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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탐구-정운찬③] 세종시 수정안을 위한 변명
‘매향노(賣鄕奴)’ 비난 받던 정운찬…세종시 부작용 발생하자 재조명
2017년 03월 19일 (일)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는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충청남도 공주군 출신임에도,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반대하며 ‘세종시 수정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 전 총리는 충청도민들로부터 ‘매향노(賣鄕奴)’라는 비난을 받았고, 세종시에 방문했다가 계란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출범 4년 반을 맞은 지금, 세종시가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정 전 총리의 수정안도 재조명 받는 분위기다.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세종시 발전을 위해서는 자족기능 강화 등 보완이 필요하다”던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수정안에서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의 경제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정운찬 캠프 제공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 vs. 행정중심 복합도시

정 전 총리는 수정안에서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의 경제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행정도시가 관(官) 주도의 과거식 개발계획이라면, 세종시는 과학기술이 교육·문화와 어우러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인구 50만 명의 ‘미래형 첨단 경제도시’가 될 것”이라며 기업과 대학 유치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발표했다. 수정안이 공개된 후, 삼성·한화·웅진·롯데가 세종시에 4조377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의원은 ‘원칙과 신뢰’를 내세우며 정 전 총리의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수정안에 담겼던 원형지 공급·세금 감면 등의 자족기능 보완 조치도 백지화됐다. 결국 국토해양부는 원안에 따라 행정부처 이전을 중심으로 세종시를 건설하기로 하고, 2012년 9월 14일 국무총리실 이전을 시작으로 중앙행정기관의 정부세종청사 이주에 착수했다.

출범 4년 반…미미한 ‘세종시 효과’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 부처부터 옮겨가겠다.”

2002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것은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세종시는 당초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종시 인구는 지난 3년 동안 약 10만 명이 늘어났다. 이 중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향한 인구는 2만여 명에 불과한 반면, 충청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3만2000여 명에 달했다.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세종시 인근 지역의 인구 공동화 현상만 낳은 셈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세종시가 수도권 인구를 유혹할 만한 요인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세종시는 충청남도 연기군 전체와 공주시 일부, 충청북도 청원군 일부를 편입해 조성한 도시다. 상가나 문화시설, 편의시설 등이 턱없이 부족했던 지역에 행정부처만 옮겨놓은 것이다.

이러다 보니 공무원들조차 세종시 이주를 망설이고 있다. 실제로 2013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출퇴근하는 공무원을 위해 운영한 통근버스 비용은 총 279억 원에 달했다. 1개월에 10억 원이 공무원 통근비용으로 쓰인 꼴이다. 정부세종청사 앞 주차장에는 오늘도 수십 대의 통근버스가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 ‘세종시 이전 종합평가 및 향후 발전전략수립 연구용역’에 따르면, 현재 세종시는 자족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전 총리가 지적했던 문제점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시사오늘

재평가되는 세종시 수정안

정부는 공무원들의 세종시 이주를 독려하기 위해 이주 공무원이 세종시 내에 주택을 마련할 경우 취득세를 최대 전액 면제하고, 최대 2000만 원이던 공무원연금대출 한도도 5000만 원까지 상향조정하는 등 다양한 ‘당근’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무리 많은 지원책을 내걸어도 최소한의 인프라조차 구축되지 않은 세종시에 둥지를 틀 사람은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해찬 의원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세종시 이전 종합평가 및 향후 발전전략수립 연구용역’에 따르면, 경제적 자족성과 관련된 일자리·기업입지·고차산업 등의 달성도가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대학 등 민간 유치 실적이 공공기관 이전에 비해 크게 낮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고용효과가 큰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토지공급가 인하, 조세 감면, 공동주택 특별공급자격 확대 등 인센티브를 마련해 민간자본 유치 중심으로 자족기능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의 세종시 수정안이 재평가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 전 총리는 강력한 인구유입과 고용효과를 위해 행정기관 이전보다는 기업 유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멀리 떼어놓으면 위기 관리상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고, 통일 이후 행정기능 재배치가 불가피하다”면서 “세종시를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행정부 일부를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비효율만 발생시킬 뿐, 인구유입이나 고용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의원이 ‘민간자본 유치 중심으로 자족기능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정 전 총리가 내놓은 수정안에 의하면, 세종시에는 8조5000억 원에 달하는 원안의 국고투자에 더해, 과학벨트 3조5000억 원, 민간투자 4조5000억 원이 추가 투자될 계획이었다. 또 산업·대학·연구기능을 대폭 보강하고 자족용지 비율도 20.7%까지 확대해 원안의 약 세 배에 해당하는 24만6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예상됐다. 그러나 정 전 총리는 ‘미래 권력’의 ‘원칙과 신뢰’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 13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도 세종시 관련 공약을 하는 후보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세종시의 비정상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그때 지적했던 국가경쟁력 약화, 국가위기관리 취약, 지역균형발전 미비 문제가 실제로 다 노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투표를 통해 세종시를 통합 수도로 만들든, 기업·교육·문화·과학 중심 도시로 만들든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 전 총리의 ‘세종시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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