 세상은 그를 ‘흙수저’라 한다.

앞의 금수저도, 뒤의 흙수저도 ‘정운찬’이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친구 아버지였던 서울대학교 이영소 교수의 도움으로 겨우 중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에서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한국명 석호필)라는 은인을 만나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서울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운찬은 그야말로 ‘개천에서 난 용’이다.

그러나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힘든 상황을 노력으로 극복하라고 외치는 ‘꼰대’가 아니다. ‘우리 때는 다 그랬어’라고 말하기보다, 자신과 같은 어려운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지난 13일, 〈시사오늘〉은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학자 대통령’을 꿈꾸는 정 전 총리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학교 앞에 위치한 동반성장연구소를 찾았다.

   
▲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이 국민주권의 승리라고 말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미지에 현혹되면 안 돼…능력 있는 지도자 뽑아야”

정 전 총리와 만난 13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난 이튿날이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또 차기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정치인으로서 그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이 결정됐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두 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우선 파면 결정은 국민주권의 승리라는 것이다. 정치권이 주저할 때,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고 정의를 갈망한 민심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헌법가치가 수호된 데 대해 긍지를 느꼈다.
다음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했다. 능력 없이 명예만 바라고 대통령직을 탐한 사람이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체감하지 않았나. 이번 대선에서는 반드시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대통령 파면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황교안 국무총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과 총리를 지낸 사람이다. 사실상 공동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황 총리가 법무부장관으로 있을 때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이 있었다. 이때 원칙적으로 처리했다면 최순실 국정농단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정개입을 수사하지 않고 덮는 바람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졌다. 이런 측면에서 황 총리는 박 전 대통령 파면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탄핵 선고 이후 사회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한 묶음으로 봐서는 안 된다. 탄핵 반대 집단은 크게 두 부류다. 먼저 박 전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는 맹신파가 있다. 집회를 조직하고 이끄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소수다. 대통령 잘못은 인정하지만, 경제적으로 분배만을 강조하고 안보적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집권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한국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모습,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북한 도발에 강력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이렇게 행동으로 실천하면 절대다수의 탄핵 반대파를 안심시킬 수 있다. 국민 불안이 해소되면 대립과 갈등도 자연히 줄어들지 않겠나.” 

   
▲ 그는 ‘문재인 대세론’이 해 뜨면 사라질 아침 안개와 같다고 주장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치적으로는 탄핵 이후 어떤 변화가 오리라고 예상하나. 문재인 대세론이 이어지리라고 보는가.

“문재인 대세론은 아침 안개라고 생각한다. 아침 안개는 햇살이 비출 때까지 흩어지지 않고 시야를 가리지만, 햇살이 비추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지금까지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로 정국이 불투명했다. 이러다 보니 탄핵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문 전 대표에게 지지가 쏠렸다. 하지만 정치적 불투명성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다른 기준으로 대선 후보를 평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내 삶을 조금이라도 좋게 해줄 대통령이 누군지 먼저 생각하지 않겠나. 열심히 일해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고, 자식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고, 가장은 실직을 걱정하고, 노후는 불안하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경제정책능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대세론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패권지향적이라고 비판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나.

“문 전 대표와 직접 일을 해본 적이 없고, 민주당 당원도 아니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몇 번 만났을 때도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다만 문 전 대표와 일을 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문 전 대표의 주변 세력들에게 포용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 안철수 의원이나 김종인 전 대표가 내린 평가도 비슷했고.”

“중소기업 살려야 저성장·양극화 극복할 수 있어”

‘동반성장’은 정 전 총리의 트레이드마크다. 2010년 대통령 직속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2012년부터는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보니, 유권자들에게는 ‘친숙하지만 모호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을 ‘함께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들고 지속시키는 사회 작동 원리’라고 간단히 정의했다.

-동반성장을 한마디로 요약해 달라.

“더불어 성장해 함께 잘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김종인 전 대표의 경제민주화와 비슷한 개념으로 느껴지는데,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종인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특정 거대경제세력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차단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영역에 한정된 개념이다. 반면 동반성장은 ‘함께 성장해 함께 잘 살자’라는 가치가 관철되는 사회를 만들고, 그런 사회가 지속되도록 하는 사회 작동 원리다. 특정 정책·특정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정치·경제·사회·윤리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한다.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형 경제 질서를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동반성장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준비돼 있나.

