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존엄사 인정] '호흡기 떼게 한' 존엄사, 새 논란 속으로
스크롤 이동 상태바
[대법 존엄사 인정] '호흡기 떼게 한' 존엄사, 새 논란 속으로
  • 김진수 기자
  • 승인 2009.05.22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계 대체로 환영, 종교계 “범위 엄격히”
대법원이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해도 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른바 존엄사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의료계에서 임종환자에 대한 지침이 만들어지고, 국회 입법을 통해 존엄사 제도가 완성될 지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식물인간 상태인 김모(77·여)씨 가족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며 병원을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인공호흡기 제거를 결정한 원심 판결을 대법관 9명의 다수의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삶의 최종 단계에서도 환자의 자율적인 결정으로 유지돼야 하는 사회의 변화된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환자 측 청구를 받아들인 최초의 사례이다.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더라도 인간의 존엄 및 가치와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헌법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사망의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 △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경우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또 “환자는 사전의료지시서 등 방법으로 미리 의사를 밝힐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평소 가치관, 신념 등에 비춰 객관적으로 환자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인정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경우 평소 자녀들에게 ‘내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호흡기는 끼우지 마라’고 말해왔으며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로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된 점이 인정됐다.
 
의료계 "대법원 존엄사 허용 환영"
 
이번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원심판결 확정에 대해 의료계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21일 “환자의 존엄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회생 여부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존중해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대법원에서 최초로 허용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그간 넓은 의미에서 소극적 안락사로도 볼 수 있는 ‘존엄사’를 인정해달라는 입장을 입법기관 등을 통해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생명윤리적 및 의학적 판단 등에 대한 논란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사회적 화두가 될 것이므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체계적이고 구체화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게 의협의 입장이다.
 
의협 좌훈정 대변인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개략적 요건만을 판단하고 있으므로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 인정 범위 등에 대한 조속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좌 대변인은 또 “이번 판결로 인해 무의미한 연명치료와는 관계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방안이 보장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교계 “범위 엄격히”
 
신중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삼성의료원 관계자는 “빨라야 다음주부터 병원 내에서 존엄사와 관련한 입장 정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도 “아직 병원 내에서 존엄사와 관련된 움직임은 없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의견을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천주교 생명윤리위원회 총무인 이동익 신부는 “윤리적으로 반대하진 않는다.”는 원칙론을 펴면서도 “하지만 미국처럼 안락사의 사고방식과 혼동되지 않도록 인정범위를 엄격히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부는 “인공호흡기로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환자의 인간성을 방해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한 것 같다”면서 “의료 집착형태라는 측면 외에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때에 국한해서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지도층에서도 정상적으로 생명이 유지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는 인정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천도교 종의원 김영백 사무장은 “종교적 측면에서 생명은 소중히 다뤄져야 하지만 억지로 생을 연장시키는 것 역시 종교의 사명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 예수교 장로회측은 기존의 주장처럼 생명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입장을 펴는 등 다소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장로회 관계자는 “의학적으로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전제로 엄격하게 시행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