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민주화운동의 시작이자 완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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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민주화운동의 시작이자 완성자”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0.09.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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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민주화의 기수 김영삼

김영삼은 이승만 독재정권에서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는 군사독재 32년을 합해 40년을 끊임없이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인생도 가족의 운명까지도 모두 걸고 끈질기게 민주화투쟁을 전개했다.
 
일제의 암흑기에 언제 독립이 된다는 가망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세월을 오직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모진 고생을 달게 받았던 독립투사처럼 김영삼은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재규로부터 온건한 회유를 받았을 때도 “잠깐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총재직을 박탈당했고, 국회에서 제명됐을 때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에서 부당한 연금을 당하다 죽음을 각오한 23일간의 단식으로 스스로 불법연금에서 풀려나는 우리나라 초유의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도 YS다. 민주화의 행로마다 동행하듯 방해로 일관하며 신념도 노력도 없이 김영삼 총재가 일궈 놓은 터전에서 수동적으로 반사적 이익만을 챙기는 김대중씨 때문에 더욱 힘든 길을 가면서도 끈질긴 투쟁으로 전두환, 노태우의 6·29항복을 끝내 받아내며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민주헌법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데 성공했다.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가 집권을 하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민주화의 선봉장이 집권을 해서 민주화를 완성하는 것이 상식일진대 김대중은 온 국민이 그토록 갈망하는 YS·DJ 두 사람의 단일화도 말도 안 되는 궤변과 핑계로 무산시키고, 만고의 해독인 지역감정을 부추겨 4자필승론으로 민주화 골문 앞에서 자살골을 차 넣어 노태우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울을 범했다.

하물며 자신의 정치 고향이자, 또 자신을 이유로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데도 광주사태의 가해자인 노태우에게 20억 원이라는 돈을 감쪽같이 받아 챙겼다가 들통이 나자 오금이 저려 자백을 한 김대중으로 인해 다 잡은 민주화는 물 건너갔다.
3당 합당의 구국적 결단

김영삼 총재의 민주화 열망은 좌절이 없었다. 차선이긴 하지만 3당 합당으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새로운 희망을 창출하며 민주화의 길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건국 이래 민주화를 열망하고 응원했던 국민의 가슴에 지역감정의 암균을 살포하고 민주화는 꿈도 꾸지 못하게 철저하게 망쳐놓은 김대중은 민주화투쟁을 한다면서 동지인 척, 돕는 척 따라가면서 민주화의 길목에서 구비마다 방해로 일관하며 민주화를 망쳐놓았다. 김대중은 지금까지 자기가 해낼 능력도, 비전도 없이 김영삼 총재가 실패하는 것을 자기가 성공하는 것보다 더 즐기면서 심통으로 일관했다. 김대중은 3당 합당을 정치도의에 어긋나고 정치원리에 맞지 않는 야합이라고 몰아붙이며 또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김영삼 총재는 난파되고 남은 몇 척의 배를 수리해 수많은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처럼 통일민주당 세력 25%를 가지고 75%나 되는 민정당 세력과 ‘정치를 끝낸다’는 각오로 합당했다. 죽어가는 민주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차선이었다.

이것은 기름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죽으러 가는 것이라고 많은 동지들이 반대하며 합류하지 않았다. 나도 합당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이 시대에 김영삼 말고 헤쳐 나갈 지도자가 없어 같이 죽자고 합류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3당 합당을 끝내 밀어붙여 기적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민주화를 쟁취한 김영삼 대통령의 애국심과 탁월한 지도력, 굽힐 줄 모르는 소신과 국민을 위한 희생정신은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3당 야합이라고 비난하던 민주화의 방해꾼 김대중씨는 김영삼 대통령이 이룩한 성과를 디디고 대통령이 돼 평생 소원하던 노벨평화상도 탔다. 그간 김대중씨의 소행으로 볼 때 역시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양심이 있다면 김영삼 대통령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고 감사해야 한다.
 
YS는 유일한 민주화의 초석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애국자의 표상이고, 건국의 아버지가 될 뻔한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5·16쿠데타로 물러난 윤보선·장면 두 분은 완전한 민주화를 하려다가 정치군인들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로 18년이나 권좌에 있다가 부인은 문세광의 총에 죽고 자신 또한 측근인 김재규 총에 맞아 10·26의 불행을 남겼다. 그 불행으로 강압으로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18년 동안 저질러온 공과까지 땅속에 묻혀 ‘18년간의 암흑과 망령’이 국민의 정치적 판단을 흐려 지금도 민주정치와 경제발전에 크나큰 장애가 되고 있다.

국민 대다수에게 아예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대통령으로 일컬어지는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팔자에도 없는 권좌에 앉아 분수없이 누리다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치자금이 들통 나면서 함께 감옥과 대통령을 함께한 동기생이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민주국가건설이라는 목표로 40년 이상 정치를 하면서 신익회, 조병구, 윤보선, 유진오, 박순천, 유진산, 홍익표 선생 등 선배들과 한 번도 비뚤어짐 없이 반민주 독재정권을 배격하며 민주화투쟁의 길을 줄기차게 달려와서 마침내 문민 민주정부를 세운 우리나라의 정통민주주의 선구자로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민주주의의 초석을 낳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어 동과 서를 확실히 갈라놓고 민주화투쟁 대열에서 지도자 노릇을 했으나 권력욕이 지나쳐 민주화 직전에 본색을 드러내며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고, 민주화를 방해 혹은 좌절시키고도 ‘3당 야합’이라고 비난하는 김대중은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이룩한 민주화의 덕으로 대통령도 되고 노벨평화상까지 탔다. 그러고는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 부르짖으며 동서가 화합해야 한다고 큰 소리치고 있다.

산만한 민주화세력을 묶어 민주화를 이끌어낸 중심에는 김영삼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 목숨을 건 애국심이 있었다. 김영삼은 사실상 민주화운동의 시작이요, 민주화의 완성자다.
드디어 새벽이 열렸다. 황무지에서 꽃이 피듯이....
 
민주동지회의 시작과 역할

당시 현직의원인 김덕룡, 김무성, 안경률 의원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명윤 전 민주산악회 회장, 서석재 전 의원이 적극 가세하고 후원해 2002년 1월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전현직의원, 원외위원장, 전 통일민주당, 민주산악회, 민주화추진협의회, 나사본에서 지부장과 국장급 이상을 지낸 옛 동지 200여 명이 회의의 명칭을 ‘민주동지회’라 짓고, 매달 회비 1만2000원을 내기로 하는 자생단체로 시작했다.

민주동지회는 친목도 도모하고 특히 우리들이 싸워 이룩한 문민정부가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32년 이상 군부독재 치하에서 길들여지고 형성된 반민주독재 정치문화를 털어내는 힘든 작업과 다시는 독재정권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와 풍습을 마련하는, 다시 말해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하느라고 온 힘을 다했음에도 오랫동안 군사문화에 찌든 언론과 지식인 등 일부 사회의 몰이해로 업적이 저평가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이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며 올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해서도 힘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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