“단기·중기·장기정책이 있다. 단기정책으로는 동반성장 3정책이 있다.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적합업종제 법제화, 국가사업의 중소기업 직접발주가 그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를 보면, 대기업은 돈은 많은데 대상이 없어서 투자를 못하고, 중소기업은 대상은 많은데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하는 상황이다. 동반성장 3정책은 대기업으로 갈 돈을 자연스럽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중소기업에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중소기업은 자금난이 완화돼 투자가 가능해진다. 투자가 이뤄지면 생산과 고용이 늘어난다. 생산과 고용이 증가하면 가계 소득이 높아지고, 소비도 확대돼 저성장 극복에 도움이 된다. 또 전체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활발해지면 빈부격차도 줄어든다. 이것이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기적으로는 좋은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초과이익공유제란 대기업이 해마다 설정한 경영목표치를 넘어선 이익을 얻었을 경우, 대기업에 협력하는 중소기업의 기여도 등을 평가해 초과이익 일부를 나눠주는 것이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는 특정 업종에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해주는 제도다. 국가사업의 중소기업 직접발주는 말 그대로 국가사업은 중소기업에게 직접발주하자는 주장이다. 지금은 대부분 대기업이 수주하고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구조로 돼있어 중소기업이 ‘을(乙)’의 입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정 전 총리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며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중·장기 정책에는 무엇이 있나.

“중기적으로는 기존 제도와 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여러 불공정 거래행위의 본질은 힘이 센 대기업이 힘이 약한 중소기업에 갑질하는 것이다. 일례로, 물건을 주문할 때 대기업은 구두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10개 만들어달라고 해서 10개를 가져가면, 9개 주문했다고 주장하면서 9개 값만 지불하는 식이다. 이런 구두 주문 문제에 중소기업들이 많이 당한다. 동반성장 운동으로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현금결제 대신 어음 결제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탈취나 납품가 후려치기는 여전하다. 이런 불공정 거래행위를 없애기 위해 기존 제도와 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정책으로는 신규 중소기업의 유통을 위한 전용 TV홈쇼핑 채널 개설, 중소기업통합물류센터 건설, 해외시장지원용 플랫폼 개설, 중소기업대출신용위험 유동화 증권, 국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강화, 임금격차 축소를 위한 연대임금제와 산업별 최저임금제 같은 것들이 있다. 중소기업 일자리 지원 정책도 중요하다. 우선 중소기업 연금제도를 신설하고, 중소기업 노동자를 위한 임대주택 우선공급과 무주택자 주택구매자금 장기 무이자 지원도 실시할 계획이다. 중소기업 교육 바우처 제도도 도입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실시하면 동반성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연대임금제란 자동차나 전자처럼 대기업 시장지배가 높은 산업분야에서 초과이익분을 연대임금기금으로 출연해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상승과 교육훈련에 활용하는 제도다. 산업별 최저임금제는 일괄적으로 지정돼 있는 최저임금제를 경기 상황에 따라 산업별로 차등을 둬 적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일본·호주 등에서는 최저임금제와 산업별·지역별 최저임금제를 병행 실시하고 있다.

“하위 40%에 월 35만 원 지원하는 기본소득제 실시해야”

정 전 총리는 대표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다. 경제학자답게 시장경제질서를 옹호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정 전 총리는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면서, 서민증세 없이 확보 가능한 80조 원으로 하위 40%에게 월 35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본소득제와 국민휴식제도 주장했는데, 간단히 소개해 달라.

“기본소득제는 하위 40%, 약 2000만 명에게 월 35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호화로운 생활은 아니라도,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수단은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국민휴식제는 대학교수들의 안식년처럼 국민들도 6년 일하면 재충전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 나눔도 된다.”

-찬반이 극명히 갈릴 사안 같은데, 해법이 있나.

“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 초과이익공유라고 하면 당장 ‘빨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초과이익공유는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자들이 영화를 만들 때 배우·감독·배급처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대박나면 더 줄게’ 했던 것이 개런티, 즉 초과이익공유다.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도 초과이익공유제가 전 산업에 걸쳐서 적용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밝히지 않았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을 뽑아준 곳이 오하이오 주, 미시건 주, 위스콘신 주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초과이익공유는 세계적 추세다. 대화를 통해 이런 부분을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 정 전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단언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중소기업 지원이나 국민소득제에 드는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생각인가.

