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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 빨리 이뤄내지 않으면 경제혁명 일어날 것”
<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98)>정운찬 전 국무총리
2017년 03월 31일 (금)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사실상실업자 453만 명, 청년실질실업률 22.5%, 가계부채 1344조 원.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가 울려 퍼진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하방열차에 올라탄 한국 경제는 좀처럼 반등할 줄 모른다. 성장하는 방법도, 분배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우리 경제는 병석에 누워버린 중환자와 같다.

지난 27일 국민대학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선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울 ‘처방전’을 제시했다. 경제학자 출신인 정 전 총리는 꼬이고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려면 ‘동반성장’만이 답이라며, 이에 대한 설명으로 90분을 가득 채웠다. 

   
▲ 정운찬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를 지적하며 강의의 문을 열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치적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부, 경제도 탄핵감”

정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를 지적하며 강의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선은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경제 문제로 향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참 우울했다. 월요일부터 외교 부문에서 암울한 보도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미 국무장관 틸러슨이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현실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공개적으로 국무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미국이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교과서의 대부분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온 정치인을 만났는데,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길고 강할 것이라고 예상하더라. 이미 정치적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부지만, 외교적으로도 탄핵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도 외교도 탄핵감이지만, 가장 먼저 탄핵돼야 할 부분은 경제다. 내가 다니는 막걸리 포장마차에 손님이 없다. 그 정도로 경제가 안 좋다.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나 긍정적인 부분이 없다. 우선 거시적으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고, 소득불평등도 지나칠 정도로 나빠졌다. 금년에 2% 성장이 가능할까 걱정할 정도로 성장률이 낮고, 소득이 높은 1%가 전체 부의 15%, 10%가 48%를 가져간다. 한국 사회는 1 대 99의 사회, 10 대 90의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시적으로 봐도 공장가동률이 70%밖에 안 되고, 청년 체감실업률은 20%가 넘는다. 가계 빚은 1344조 원에 달하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30%다. 대체 어디부터 고쳐야 할 것인가. 경제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경제가 살아야 민생이 살고, 경제가 살아야 국민이 살고 국가도 산다. 경제가 살아야 국격이 올라간다.”

“저성장·양극화 완화, 해답은 동반성장”

   
▲ 정 전 총리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문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하면서, 동반성장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 전 총리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문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하면서, 동반성장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동반성장의 의미와 효과도 설명했다.

“그렇다면 경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경제를 살리려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단기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동반성장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눠서 다 같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더불어 성장하자고 하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누자고 하면 부르르 떠는 사람이 많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강조하면서 동반성장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동반성장은 경제 전체 파이는 크게 하되, 분배 규칙은 조금 바꿔서 다 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성장도 안 되는데 있는 사람 것을 빼앗아서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다.

동반성장을 하면 무엇이 좋은가. 저성장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60년 동안 ‘선 성장 후 분배’를 하고 있다. 선도 부문을 키워 놓으면 후발 부문이 트리클다운 효과(낙수 효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트리클다운 이론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대기업이 동반성장에 동의하도록 해서, 대기업으로 흐를 돈, 이미 흘러간 돈이 중소기업에도 돌아가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의 투자가 는다. 투자가 늘어나면 생산도 증가하고, 생산이 증가하면 고용과 소득도 확대되기 마련이다. 경기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전체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살아나면 빈부격차도 줄어들게 돼있다.”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을 이뤄낼 구체적 방안으로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적합업종제, 중소기업위주 정부구매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여소야대(與少野大) 정치 지형이 이들 법안 통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면 동반성장을 어떤 방법으로 이뤄낼 것인가. 그 구체적 방안이 동반성장 3대 법안인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적합업종제, 중소기업위주 정부구매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어떤 기업이 10조 원 이익을 목표로 했는데 17조 원이 생겼으면, 7조 원 중 일정 비율을 협력업체나 중소기업에 나눠주자는 것이다. 7조 원 중 1%만 줘도 7백억 원, 10%를 주면 7천억 원 아닌가. 이게 협력업체·중소기업으로 가면 기술개발이나 해외진출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7조 원 이익에는 구두주문, 장기어음결제, 기술탈취, 납품가 후려치기와 같은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행위가 포함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상적 차원에서 초과이익공유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는 모두 초과이익공유가 전 사회에 걸쳐 시행되도록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는 특정 업종에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해주는 제도고, 중소기업위주 정부구매는 정부 구매 시 20억 원 미만 구매는 중소기업에서 하라는 것이다. 지난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구도가 된 만큼, 대선이 끝나면 이 법안들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을 이뤄낼 구체적 방안으로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적합업종제, 중소기업위주 정부구매를 내세웠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촛불 집회 배경에도 경제적 문제 있어”

마지막으로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빈부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현 상황에서, 하루빨리 동반성장 성과가 나지 않으면 ‘시민경제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반성장이 왜 필요한가. 나는 동반성장 성과가 더 빨리 나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파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 봄에 어떤 중견기업인이 나를 찾아와 ‘납품가 후려치기 때문에 살 수가 없다’며 이민을 가겠다고 하더라. 이 이야기를 듣고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에게 ‘중견기업인이 이민을 가겠다니 중소기업인은 오죽하겠나. 잘못하다가는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는 파탄 날 테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만든 것이 동반성장위원회다.

나는 촛불집회 배경에는 경제적인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정치적 혁명 원인에는 경제적 원인이 다 있었다. 3·1운동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뒤에는 1905년에 있었던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1960년 4·19는 이승만 독재에 대한 항거였으나, 너무 살기가 어려우니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야당의 구호에 국민이 힘을 보탠 것이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역시 당시 도입된 부가가치세에 대한 부산·마산 상인들의 불만이 초래한 것이다.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된 것도 IMF 구제금융을 받아올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과 관련이 있었다. 촛불집회 역시 너무 살기 어렵다는 점이 작용했다고 본다. 촛불집회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다 왔다. 잘 사는 사람들도 못 사는 사람들도 예전보다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선 때문에 자제하고 있지만, 현 상태가 계속되면 시민경제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동반성장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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