“현재 중앙정부예산이 400조 원 정도인데, 많이 낭비되고 있다. 우선 예산처를 설립해서 낭비되는 예산을 없앨 것이다. 지금 예산에서 10%만 줄여도 40조 원이 나온다. 또 각종 공제와 감면 제도를 없애야 한다. 법인세가 22%라고 하지만, 실제로 재벌들은 12%밖에 안 낸다. 각종 공제 감면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없애면 20조 원 정도가 확보된다. 임대소득세율도 약하다. 연간 발생하는 임대 소득이 200조 원 정도인데, 여기서 10~15%정도를 실효과세하면 20~30조 원 정도 확보된다. 약 80조 원이 서민증세 없이 확보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재원이 부족하면 증세도 해야 한다. 꼭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중소기업 지원이나 기본소득제는 꼭 해야 할 일에 속한다. 국가는 국민을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 최소한의 생활 수단은 줘야 한다. 국가에서 계속 ‘창업해라’ 하는데 사실 창업 성공률은 10%도 안 된다. 실패해도 밥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마음 놓고 창업에 도전할 수 있지, 90%가 실패하는데 무조건 도전할 수 있겠나.”

-유승민 의원도 ‘경제 전문가’를 자임하고 있다. 같은 경제학자로서 유 의원의 경제 정책을 평가해 달라.

“유승민 의원은 혁신성장을 주장하고 있다. 아마 유 의원이 조세프 슘페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웃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은 자본주의 발달의 동력이다. 나도 혁신만이 살길이라는 데 동의한다. 혁신은 물리적인 생산방법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지만,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나 자원을 절약하는 것도 포괄한다. 어떻게 보면 안철수 의원의 공정성장과도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이다. 유 의원이 오래 국회의원 활동을 해서 그런지 정책과 현실을 적절히 조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문재인 전 대표의 공약에 대해서는 혹평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공공일자리 81만 개를 만든다는 것 때문에 나쁜 정책이라고 말했다. 공공일자리를 81만개 만든다는 것은 결국 세금 거둬서 나눠준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쁜 의도에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일자리 창출은 민간 부문에서 우선적으로 하고, 부족하면 공공 부문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민간 소득이 늘고 소비가 는다. 소비가 늘면 기업 입장에서는 물건이 잘 팔리니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이런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소방관·경찰관·간호사를 충원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결국 세금으로 일자리 만드는 것밖에 안 된다. 세금을 분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충청도 사람…고향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

정 전 총리 하면 세종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충남 공주 출신임에도, 그는 세종시 원안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그러나 정 전 총리는 현재의 세종시는 ‘비정상’이라며, 수정안을 내놓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 투표를 통해 세종시를 통합 수도로 만들 것인지 기업·교육·문화·과학 중심 도시로 만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시 수정안을 주장해 충청 민심을 잃었다는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세종시에 가보면, 그곳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알 수 있다. 지금 세종시에는 1급 공무원 이상은 하루, 2급은 이틀, 3급은 3일, 4급은 4일, 5급 이하만 5일 근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중요한 문제를 공무원들이 한 시에 한 장소에서 만나 결정하기가 어렵다.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당시 나를 비난했던 분들도 마음이 많이 바뀌신 것 같았다. 과거 세종시 개선안을 냈다고 나를 고발했던 분을 얼마 전에 만났다. 그분도 ‘그때는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고 하더라. 나는 세종시를 대한민국 행정부 2/3만 가는 도시가 아니라, 기업·교육·문화·과학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수조 원 투자도 유치했다. 삼성·롯데·웅진·한화가 다 들어오기로 돼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부결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세종시 관련 공약이 쏟아져 나온다. 현재 세종시에 문제가 많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 아직도 세종시 관련 공약을 하는 후보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세종시의 비정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지적했던 국가경쟁력 약화, 국가위기관리 취약, 지역균형발전 미비 문제가 실제로 다 노출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했던 정치인들은 다 반성해야 한다. 행정도시를 주장했던 사람들조차도 세종시 관련 공약을 하고 있지 않나.” 

   
▲ 그는 국민투표를 통해 세종시를 통합수도로 만들지 경제도시로 만들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세종시를 정상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세종시에 청와대, 국회, 행정부 나머지 부서를 다 보내 통합수도로 만들든지, 세종시로 내려갔던 행정 부처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국민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세종시를 통합수도로 만들기 원하는지 물어보고, 찬성이 많으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데 헌법 고치는 것이 뭐가 어렵겠나. 만약 원하지 않으면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 서울이든 세종시든, 공무원들이 중요한 문제를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충청도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

“나는 충청도 사람이다. 충청도를 사랑하고, 충청도 출신이라 덕도 많이 봤다. 내가 고향을 나쁘게 만들겠나. 국민들이 원해서 행정부가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고 해도, 세종시는 2010년 내놨던 개선안보다 훨씬 알찬 기업·교육·문화·과학 중심 도시로 만들 것이다.”

“북한, 남북한 경제공동체 편입시켜 경기 침체 돌파해야”

지금 한국 경제는 IMF 이후 최대 위기에 빠져 있다. 세계적 경기 침체로 국가주의·보호주의가 득세하는데도, 국가 경제의 바탕이 돼야 할 내수는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에게 내수 부진 – 투자 위축 – 고용 축소 – 소득 감소 –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묘안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내수 부진으로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감세를 통해 대기업 투자를 확대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의 경기침체는 사이클 문제가 아니고 구조적 문제다. 사이클 문제면 감세와 정부지출을 통해서 풀 수 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는 아무리 감세하고 정부지출을 해도 대기업만 좋아지지 중소기업은 좋아지지 않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국가가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위 40%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것도 유효수요 창출의 일환이다.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에 대해서는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적합업종제 법제화, 국가사업의 중소기업 직접발주를 실시해 대기업으로 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가게 해야 내수를 확대할 수 있다.”

-남북 경제공동체나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축도 경제활성화 방안 중 하나인가.

“그렇다. 장기적으로는 동반성장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남

   
▲ 정 전 총리는 경제전문가·교육전문가인 자신이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갖춘 후보라고 강조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북한 경제공동체로 편입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중·러·일 네 나라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네 나라 모두 스트롱맨(strong man)에 의해 움직인다. 국가주의·보호주의·고립주의다.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가기 어려워졌다. 이것을 돌파할 방법은 북한경제밖에 없다. 북한과 교역을 활발하게 하고, 내륙 지역에도 투자해야 한다. 개성공단뿐만 아니라 해주·신의주·원산에도 공단을 만들어야 한다. 남한에도 철원이나 고성에 공단을 만들어서 일하다 보면 10년~15년 지난 뒤 ‘이게 통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 총리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내가 총리를 맡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개성공단 완공과 해주·신의주·원산·철원·고성 공단 건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범위를 조금 더 넓혀서, 압록강과 두만강 하구에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남북은 물론 미·중·러·일 모두 참여하는 경제공동체를 구축하면 동북아 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해저터널 건설 공약도 흥미롭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태안이 될지 평택이 될지 황해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서해안의 한 지역과 산동 반도 사이에 해저터널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지금 중국이 산동과 요동 간 해저터널 건설을 추진 중이다. 서해안에서 산동으로 해저 터널을 뚫으면, 서해안에서 산동으로 갔다가 요동과 시베리아를 거쳐 런던까지 갈 수 있다. 일본도 부산 부근과 일본 사이 해저터널 건설을 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 평화 유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운찬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를 말해 달라.

“나는 경제전문가·교육전문가다. 경제학을 50년 공부했고, 미국에서 3년, 여기서 34년간 가르쳤다. 각종 경제 정책 자문에도 참여했다. 동반성장위원회와 동반성장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경제 분야의 문제점을 모색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경험도 많다. 사실 경제문제는 철학과 의지, 이해가 모두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로 들면, 그분은 재벌개혁에 대한 철학과 의지는 있었다. 다만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주변의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설득당한 것이다. 재벌이 가장 강해졌던 시기가 노 전 대통령 때다. 최근의 경제 위기와 양극화를 고려하면, 경제 철학과 개혁 의지, 경제에 대한 이해를 모두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또 서울대학교 총장을 하면서 도입했던 지역균형선발제는 아직도 좋은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지역균형선발제는 형평의 차원을 넘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부딪히면서 간접경험을 늘려야 다른 생각이 나오고, 그것이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으로 도입한 정책이었다. 이런 것만 봐도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지금 같은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경험과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한다.”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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